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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umnPreview]부산비엔날레

해적과부처의아찔한항해

2024/09/13

부산비엔날레 8. 17~10. 20 부산현대미술관 외 원도심 일원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최초로 공동 전시감독이 이끈다. 유럽과 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는 큐레이터 베라 메이와 필립 피로트이다. <어둠에서 보기>전은 혼란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방법으로 ‘해적 공동체’와 ‘불교 도량(道場)’을 제시한다. 다양한 출신이 모여 만든 수평적 공동체,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깨달음을 강조한다. 36개국 62명(팀)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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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원<불타+냉장고>80년할머니가무명천에스티치혼합재료69×33cm2015

—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어둠을 기피하고 몰아내기보다는, 어둠의 공간을 정신적 영역으로 보고 깊이를 탐구하며 동시대의 대안을 찾는다.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 ‘해적 계몽주의’와 ‘도량’이다. 동서양의 개념을 조합한 주제가 참신하다. 두 개념을 떠올린 배경과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달라.

Mey&Pirotte 부산비엔날레 리서치의 시작점 중 하나는 부산의 사찰 범어사이다. ‘범어(梵魚)’는 ‘깨달은 물고기’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부산의 풍성한 해양 문화와 사찰 문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부산을 이루는 가장 큰 특징으로 ‘다양성’에 주목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이 부산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부산 거주민 중 50% 이상의 1세대가 현지인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주는 한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일본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이루어졌다. 그래서 해양 문화와 사찰 문화를 포괄하는 큰 주제로 다양성을 넣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Rolfe Graeber)라는 미국의 인류학자가 저술한 『해적 계몽주의(Pirate Enlightenment)』가 이번 전시의 큰 모티프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18세기 유럽 계몽주의가 평화와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는 통념과 다르게, 해적의 사회에서 그런 실천이 먼저 이뤄졌다고 밝힌다. 우리는 이러한 해적 공동체의 유연성에 주목했다. 여러 문화와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섞여 생활하는 모습이 부산과도 닮았다고 느꼈다. 해적 사회는 관용적이고, 젠더적으로 평등하며, 당시 사회가 꿈꿨던 방향을 고려했을 때 굉장히 실험적인 형태의 유토피아 사회 모델이었다. 평등주의를 실험적으로 접근하는 부분이 이번 전시의 큰 주제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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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포춘어스>혼합재료가변크기2022Photoby김해리

— ‘어둠에서 보기’는 일반적으로 빛, 즉 조명이 필요한 전시와는 모순되는 주제이다. 그만큼 비엔날레 개막 전부터 전시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궁금증을 일으켰다. 또한 해적 계몽주의와 도량의 개념을 전시 디스플레이로 어떻게 구현하려 했나?

M&P ‘어둠에서 보기’라는 주제에서 우리가 특히 집중한 개념은 ‘불명확성’이다. 어떤 작품은 꼭 화이트 큐브 환경에서 보여줘야 한다거나, 혹은 어둠에서 본다는 주제에 따라 어두운 조명을 설치해야 한다는 식의 제한된 접근은 피하려 했다. 그보다는 개념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모호한 지점, 그 중간 영역을 탐색했다. 어둠은 단순히 광학적으로 빛이 적은 상태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처한 곤란한 상태 혹은 우리를 두렵게 하는 장소, 사건, 존재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둠의 깊이 속에서 길을 찾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 이번 전시는 부산비엔날레 최초로 공동 감독이 이끈다. 두 사람이 만난 계기부터 힘을 합쳐 비엔날레 제안서를 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두 사람은 비엔날레 감독이 되기 전에도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 부산에서 어떤 매력과 미술적 가능성을 발견했는지 알려달라.

Pirotte 그동안 부산비엔날레에 공식적으로 공동 감독은 없었지만, 2018년 전시감독 크리스티나 리쿠페로가 독일 출신의 외르그 하이저를 큐레이터로 초빙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공동 감독이 부산비엔날레의 역사에서 그리 낯선 일은 아닐 거다. 나는 2022년 부산비엔날레 큐레이토리얼 어드바이저를 역임하면서 부산에 와봤다. 내 고향인 벨기에 앤트워프 역시 항구 도시이다. 그래서 처음 부산에 왔을 때 고향을 떠올리기도 했고, 항구 도시는 공통적으로 고유하고 특별한 서사를 지니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나와 메이는 ‘아시아 아프리카 연대 운동’ 같은 주제에 관심이 있어, 그동안 두어 번 프로젝트를 함께해 서로 잘 알고 있었다.

