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문화 속의 현대미술 #2 (2)
디지털 영화 vs 컴퓨터 게임, 다음 세대의 예술 형식에 관하여 (2)
글|손부경‧예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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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패러디한 <이것은 라켓이 아니다>
상호작용적 모델, 게임
통념상 게임은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의 문화로 여겨진다. ‘오락산업’과 ‘게임포비아(phobia, 공포증)’라는 양극의 정서 사이에서, 게임은 종종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저해하는 비생산적인 문화로 분류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가 중요한 문화 활동으로 인정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여기에는 게임이 기존에 알려진 문화 형식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흥미 위주로만 제작된다는 편견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의 컴퓨터 게임을 들여다보면,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 양상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발달된 하드웨어, 플랫폼의 다양화와 함께 게임은 사실적인 그래픽뿐만 아니라 서사와 세계관, 캐릭터 설정 등의 측면에서 영화와 유사한 형태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은 좋은 게임에 대해 평가 할 때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와 같이 게임은 문학적인 서사를 멀티미디어 영상으로 매개한다는 점에서, 영화와 같은 이유로 전통적인 미감을 지녔음을 부분적으로나마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게임에서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은 앞으로 논의해야 할 게임 미학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보다 게임을 진지한 문화 형식, 나아가 기술-미학적 가치를 지닌 예술적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올드미디어에 대한 뉴미디어의 광범위한 재매개 양상을 대부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이나 가상현실 등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 <슈퍼마리오> 시리즈임을 감안하면, 게임에 대해서 이토록 복잡한 용어들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의아하게 여겨질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게임 매체의 본질적인 측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친숙한 도상의 애니메이션 화면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컴퓨터의 층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 말은 곧 게임의 특성이 인간 문화의 맥락보다는 컴퓨터 자체에서 발생한 용어나 개념에 의해 정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비교적 잘 알려져 있듯이, 게임은 ‘상호작용적’이라는 측면에서 여타의 문화형식들과 차별화된다. 일반적으로 영화와 게임의 체험은 공통적으로 스크린을 바라본 상태에서 이루어지지만 각각의 체험 양상은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비롯하여 회화 사진 텔레비전 등 ‘스크린 계보’에 속하는 대부분의 매체가 그러하듯, 화면과 관람자의 소통은 대체로 수동적이고 단일한 방향의 감상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매체는 관객의 부동성을 전제로 관조적인 몰입을 매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게임은 화면과 관람자 사이에 물리적이고 즉각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게임의 사용자는 마우스나 키보드, 또는 전용 컨트롤러를 이용하여 스스로 게임 내 상황에 관여하게 된다. 그리고 사용자가 게임 내 공간을 탐험하거나 인공지능을 지닌 상대방 캐릭터와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게임의 세계는 항상 게임 밖의 플레이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체험은 관조적인 몰입과 달리 신체적 개입을 동반하며, 그런 이유로 컴퓨터 화면 속 가상공간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컴퓨터 그래픽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디지털 영화가 사실주의적 모델을 지향해 왔다면 게임은 상호작용적 모델을 지향해온 것이다. 그러므로 게임의 체험 강도는 화면 자체의 사실성보다는 가상공간과 물리적 공간 사이의 매끄러운 상호작용, 즉각적인 반응 속도에 따라 결정된다. 말하자면 가상현실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시각적 충실함이라는 하나의 차원만을 활용하기보다, 그것을 여러 요소들 중의 하나로 포함하는 다양한 차원의 복합적이고 실제적인 효과를 추구하는 것이다. ‘닌텐도 위’의 인터페이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뮌헨의 대학생들로 구성된 'Game Design' 팀이 만든 영상 . 1958년 'Tennis for Two'에서 부터 2008년 'Rock Band'까지 50여 년간 게임의 변천사를 보여 준다.
디지털 영상 문화의 지각 방식을 훈련시키는 기제
위와 같은 사실은 게임이 탄생한 이래로 변함없이 이어져 왔음에도 오늘날 게임의 기술적 진보와 관련시키면 새삼스럽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래픽이나 캐릭터의 움직임 등 게임 콘텐츠의 질이 높아지고 인터페이스를 통한 상호작용의 유형이 복잡해지면서 게임의 체험이 일상적 지각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실사와 다름없는 그래픽 속 사물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물리 공간에서의 체험을 일부분이나마 시뮬레이션 해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비행 시뮬레이션은 파일럿의 훈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하며, FPS 게임(First-Person Shooter, 게임상의 캐릭터의 시점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전 컴퓨터·비디오 게임)은 모의 작전이나 전투 시뮬레이션 등 군사적 용도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공지능이나 인터페이스와 같은 상호작용 기술의 발달은 체험을 매개하는 게임이나 그 시스템의 존재를 점차 불투명하게 만들면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점차 희미하게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가치관이나 세계관과 충돌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측면에서 게임은 디지털 영상문화의 새로운 체험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체험은 매체 이론가들이 초기 영화에서 주목한 것처럼 새로운 현대적 지각방식을 훈련시켜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를 테면 게임은 가상 이미지와 현실의 위험한 긴장관계를 마주하게끔 하는 동시에 그것에 대한 자발적인 판단과 적응을 돕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빌렘 플루서가 지적하듯 기술적 형상의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인식 차원의 코드, 또는 미래의 문화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컴퓨터 게임은 뉴미디어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중요한 문화현상이자 일종의 미디어 아트와 유사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영화 텔레비전 인터넷이 그래왔던 것과 같이 컴퓨터 게임 또한 사회적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언젠가 컴퓨터 게임의 셰익스피어를 갖게 될 것’이라는 사이먼 페니의 말이 시사하듯, 게임의 미래는 우리가 예측하기 어려운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레프 마노비치는 『뉴미디어의 언어』에서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매킨토시 컴퓨터의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언급하며, 그것이 오늘날의 문화를 지배하는 두 가지 미학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하나는 미래주의와 파괴, 컴퓨터 기술과 물신주의, 복고주의와 도시주의, 로스앤젤레스와 도쿄가 섞인 미래의 디스토피아고, 나머지 하나는 컴퓨터 운영체제와 웹사이트 등 각종 멀티미디어가 채택하고 있는 인터페이스의 표준형에 관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디지털 영화와 게임은 그러한 미학을 보다 급진적으로 확장시키며, 때때로 현대미술과 복잡한 관계를 맺기도 한다. (끝)
디지털 영화 vs 컴퓨터 게임, 다음 세대의 예술 형식에 관하여 (1) (http://artwa.kr/tc/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