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 칼럼] 소셜 네트워크 공화국 #2
2011 / 12 / 20
소셜 네트워크와 대안적 사회 교육의 가능성 (2)
-나의 페이스북(facebook) 활동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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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삽(Broken Shop)' 로고
넷째 장. '부러진 삽(Borken Shop)' 이야기
이제는 국제상상대학과 파자마공화국 창설의 모태가 된 ‘부러진 삽’에 대해 소개할 차례다. 순서가 뒤바뀐 듯한데 어찌 쓰다보니 그렇게 됐다.
2010년 11월 22일, [Pan Asia Performance Festival]이 열리는 문래예술공장에 가던 나는 도로변 화단에 버려진 부러진 삽자루 하나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것은 앙상한 가지만 무성한 화초들 사이에 부끄러운 듯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지나쳤다가 알지 못할 힘에 이끌려 다시 가 그걸 주워 가지고 행사장으로 갔다. 삽자루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살펴보던 나는 문득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그래서 일하고 있는 팀원에게 매직 팬을 달라고 해 삽자루에 ‘Broken Shop’이라고 썼다. 손잡이 부분에는 정자로 ‘부러진 삽’이라고 썼다. 아무 쓸모없던 죽은 나무가 생명을 지니고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부러진 삽을 실제로 접한 사람은 알 게 될 것이다. 왜 그것이 'Broken Shop'이 된 줄을. 삽의 손잡이 부분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진실. 그것이 실제의 삽자루에 담겨있다. 이렇게 해서 부러진 삽의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나는 삽자루에 당시 페스티벌에 참가한 작가들에게서 사인을 받은 뒤 그것을 들고 각자 다양한 포즈를 취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이들이 얼마나 독특한 아이디어로 이 삽자루를 대했는가를 말해준다. 입에 문 사람, 삽자루를 사이에 두고 키스를 나누는 연인, 삽질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포즈들이 등장했다.
2010년 12월 12일, 나는 얼책에 [Broken Shop]이라는 그룹을 창설하고 친구들을 모았다. 많은 친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애정을 갖고 ‘Broken Shop’을 돌봐준 친구들도 여러 명 있다. 프랑스의 예술가 알랭 파파로네(Alain Papalone)는 ‘Broken Shop’의 생애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그는 여러 점의 작품으로 그에게 옷을 입혀줬다. 그 정성은 여느 애견가가 사랑하는 애견에게 쏟는 것 이상이다. 나는 앞으로 이 그룹의 활동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예측할 수가 없다.
이처럼 얼책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예측불가능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매력이다. 그것의 매력은 예정된 항로를 가는 것이 아니라 옆길로 새고, 새 길을 개척하고, 다른 길로 건너뛰고, 온 길을 다시 가고, 갈 길을 예상하여 미리 길을 만드는 데 있다. 그것은 선형적인 구조가 아니라 땅속줄기와 같은 리좀(rhizome)의 구조를 닮았다. 그런 구조란 대체 어떤 것인가?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이제 인류는 ‘땅속줄기(rhizome)’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면서 연결된다. 영화 아바타의 대사 중에 주인공인 제이크가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1조개의 나무들과 연결돼 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말은 리좀을 연상시킨다. 손끝에서 손끝으로, 사이버 상에서의 연결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선사인들의 동굴속 삶은 제의(ritual)를 통한 환상의 세계와 생존이 위협을 받는 절박한 현실이 결합된 삶의 한 축도이다. 그들은 동굴 벽에 죽여야 할 대상인 소들을 그리고 거기에 창을 꽂는 동작을 통해 소를 실제로 죽인 것으로 믿었다. 이성으로 무장한 근대인(modern man)은 상징과 신화, 설화를 죽인 장본인이다. 문명의 장구한 진보의 결과물인 종이는 이제 인간의 상상력을 만화의 작은 칸막이 속에 가둔다. 어린이나 원시인은 팔이 잘린 만화의 컷을 보면 실제로 팔이 잘린 것으로 믿는다. 이는 선사인들이 동굴 벽에 소의 모습을 누대(累代)에 걸쳐 겹쳐 그린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나는 ‘동문서답(東問西答)’처럼 상상력이 살아 숨쉬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상상의 공간이 있다.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처럼, 선승(禪僧)이 던지는 법어(法語)처럼, 한 마디의 말이 진리의 경지를 보여준다.”
