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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암호화폐’열풍

2021/04/11

‘NFT’ 미술 거래, 그 가능성과 위험성 /  박 재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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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플<Everydays-TheFirst5000Days>NFT21,069×21,069pixcels(316,939,910bytes)

2021년 3월 12일, 크리스티의 온라인 전용 경매 웹 사이트에서 비플(Beeple)의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가 42,329.453 이더리움(6,900만 달러, 약 800억 원)에 판매되었다. 생존 작가 경매 사상 세 번째로 높은 가격이었고, 명목 화폐가 아닌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 화폐인 이더리움이 입찰의 단위로 쓰였다. 블록체인 및 암호 화폐 업계에서 시작된 가상 화폐 공개(initial coin offring, ICO),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 DeFi)의 뒤를 잇는 대체 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 NFT)이 투자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 및 미술계 일부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지난 몇 주 사이, NFT라는 다소 생소한 가치 교환 방식이 마치 미술시장의 불투명한 거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작가와 컬렉터에게 손쉽게 부를 안겨줄 수 있을 거라는 오해가 만연해졌다. 크리스티의 뒤를 따라 소더비에서도 NFT로 토큰화된 작품 거래를 중개할 계획을 밝힌 가운데, 국내에서는 서울옥션이 발 빠른 행보를 보이는 모양새다.
블록체인과 암호 화폐는 끊임없는 상호 검증으로 기존 금융 시장에서 권력을 잡고 있던 중앙 관리처나 중개인이 사라지는 세상을 꿈꾼다. 다른 어떤 영역보다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미술신과 탈중앙화의 이상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마치 실체가 없는 디지털 자산에 인공의 유한성을 부여하고자 ‘대체 불가능성’을 발명한 결과가 NFT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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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킴<MissingandFound>2021

잠시 지난 3월 12일 열린 크리스티의 온라인 경매에 첨부된 거래 조건을 인용한다.
NFT 구매를 규정하는 조항의 일부 내용이다.1) “귀하는 NFT의 소유권에 경매 항목(특히 NFT로 토큰화된 작품)에 대한 재산권 외에 명시적 또는 묵시적 권리가 포함되지 않음을 인정합니다. NFT는 크리스티가 아닌 제3자에 의해 발행됨을 이해합니다.” 이 말의 의미를 더 자세히 파악하려면 크리스티 경매에서 판매, 교환된 것이 대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고가 응찰자가 구매한 것은 작품의 ‘원본’이 아니다. 300Mb에 달하는 원본 jpg 파일은 ‘행성 간 파일 시스템(interplanetary file system, IPFS)’ 게이트웨이에서 누구든 내려받을 수 있다. 이 파일은 비플이 직접 웹 페이지에 올려둔 것이다.
그렇다면 800억 원에 달하는 경매 대금을 지급한 결과는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을 구매한 걸까? 아주 거칠게 비유하자면, 낙찰자가 구매한 것은 작품의 존재를 가리키는 ‘작품 라벨’이다. 좀 더 자세히는, 웹상의 특정 좌표에 작가가 원본으로 인정하는 디지털 파일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 사실을 언급하는 메타데이터, 이 메타데이터가 원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토큰, 최종적으로 이 토큰을 타인에게 ‘전송할 권리’를 구매한 것이다.
이 모든 내용은 한 번 정보가 입력되면 수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 ‘토큰’이 이더리움 ERC-721 프로토콜을 따르는 ‘MakersTokenV2’로 만든 40,913번째 토큰이며, 누가 언제 얼마에 거래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디지털 원본성을 확인하기 위한 암호라 할 수 있는 해시값만 알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정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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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rryBlossoms>(2020)을제작중인데미안허스트.

