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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시간의주소,소공동112번지

2011/02/20

<공간발굴 프로젝트> 포스터

0. 사라진, 사라질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

#하나 나의 라임 은행나무.
어렸을 때 우리 옆 집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있었다. 옆 집이 이사 간 후, 겨울 밤 눈이라도 오면 몰래 담을 넘어 차가운 눈 위에 누워 은행나무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을 보곤 했다. 빈 땅의 나무. 그렇게 내가 남 몰래 애정을 줬던 은행나무는 어느 날 하루 꼬박 걸려 잘려 나가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그해 가을 잘린 나무로부터 30m 남짓 떨어진 동네 입구의 야윈 은행나무 위로는 나무 살리기 운동 현수막이 걸렸다. 그 땅은 공동의 것, 그 나무는 동네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내 주변 경관에도 여러 겹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고, 그것은 나의 애정이야 전혀 상관 없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 대학 시절, 등굣길의 구파발.
3호선이 반짝 지상으로 나오는 구간, 구파발과 지축은 올망졸망 알록달록한 양철과 기와지붕이 내려 앉은 곳이었다. 십 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구파발의 강산이 변했다. 이번엔 은평 뉴타운. 구파발의 ‘지붕’들이야말로 ‘랜드마크’ 였는데.

#셋 드디어 서울.
변화무쌍한 서울의 번화가에는 옛 시간이 머무른 듯한 몇 군데 길이 있다. 이를테면 운니동, 원서동, 세운상가 뒷편과 낙원극장 주변, 소공동 길. 이런 곳들은 개발이 놓친 사각지대이거나 문화의 힘으로 자생적으로 살아남은 곳이다. 하지만 디자인 서울의 시대,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다. 균촉지구와 뉴타운 대상지, 산업 특구로 정해지면서, ‘저개발’ 구역이 일제히 헐리고 새로이 지어진다. 그렇게 서울이 기억상실증을 앓을 때마다 나는 자폐증을 앓는 것 같았다.

#넷 새로운 전시 트렌드.
올 한해 도시를 주거민의 기억이 공유되는 일상 공간으로 조명하거나, 이 변화의 속도에 저항하는 시도들이 눈에 띄었다. 건축가 조정구는 최근 몇  년간 서울의 ‘동네’를 투어하고 있고, 리슨투더시티도서울을 투어해 그 결과물을 《어반 드로잉스》라는 잡지에 담아내고 있다. 올해 초 공간 사옥에서는 사라져가는 1960~80년대 건물을 기록하는 전시 <장소의 기록, 기억의 재현>전이 열렸다. FF그룹은 서울의 곳곳에 디자인 서울을 재치 있게 꼬집는 스티커를 붙이다가 서울시에 호출된 후, 디자인 거리에 원하는 문구를 ‘닦아내는 방법’으로 새기고 있다.

#다섯 <공간발굴 프로젝트 #1:시간의 주소, 소공동 112번지>.
2010년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한 달간 소공로 일대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시청과 한국은행 사이를 관통하는 길 소공로는 오래 전부터 맞춤 양복점이 즐비한 패션의 거리였다. 현재는 기성복에 밀려 양복점의 수가 줄고, 그마저도 땅의 소유권이 문제가 되는 가운데 개발에 어려움이 있어 방치된 길로 남아 있다. 이곳에 오래된 거리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모여 거리 전시와 퍼포먼스, 공연, 세미나 등을 펼치고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PLAN B의 김병국은 소공동을 발로 뛰며 소신을 관철하고 있다. 양복점 사장님들과 이야기하고, 실제 이 주소지의 땅을 가장 많이 소유한 모그룹에 익명으로 아이디어 제안도 하는 것. 그가 한 말 중 내 기억에 남는 것은, “부시고 짓는 것이 아닌 남기며 짓는 방법의 건축 디자인 등을 여러 사람들과 연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여섯 여러 세대의 기억과 생활이 쌓이는 도시는, 누구도 완성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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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도면은 김상균 장가가 소공동 프로젝트에 동참해 준 다섯 개의 양복점에 선물한 감사패에 새겨진 이미지에서 발췌했다. 실제 양복점들은 소공로길 곳곳에 흩어져 있다. 아래에 해당 양복점의 사진을 이어 붙여 봤다.

-아트와 2010년 7월호 에디터스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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