그러면 부러진 삽의 운명은 그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Broken Shop’의 프로파일에 “‘부러진 삽’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깊이와 넓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때로 화산도 될 수 있고, 또 때로는 달콤한 사탕도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기도 하며 또한 정의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며, 우리는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라고 썼다. 그것이 일종의 부적과도 같은 주술적 힘을 발휘했는지 그 이후에 흥미 있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 것은 부러진 삽의 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다.
2011년 2월 2일, ‘Broken Shop’의 회원인 볼프(Wolf Nkole Helzle)가 벌겋게 녹이 쓴 삽날의 사진을 프로파일에 올렸다. 나는 깜짝 놀라 그게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집 뒤뜰에서 발견했다고 즉각 코멘트 난에 썼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혹시 걸작이 될지 모르니 잘 간직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Broken Shop’의 일부이니 이미 걸작이 된 거나 진배없다고 능청을 떨었다.
이 일화는 그다지 길지 않은 부러진 삽의 생애에서 첫 번째로 일어난 ‘사건(event)’이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즉각 마르셀 뒤샹의 <샘>를 떠올렸다. 1917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그 후 어떤 삶을 살았던가? 남성용 소변기에 ‘R. Mutt 1917’이라고 사인을 하여 [앙데팡당전]에 6달러의 출품료를 내고 출품한 그것은 심사에서 떨어졌다. 그것이 심사에서 떨어지자 뒤샹은 심사부위원장 직을 사임하고 그 사건의 전말을 잡지 <장님>에 기고하지 않았던가? 그 후 <샘>은 “원래의 것은 없어졌고 두 번째 것은 1951년 뉴욕에서 시드니 재니스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세 번째 것은 1964년 밀라노에서 슈바르츠에 의해 여덟 개 한정판으로 주문 생산되었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부러진 삽이 뒤샹의 <샘>의 계보에 속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부러진 삽의 ‘운명’에 관한 것이다. 내가 화단에서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잠깐 눈길만 주었을 뿐 그냥 지나쳐 갔다. 그러다 한 열 발짝쯤 걸어가던 나는 어떤 알지 못 할 힘에 이끌려 되돌아가 그것을 손에 쥐었다. 나는 부러진 삽에 묻은 흙과 먼지를 털면서 문래예술공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놈에게 이름을 지어주자. 뭐라고 지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broken'이라는 영어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것은 ‘부러진’이라는 뜻이다. 그때 이어서 퍼뜩 떠오른 단어가 ‘shop'이다. 상점, 그렇지. 그건 ‘삽’과 매우 비슷한 발음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Broken Shop’이란 영어 명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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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스트독갤러리 <국제상상대학+부러진 삽>(2011. 11. 12~24) 전시 장면. 온/오프라인상에서 30여 명의 회원이 전시에 참여했다.
