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클레展
Polyphonies
라빌레트 음악당(http://www.citedelamusique.fr/anglais/musee/expo_temporaires.aspx)
(Cité de la Musique, Parc de la Vill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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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멈춤> 1935
파리의 빌레트공원 내 음악당에서
20세기 천재화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의 회고전이 열렸다. 전시는 클레의 유화, 판화 및 드로잉 130여 점과 악보 일기 편지 도서 사진 등의 자료 70여 점으로 구성되었다. 관람객 모두에게 오디오가이드를 제공하여, 전시장 내에서 해당 컨텐츠와 연관된 음악을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하여 클레의 작품 및 생애와 음악의 연관성을 더욱 깊이 느끼게 했다.
"나는 음악을 통해 평온을 찾는다. 내게 있어서, 음악은 매혹적인 연인과 같
은 존재이다. 나는 음악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고, 앞으로도 위로받을 것
이다." (파울 클레)
클레는 스위스 출신으로 음악과 미술, 두
영역에서 고루 활동했다. 음악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에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했다. 이후에는 베른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꾸준히 활동했고, 피아니스트인 아내 릴리 클레와 종종 협연을 가졌다. 바이올린 연주는 클레의 오랜 생계수단이기도 했다. 그는 많은 음악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모차르트의 음악은 클레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외 바그너, 드뷔시의 음악에도 영향을 받았으며, 바흐의 곡을 즐겨 연주했다. 한편, 어려서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던 그는 미대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화가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음악과 미술 두 방면에 모두 뚜렷한 소질을 보여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1914년 봄 튀니지 여행을 계기로 자신은 화가라고 일기에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바이올리니스트 활동을 그만두지 않고 연주활동을 계속해 나갔으며 시를 비롯한 문학 건축 연극과 같은 다양한 영역을 탐구했다.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엔 음악과 그 밖에 다양한 요소가 융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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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뮌헨 하인리치 크니르 아트 스쿨 5중주의 모습. 오른쪽 바이올리니스트가 파울 클레이다.
. 첫 번째 섹션은 '음악에서 그림으로' 라는 주제로 1898년부터 1910년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클레가 사용했던 바이올린, 악보, 노트 등과 자화상을 비롯한 작품 활동 초기의 드로잉이 전시되었다. 이 시기 드로잉은 주로 음악을 주제로 한다.
다음 섹션은 클레가 자신의 작품을 아카이브화한 1911년부터 1915년까지를 다룬 '뮌헨-파리: 표현주의와 색상' 전시다. 1906년부터 뮌헨에 거주한 클레는 1910년 소묘 작가인 알프레드 큐빈에게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1911년 친구인 화가 루이 므왈레를 통해 칸딘스키와 만나게 되고 이후 블라우에 라이터 그룹과 교류한다. 이듬해인 1912년에는 로베르 들로네의 작품을 보고 파리를 방문했다. 그 시절 클레는 색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데, 1914년 봄 튀니지 여행에서 색채에 대한 작가관을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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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종이에 만년필과 붓 17.5×15.9cm 1910|<무제(인형)> 석고, 실, 천, 물감 48cm 1925
바우하우스 교수로 지내던 시기의 작품이 전시 된 '바우하우스의 음악과 연극' 섹션은 1921년부터 1929년까지 클레 특유의 음악적 회화언어를 보여준다. 이후 칸딘스키가 바우하우스에 오게 되면서 두 사람은 꾸준히 우정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나눴다. 페루치오 부소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여러 작곡가들과 교류하며 클레는 새로운 악기의 메커니즘과 라디오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 아들인 펠릭스 클레를 위하여 만든 인형도 이번 섹션에서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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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종이에 수채화, 연필 26.5×24.5 cm 1923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는 뒤셀도르프 아카데미를 떠나 자신의 고향과 같은 베른으로 돌아가서 마지막 생애를 보냈다. 이 시기의 작품을 '관객 없는 음악'이라는 주제의 전시로 연출했다. 클레는 당시의 시대상을 드로잉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1985년 퐁피두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 이후 파리에서 25년만에 열리는 클레의 회고전이라 더욱 뜻깊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마르셀라 리스타 커미셔너는 기존의 클레의 회고전과 차별화하기 위하여, 블라우에 라이터 운동에 참여하고 바우하우스에서 칸딘스키를 비롯한 다른 작가들과 왕성하게 교류하는 등 클레의 작품세계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초점을 두었다고 발표했다.
클레의 작품세계와 빌레트공원의 음악당이라는 공간이 만나 또 하나의 심포니를 이루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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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빌레트 공원 음악당 외부 전경
www.citedelamusique.fr(http://www.citedelamusique.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