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베를린비엔날레
두려움을 잊어라(Forget Fear)(http://www.berlinbiennale.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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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gnadxs <점령하라(Occupy)> (Photo: © Marta Gornicka)
제7회 베를린비엔날레가 개막했다. 폴란드 태생의 비디오 작가 아르투르 즈미예브스키(Artur Żmijewski)가 총감독으로 임명된 후, 준비 단계에서 경력과 분야에 관계없이 참여작가를 공개 모집했을 때부터 베를린 미술계에는 적잖은 파장이 일었다. 제출 서류 중에 응모 작가의 정치적 성향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과정은 참여작가를 선정함과 동시에 지원자들의 서류를 비엔날레 본전시장인 쿤스트-베르케(KW, Kunst-Werke)현대미술관의 한 사무실에서 갈무리하고 공개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사무실 벽에는 작가들의 실명과 그들이 스스로 정의한, 혹은 정의를 거부한 정치적 성향이 도식화되어 함께 전시된다. 이 공간은 서구 문화계와 정치사에 대한 도발적인 작업을 벌여 온 작가가 감독으로 나선 비엔날레답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지원자들이 예술가의 정치적 성향을 계측하는 데 동원된다는 것에 대한 반발과 거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가로서의 커리어에 비엔날레 참여 경력을 추가하고 싶은 지원자들의 욕망 등이 뒤섞여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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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Open Call)> (Photo: © Artur Zmijewski)
비엔날레의 공동 기획자로는 러시아의 보이나(Voina) 그룹이 초청됐다. 이들은 정치적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작가들로 구성되어 모스크바 등지에서 때로는 폭동으로 치부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로부터 제재받고 미술계로부터 외면받은 이들은 즈미예브스키와 전략적으로 제휴하여 베를린비엔날레에 공동 기획자로서 참여하게 됐다. 출국 금지 조치로 방문할 수는 없었으나 이들은 러시아 정부가 베를린비엔날레를 고발할 수는 없다는 현실을 이용하여, 첫 번째로 베를린을 점령하고, 이후에는 러시아 혁명을 도모한다는 선언문을 전송했다.
이러한 전시 기획자들이 구현한 비엔날레는 전시(exhibition)라기보다는 시위(demonstration) 그 자체이며, 그 방식에서 폭력을 가감 없이 노출시키고 이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며 차라리 그 에너지를 재현하는 데 주력하는 듯 보인다. 베를린비엔날레의 본부인 KW의 반지하층은 건물의 가장 큰 전시장으로 이곳에 집중된 건축적인 규모 때문에 전시 참여작가에게 가장 개입하기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제7회 비엔날레에서 이 공간은 <점령하라(Occupy)>라고 제목이 붙은 난장으로 탈바꿈했다. 다양한 내용의 정치적 행동주의에 입각한 미술가 단체가 실제로 전시 기간 동안 이곳에서 평소대로 생활하며, 규칙 없이 배열된 시각적 결과물을 축적한다. 이곳에 머무는 정체불명의 개별자들은 방문객과 열성적으로 정치적 이상에 대해 토론하기도 하고, 시위 장면이 담긴 영상이 흘러나오는 옆에 놓인, 더러운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이곳에서 KW의 작은 뒤뜰로 통하는 큰 유리문에는 덕지덕지 붙은 행사 시간표, 포스터 등과 함께 “문을 세게 닫으면 유리가 깨질 위험이 있으니 살살 열고 닫읍시다”라는 쪽지가 붙어 있다. 텃밭 앞에는 씨앗을 묻은 주먹만한 흙덩이가 아르테 포베라 풍으로 나열되어 있고, “가져가서 던지십시오”라는 골판지 팻말도 달려 있다. 전반적으로 무단 점거 농성, 히피 캠프, 미대 작업실 등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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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열쇠(Key of Return)> Photo ©Aida Youth Centre
베를린비엔날레의 성격은 역사적으로 이전 비엔날레에 대한 반향이었고, 매회 미술 영역의 경계에 보다 민감한 기획자들과 작가들이 선정되어 각자의 판을 제시해 왔다. 이번 7회에서는 미술기관과 비엔날레, 미술계 내의 제도 비판이라는 이미 익숙해진 개념적 바탕 위에 보다 전방위적으로 파괴적인 기획을 선보인다. ‘두려움을 잊어라’는 제목은 준비 과정을 통해 기획 의도가 정립되면서 으레 부딪치게 되는 다양한 실패들, 예를 들면 삭감된 지원금이나 이로 인해 내부적으로 재답습되는 노동 착취의 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어야 할 “현실의 진정한 변화”를 위한 미술의 정치화의 추구를 재차 선언한다.
‘전시’되는 일련의 작업들은 동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 사회에서 벌어지는 아랍의 봄, 폴란드 유태인의 이주 부흥 운동 등 복합적인 정치적 긴장 상황을 다룬다. 작업의 양상 또한 다큐멘터리적인 기록의 집적, 그래피티, 유인물 배포, 현지의 기념비를 분해하여 베를린으로 옮겨 오기 등 천차만별이다. 한 예로 인류활동협회(IHA, Institue for Human Activities)는 빈민촌이었던 뉴욕 첼시나 강제 퇴거 당한 유태인 지역으로 전후 공동화되었던 베를린 미테 지구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고급 주택화)’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던 미술계의 지역 진입에 주목한다. 제7회 베를린비엔날레의 부대 행사로서 고급문화의 첨병으로 둔갑한 현대미술과 그 소비층이 지역 경제에 부를 가져다 주는 양상을 바탕으로 콩고에서 미술 행사를 벌이는 작업을 소개한다. 참여를 북돋는 선언문에는 깔끔하게 액자를 끼운 커다란 현장 스케치 사진 연작이 곁들여졌는데, 묘하게 제국주의의 이미지를 풍자한다.
흥미롭게도 즈미예브스키는 비판 일색인 독일 언론과 미술계 반응에 대해, 《슈테른(Stern)》지와의 인터뷰에서 우경화된 서유럽에서도 최고의 경제 권력을 바탕으로 한 독일 문화계의 ‘여유로운’ 반응에 냉소하면서, 절박한 현실에서 태어난 상상력을 원동력 삼아 일견 덧없는 미술 행위라는 형식으로 벌어지는 정치적 행동주의와의 연대를 재차 강조한다. 즈미예브스키의 비엔날레는 독일연방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데, 그런 면에서 베를린은 서유럽 경제권에 속하면서도 문화적으로는 자본주의 권력에 대항한 자기 비판과 형식 파괴를 허락한다. 동시에 이로써 또다시 자기애로 회기할 기회를 얻는 기이한 도시이다. 매우 개별적이며 다양한 정치 담론을 둘러싼 심포지엄 워크샵 퍼포먼스 상영회 등의 행사가 전시 기간동안 매일같이 베를린 곳곳에서 벌어지며 점령을 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