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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만세!만세!

2021/04/05

연극 <물고기로 죽기>, 퀴어의 삶을 응원하다 / 조현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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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물고기로 죽기> 포스터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연극 <물고기로 죽기>(3. 4~14)가 열렸다. 총 10회 차 상연,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전석 매진.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객석을 대폭 줄인 영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연극이 다루는 주제가 묵직하고 선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리라. <물고기로 죽기>는 성소수자의 삶과 죽음을 다룬다. 포스터의 두 발 달린 물고기 ‘한 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이를 집약해 보여준다. 자궁의 양수, 즉 물에서 태어나 잠시 뭍에서 살다가 결국 물로 되돌아갈 인간을 반인반어(魚)로 표현했다. 단지 이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와 다른 게 있다면 양 다리의 생김새. 한 쪽 다리는 근육질에 털이 무성하고, 나머지 한 쪽은 매끈한 피부 결에 하이힐을 신고 있을 뿐이다.
<물고기로 죽기>는 독립기획자 고주영의 <연극연습 프로젝트> 중 3번째 작품이다. <연극연습 프로젝트>는 연출, 희곡, 연기 등 연극의 기본 요소에 변수를 주입해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는 프로젝트다. 미술가 정은영이 연출을 맡았다. 남장 여성 배우를 집중 조명해 젠더 고정성을 뒤흔드는 작업 <여성 국극> 시리즈를 발표해왔다. <올해의 작가상 2018>을 수상하고,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여한 바 있다. 대본은 소설가 김비가 썼다. 주로 자전적 내용을 담은 소설, 에세이집을 선보여왔다. 이번 극본 집필도 트랜스젠더 여성인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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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물고기로죽기>(2021)공연전경

연극 제목은 물고기로 ‘죽기’지만, 내용은 트랜스젠더가 한 사람으로 ‘살기, 살아가기, 살아남기’에 가깝다. 무대에는 두 명의 배우가 선다. 명확한 배역이 있다기보다 주인공의 분열된 자아, 주변인, 내레이터로 분한다. 독백에 가까운 대사와  몸짓으로 극 전체를 끌고 간다. 첫 번째 막, 첫 대사는 “나는 사람입니다”라는 명료한 문장이다. “사람 세상에 물고기로 살다 간 어느 존재의 말년에 관한” 좀 웃긴 이야기라며, 관객에게 절대 울지 말 것을 신신당부한다. “우는 사람, 빵꾸똥꾸!”
막을 전환하며 밝고 희망찬 전자 음악이 울려 퍼진다. 트랜스젠더 여성 음악가 키라라(KIRARA)의 작품이다. 그의 음악은 막이 시작되거나 끝맺을 때 극의 분위기를 전환하거나 강조한다. 주인공은 순탄치 못했던 가족사, 유년기를 담담히 회고한다. 억압된 환경에서 그저 침묵하고 당하기만 했던 그, 욕 한마디 할 줄도 몰랐다. 그의 첫 장편소설 『개년이』(2002)에서 시원하게 내지른다. “말 씹에 쥐 좆이다. 이 새끼야! 이 좆물에 코 박고 죽을 새끼야!”
마침내 그는 두 다리 사이에서 몸과 마음 모두를 옥죄던 감옥을 탈출한다. 자유로워진 몸을 지프차에 싣고 여행을 다닌다. 그렇게 세상을 용서했지만, 그의 글은 여전히 처절하다. 세상의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하니까. 하지만 그는 “글을 쓸 수 있는 나여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이 지상에 없는 길을 내 스스로 만들어, 그 길 속에 또 다른 나를 찾아갈 수 있어서요.” 힘겹게 걸어간 길의 끝자락에는 바다가 나올까. 물고기로 되돌아가려는 주인공. 이번 생은 참 좋았다고, 고마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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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물고기로죽기>(2021)공연전경

대단원에 이르러 김비가 객석에서 무대로 걸어 들어온다. 그의 대사는 “나는 사람입니다”라는 명료한 문장으로 시작해, “이 혼란의 바다 속을 헤엄치는, 온 힘을 다해 헤엄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퀴어 만세!”라는 희망찬 구호로 끝을 맺는다. 이 활기찬 엔딩 장면에 상연을 앞두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변희수 하사, 이은용 극작가, 김기홍 활동가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커튼콜 이후 텅 빈 무대를 채우는 마지막 곡 <사별>. 키라라가 친구였던 이은용에게 헌정한 곡이다. 배우와 스태프, 관객이 함께 죽어간 친구를 애도하는 시간이었다. 이들이 무대에 함께 서있다면 자신들을 막다른 절벽으로 내몬 세상을 용서해줄 수 있진 않을까. 주인공이 세상을 용서했듯 말이다. 연대로 서로를 지켜낸다면 또 다른 변희수와 이은용, 김기홍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러면 퀴어를 포함한 우리, 모든 사람이 ‘만세(萬歲)’하는 세상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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