웹 주소만 알면 누구나 ‘원본’을 내려받을 수 있는 300Mb 용량의 jpg 파일의 ‘존재를 인정하는 메타데이터를 전송할 권리’가 판매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작가가 디지털 파일의 형태로 작품 제작 2) 해당 파일에만 부여되는 유일한 해시값을 생성3) 3) 작품 제목, 제작 시기 등과 더불어 파일의 해시값을 언급하는 메타데이터 파일을 생성 4) 메타데이터 파일과 작품 파일을 IPFS 프로토콜을 따르는 다크 웹의 파일 공유 서비스에 업로드 5) 위 사실을 언급하는 ‘토큰’을 특정 NFT 거래 플랫폼에서 ‘민트’해 토큰화 완료 6) 크리스티가 토큰을 거래하는 경매 개최 7) 6,900만 달러에 달하는 이더리움 암호 화폐로 낙찰되며 경매 종료 8) 크리스티가 지정한 특정 암호 화폐 거래소로 대금 송금 9) 작가가 경매 낙찰자의 암호 화폐 지갑의 주소로 해당 토큰 전송.
위 과정 중 2), 3), 4), 5), 9)는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누구든 그 내용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상당히 복잡해보이지만,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명칭이 가리키는 본질은 매우 단순하다. 대체할 수 없는 어떤 대상이(비플이 만든 디지털 파일 형식의 작품)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합의를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파일로 ‘토큰화’해 거래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작품의 실체 혹은 (예술적)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검지로 달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달을 가리키는 특정인의 손가락을 보았다는 사실’을 암호 화폐 시장에서 거래가능한 토큰으로, 즉 NFT로 만들 수 있다.
NFT는 한 번 실행하고 나면 원칙상 영원히 변경할 수 없이 자동 반복 실행되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따르지만, 거래 당사자 간 행위를 코드 형태로 규정하는 NFT 거래에는 그 어떤 제한도 없다. 누군가 당신의 작품을 구매한 뒤 불태우고, 그 과정을 SNS에 중계한 뒤 특정 NFT 중개 플랫폼에서 “OOO 작품 불태우기 목격” NFT라는 명목으로 판매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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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플<Everydays-TheFirst5000Days>NFT21,069×21,069pixcels(부분)

이러한 과정이 여전히 혼란스러운가? NFT로 마침내 미술 혹은 예술의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NFT의 근간이 되는 블록체인과 암호 화폐에 대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NFT는 ‘토큰화’로 비물질 (예술) 활동의 거래를 가능케 하는 궁극의 수단인 걸까? 우리가 NFT로 거래할 수 있는 것은 실체와 연동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하나의 ‘관념’일 뿐인데 말이다. 
그러나 NFT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노선을 취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현실 혹은 디지털 세계의 무언가를 NFT로 ‘토큰화’하려면 일단 토큰이 작동하는 블록체인과 연동된 암호 화폐를 보유해야 하고, 토큰이 가리키는 대상을 ‘민트’하기 위해 수수료를 내야한다. 이 과정에서 탈중앙화된 네트워크 사용에 책정된 수수료도 지불해야 한다. 중앙화된 통제와 게이트 키퍼를 거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블록체인과 암호 화폐의 세계. 물론 기술 진보로 중앙 통제와 게이트 키핑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규제와 중앙화를 거부하는 ‘지구촌’을 이뤄낼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과거의 경험을 상기해보자. 현재의 인터넷은 소수의 플랫폼 사업자들의 독과점 시장에 불과하다. NFT를 만들고 거래하며 가장 먼저 만나게 될, 또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은 바로 수수료 징수원이다.

1) 해당 문서는 아래 웹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onlineonly.christies.com/s/beeple-first-5000-days/lots/2020
2) 해당 토큰의 해시값은 Etherscan.io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비록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미지에는 차이가 없더라도, 디지털 파일의 사본은 원본과 다른 해시 값을 지닌다.
4) 실제로 NFT 중개 플랫폼인 rarible.com에서는  “Authentic Banksy Burn Witness”가 0.25 ‘랩 이더리움(wrap Ethereum, WETH)’의 가격으로 올라와 있다. 현재 판매는 중단되었지만, 총 420개의 해당 NFT 재고를 보유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다.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2024.11.01~)
[만료]고흥군청(2024.11.01~20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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