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조각의 정체성 모색
<아시아현대조각회 국제 교류전> 전경 2024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교류갤러리
<아시아현대조각회 국제 교류전>(7. 4~9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교류갤러리)이 열렸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의 4대 도시 작가 42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서울 출품 작가는 이수홍(한국 회장), 강효명, 김범수, 김연, 김정희, 김황록, 김희경, 손종준, 이동용, 한진섭 등 10명이다. 후쿠오카는 이시카와 코지(일본 회장) 등 16명, 타이베이는 양 포린(대만 회장) 등 9명, 광저우는 쩡 첸웨이(중국 회장) 등 7명이 참가했다. 이번 전시는 1992년 출범 이후 25회째. 2019년 전시 이후 코로나19로 중단하다가 올해 국제 교류전을 재개했다. 특히 올해 전시는 이 조각회의 활동을 종료하는 마지막 교류전이었다. 전시에 곁들여 지난 역사를 회고하는 세미나를 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황록 <The Dream of Things>
전시 작품은 다양한 세대와 지역만큼이나 양식의 폭이 다양했다. 대체로 시니어 세대는 서구 모더니즘의 자기화를 보여주는 추상작품이 많았다. 재료 또한 전통적인 철, 나무, 석고 등 물성 자체의 형식을 존중하는 작품이 많았다. 젊은 세대는 인물 조각, 팝적인 소재의 구상 조각의 비중이 높았다. 새로운 재료와 기법의 확산이 보편화되었으며, 그 형식도 평면과 입체, 설치 등을 넘나드는 비기념비적인 조각이 많았다. 작품 운송, 전시 공간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4개국 조각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였다. 민간 차원에서 조각 국제전을 개최한다는 일 자체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현대조각회의 모태는 1982년 후쿠오카시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한일현대조각전>. 1980년 후쿠오카미술관에서 주최한 <아시아현대미술전>에 참가했던 한일 양국의 조각들이 협력해 전시를 따로 꾸린 것이었다. <한일현대조각전>은 이후 10년간 교류전 형식의 전시를 이어갔다. 한국 조각계의 중심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여기에서 다진 교류와 협력 관계를 확대해 1992년에 아시아현대조각회를 창립했다. 대만과 중국의 조각가들이 합류했다. 교류전은 해마다 국가를 옮겨 열렸다. 한국에서는 동백미술관, 부산문화회관, 영은미술관, 홍익대 현대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헤이리예술마을 등에서 열었다. 일본에서는 후쿠오카시미술관,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타이완에서는 화렌미술관, 가오슝시립미술관, 타이베이문화회관, 중국에서는 산야아트갤러리 등에서 교류전을 열었다.
마지막 교류전, 새로운 모색
전시 개막일에는 <아시아현대조각회의 발자취>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4개국 회장들의 주제 발표와 질의 토론이 이어졌다. 이시카와 코지 회장은 “아시아현대조각회는 서구 조각의 모방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독자적 현대조각의 길을 모색해 왔다. 올해로 이 모임이 마지막을 맞았지만, 다시 새롭게 서로의 작품을 통해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함으로써, 아시아성에 대한 깊은 상호 이해가 이어지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세미나에 참석한 김복기 아트인컬처 대표는 아시아현대조각회의 활동을 1980년대부터 이어진 ‘아시아 담론’의 전개와 관련해 평가했다. “1980년부터 열었던 후쿠오카시미술관의 <아시아현대미술전>은 아시아 미술의 구심점, 다양성보다는 공통성을 지향하는 개념이었다. 이후 1990년대의 아시아 담론은 서구 근대를 초극하는 구심점보다는 다문화주의를 수용했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타이완과 중국이 아시아 미술담론에 가담하는 등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를 맞았다. 작금, 시각 환경과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조각의 국제 교류전을 다시 모색할 시점이다.”
한국의 이수홍 회장은 아시아현대조각회의 발전적 해체 이후의 계획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난 20년 동안 각국의 회장은 공적 지원금, 기업 후원, 개인적 친분을 활용한 협찬 등 실로 어렵게 모임의 재정을 꾸려왔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교류하고 협력해 온 편안한 모임이었다. 아시아현대조각회가 ‘발전적 해체’를 단행했다. 앞으로 조각 창작과 교육, 연구를 병행하는 작가들을 새롭게 섭외해 주제전과 세미나를 개최하는 미래지향의 4개국 모임을 계획하고 있다.”
쩡 전웨이 <Ref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