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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문화속의현대미술#2(1)

2012/02/22

디지털 영상 문화와 현대미술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는 두 번째 시간. 필자는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기술의 진보와 그에 따른 현대미술의 다양한 양상 및 이미지 지각 방식의 변화에 주목한다. 첫 번째 시간에는 예술 영역에서 개념적으로 디지털 기술의 ‘속도’를 앞질렀던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http://artwa.kr/tc/757)의 실험적인 예술 세계를 살펴봤다. 이번에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이미지 체험 방식들, 특히 디지털 영화와 컴퓨터 게임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첨단의 디지털 영상 매체를 매개로 한 현대미술에도 새로운 미학적 쟁점들을 제시한다.

디지털 영화 vs 컴퓨터 게임, 다음 세대의 예술 형식에 관하여 (1)

글|손부경‧예술학

올 상반기 출시 예정인 디아블로3의 예고편. 3D기술을 접목한 게임이 점차 독자적인 미학을 형성하고 있다.


근래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들은 ‘디지털 영상문화’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 준다. 이를 테면, 3D영화 붐, 온라인 게임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 아날로그 필름의 생산 중단과 같은 현상은 영상문화의 궤도가 급격히 선회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구체적인 지표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디지털 매체가 기존의 문화 코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형식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디지털 영화와 컴퓨터 게임은 그러한 형식을 대표하는 매체로서 동시대 매체환경의 특성을 대변한다. 이 두 매체는 유사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기존의 문화를 재구성하고 있다. 필자는 이들의 관계를 통해 디지털 영상문화의 미학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시장 규모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영화와 게임은 대부분의 문화 형식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스펙터클 사실주의 시뮬레이션 상호작용 등 현대 시각문화를 설명하는 대표적 개념들은 대부분 영화와 게임에 의해 선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현대의 이미지 체험이 대부분 디지털화된 영상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이러한 매체는 현대미술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회화든 미디어아트든 현대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 그 대상의 지각방식을 규정하고 있는 대중매체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디지털 영화와 게임의 그래픽 이미지는 미적 가상의 측면에서 이전의 문화 형식을 뛰어넘는다. 뿐만 아니라 이들 매체는 보다 근본적인 지점에서 현대의 미적체험에 개입하는데, 이는 때때로 기존 예술범주의 위기로 작용하는 동시에 현대미술의 새로운 참조지점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양상은 가까운 미래의 영상문화는 물론, 현대미술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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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3D영화 열풍을 몰고 온 영화 <아바타>(2009). 혁신적인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디지털 환영주의 미학을 실현하는 최근의 영화들

영화는 탄생에서부터 현재까지 미학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영상문화를 주도해 온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이다. 우리는 다양한 측면에서 영화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다양한 논고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영화를 독립적인 예술형식으로 볼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유대상으로 다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 산업의 엄청난 시장규모가 그 지위를 단적으로 알려 준다. 현시점에서 영화만큼 폭넓은 관객층을 포괄하는 동시에, 현대적 경제시스템에 잘 적응해 온 예술 형식을 찾기는 어렵다. 특히 할리우드 디지털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오락인 동시에 (텔레비전 콘텐츠나 컴퓨터 게임과 달리) 하나의 예술매체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경향에 가장 잘 들어맞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컴퓨터 그래픽으로 무장한 디지털 영화는 영화라는 매체에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함으로써 이른바 ‘영화 이후의 영화’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다. 2009년에 개봉한  화제의 영화 <아바타>는 본격적인 3D 영화를 제시함으로써 영화의 기술-미학적 의의와 관련된 가장 최신의 담론을 주도해 냈다. 첨단기술과 익숙한 코드의 서사가 적당히 버무려진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을 뿐 아니라 미래의 영화를 논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중요한 논점을 제기해 주었다. 이처럼 흔히 ‘특수효과’로 일컬어지는 영화 제작기법의 발달은 영상 이미지의 생산과 수용 양상을 상당 부분 변화시키고 있다. 그에 따라 영화가 만들어 내는 사실적인 환영과 스펙터클은 이전의 논법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영상미학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 그래픽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준 <쥐라기 공원>(1993)이나 <토이스토리>(1994), 실사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실험한 <파이널 판타지>(2001), <베오울프>(2007)와 같은 영화가 그렇다. 이들은 기술적 측면에서 영화사의 중요한 성취를 이룬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외에도 최근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현실적인 가상’을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과거의 영화가 실사 영상을 기반으로 구성되었다면 디지털 영화는 인공적인 배경과 인공적인 배우를 조작과 합성이 가능한 개별 단위로 활용하며, 독립적인 뉴미디어 객체들로 이루어진 몽타주를 구성한다. 이는 마치 아날로그적인 조합 인화 사진과 디지털 합성 이미지의 차이를 연상케 한다.

사실주의 컴퓨터 그래픽, 디지털 액터, 3D애니메이션 등 디지털 영화의 기법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마치 현실과 같이 구현해 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환상을 실재처럼 잘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영화의 미학적 목표가 된 것이다. 이때 관객의 경험은 특수효과가 만들어 내는 비매개성과 하이퍼매개성 사이의 긴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합성된 영상의 현실성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기술 자체의 놀라움을 동시에 체험하며 점차 ‘현실적인 가상’의 미학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뉴미디어 이론가 레프 마노비치가 디지털 영화는 “우리의 현실을 열등하게 재현한 것이 아니라 다른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언급했듯,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종의 ‘디지털 환영주의’의 미학을 달성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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