이 부러진 삽과의 만남 이후 대략 이십 일정도가 지난 어느 날, 나는 얼책에 ‘Broken Shop’이란 이름으로 그룹을 하나 개설했다. 그리고는 프로파일에 검정색 의자에 부러진 삽을 세워놓고 찍은 사진을 얼굴로 등록했다. 이제부터 네 삶을 살아가거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2011년 1월 25일, 제주도에 놀러간 나는 서귀포 항을 향해 길을 걷다 길옆 축대의 돌 틈 사이에 끼워져 있는 삽날 하나를 우연히 발견했다. 처음 봤을 때 그것은 돌 틈 사이에 부끄러운 듯 몸을 숨기고 있었다. 순간 나는 집에 두고 온 부러진 삽자루를 상기하면서 짝을 채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삽날을 가로수에 기대놓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해서 부러진 삽은 볼프의 것과 내 것을 합쳐 모두 두 명의 신부를 맞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인연이라면 참 기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다섯 째 장. 다시 파자마공화국으로
다시 파자마공화국으로 가보자. 때는 1913년, 어느덧 파자마공화국이 탄생한지도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국제상상대학(International University in Imagination:I.U.I)> 회원들의 노력과 얼책 친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힙 입어 파자마공화국은 이제 인구가 천만을 넘는 나라로 성장을 했다. 국제연합(UN)에도 가입을 하여 회원국이 되었다. 헌법과 각종 법령이 제정되고 각종 행정부서와 의회가 생겨났다. 파자마 공화국은 복지국가다. 국가의 재정은 회원들의 다양한 컨텐츠에서 발생하는 기부금과 후원금에 의존하는데, 재정은 늘 넉넉하여 국제상상대학에서 평생교육이 이루어지고 부러진 삽 그룹을 통해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파자마공화국은 범죄가 없는 나라지만 부득이 하게 범죄가 발생할 경우 인터넷을 제한하는 법령이 매우 발달해 있다.
얼책에 기반을 둔 국가에서 인터넷을 제한하는 것은 손발을 묶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파자마공화국의 회원들은 이 형벌을 매우 두려워하여 여간해서는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롯한 각료와 의회의 의원은 행정위원회에서 개발한 앱(app)을 통해 회원들의 직접선거로 선출한다. 파자마공화국의 회원들은 권력욕이나 명예욕이 없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이 없다. 정치인과 공무원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임기를 명예롭게 마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기 때문에 퇴근 후에는 다양한 사이트에 접속하여 취미 생활을 한다. 2년여의 기간동안 파자마공화국에는 많은 그룹과 대학이 생겼다. <국제상상대학>은 가장 전통 있고 오래된 그룹으로 회원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최병원 회원이 설립한 그룹도 환경과 생태, 자연보호와 관련된 그룹으로 많은 회원들이 가입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파자마공화국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나노과학기술과 유전자공학, 외계접속통신사업이다. 앞으로 이 분야에서 많은 재원이 발생, 회원들의 창의적인 활동을 지원하게 될 것이다. 파자마공화국에는 오프라인 국가에 염증을 느낀 국제적으로 저명한 과학자와 학자들이 많다. 미국 출신의 한 과학자는 나노과학기술의 전문가인데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과 세균 크기의 로봇을 개발, 혈액을 타고 뇌 속으로 들어가 고장 난 부위를 고치는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있다. 외계접속통신사업은 앞으로 다가올 외계인과의 접속에 대비한 사업이다. 어느 날 비행물체를 타고 지구로 오게 될 외계인과 접속에 대비하여 언어, 과학기술, 의료 등의 분야로 나누어 연구가 한창이다. 여기에 필요한 모든 경비는 회원들이 보유한 지적 컨텐츠에서 발생하는 수입 중 법률이 정한 수수료와 국가가 운영하는 웹(web) 기반의 각종 사업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에 의존한다.
여섯 째 장. 공상에서 나오며
이제까지 한 이야기들이 한낱 공상에 지나지 않을까? 아이구,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상이 언젠가는 실현이 된다는 사실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잠수함과 비행기를 고안했다. 그런데 벌써 오래 전에 그것들은 실현이 되었고, 인류는 지금 우주탐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나노과학기술, 유전자공학, 외계접속통신사업 등등,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창의력에서 나온다. 국제상상대학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에 바탕을 둔 창의력 개발을 통해 인류의 평화와 행복한 공존을 설립 이념으로 창설된 대안교육 기구다.”
파자마공화국도 상상력에 기반을 둔 창의력의 소산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단지 공상에 불과할 뿐일까? 사이버 국가, 마치 선사시대의 씨족사회처럼 벌집의 쪽방(cell) 같이 미분화(微分化)하는 시대가 아니 온다고 어찌 장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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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삽+국제상상대학> 전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