Mey 부산에 와본 적은 없지만, 서울과 광주에는 방문했었다. 그런데 부산에 와보니 이 도시가 매우 특별하다고 느꼈다. 일본과 물리적으로 가까워서인지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이주민 문화의 다양성도 다른 도시와 크게 달랐다. 또 조선과 일본의 역사부터 오늘날의 관계, 교통수단 등을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초량동에 가면 차이나타운, 텍사스 거리, 러시아 거리, 우즈베키스탄 식당 등이 매우 많다. 이렇듯 한국은 일본과 북한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흔적을 품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특별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최근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아주 인상적인 전시를 봤다. 이곳에는 스님이 앉아 있는 모습의 초상화가 80점가량 전시되어 있었는데, 모두 귀한 보물급이었다. 전통적인 초상화는 한국의 사립, 국공립 미술관이 잘 관리하고 있긴 하지만, 작은 규모에도 이렇게 자기만의 방향성을 보존하는 공간을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올해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원도심의 부산근현대역사관, 한성1918, 초량재를 무대 삼았다. 특히 부산근현대역사관의 금고미술관이 인상적이었다. 침침한 전시 환경이 주제를 연상시키고, 공간 특성에 맞춰 설치한 작품들이 흥미로웠는데….

M&P 부산현대미술관을 메인 전시장 삼아 부산 원도심에서 세 개의 전시를 펼친다. 먼저 중구 대청동의 부산근현대역사관에는 금고미술관이 있다. 이곳은 과거 한국은행 부산지부로 사용된 건물이다. 금고미술관은 좁은 복도, 두꺼운 철문, 쇠창살 등 옛 금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는 전시 주제로 삼은 ‘해적 계몽주의’에서 해적들 간 경제 시스템이 굉장히 급진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상호 교환과 거래를 위주로 하는 체계 아래, 공동 분배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더라. 그래서 이번 비엔날레 주제를 반영해 은행에서 전시하는 것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금융, 산업과는 동떨어진 예술작품을 은행에 설치해 전복의 힘을 느끼도록 의도했다.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는 구헌주, 이양희, 차지량, 최윤, 셰이크 은디아예, 소피아 알-마리아, 올라델레 아지보예 밤보예, 지시 한, 천 샤오윈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 한편 한성1918는 사운드 프로젝트, 초량재는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옛 가옥이 특징적이다. 각 장소의 메인 콘셉트와 참여 작가를 소개해 달라.

M&P 부산근현대역사관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동광동의 한성1918은 한국 최초의 근대 은행인 한성은행을 문화 공간으로 개조한 곳이다. 이곳은 사운드 프로젝트를 특화한 전시장으로 참여 작가 홍진훤, 니카 두브로브스키, 프레드 모튼&스테파노 하니와 함께하는 강연과 토론, 디제잉 공연 등을 비엔날레 기간에 선보일 것이다. 동구 초량동에 있는 초량재는 기존 전시 공간보다 비격식적이며 로컬화된 공간으로,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1970년대 가옥이다. 옛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내부 공간은 물론, 옥상과 테라스까지 전시장으로 적극 활용했다. 김지평, 정유진, 슈룩 하브, 우버모르겐, 슈쉬 술라이만&아이 와얀 다르마디, 스리화나 스퐁 등 국내를 포함해 팔레스타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작가진이 공간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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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아로차&스테판슈라넨<말벌집>하프미러플렉시글라스,스테인리스스틸가변크기2024Photoby조재연

— 이번 전시의 특별 프로그램도 이색적이다. 부산과 오사카를 오가는 크루즈에 작품을 설치한다. 역대 부산비엔날레의 행사가 부산 지역에 머물렀던 것에 비해 파격적이다. ‘바다’를 전시장 삼으면서 ‘국경’까지 쟁점으로 확장한다. 이 프로그램은 해적 유토피아, 도량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M&P 이번 전시의 한 축은 불교의 깨달음이고, 다른 한 축이 해적 계몽주의이다. 해적 공동체에 들어가려면, 즉 해적이 되려면 본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다 버려야만 한다. 그렇게 해적 공동체에 들어가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역할을 나누기도 하는 등 그 방식이 굉장히 유동적이었다고 한다. 해적 사회에서는 태풍과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때그때 돌아가며 그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선원이 리더를 맡았다. 권력에 따라 정해진 인물이 아니라 상황별로 강점을 지닌 사람이 선장이 되는 것이다. 불교의 입단 또한 속세에서 본인이 가진 정체성을 버리고 스님, 수행자가 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도량, 그러니까 승려들이 모인 곳에서도 역할의 분배나 변화가 굉장히 유동적이다. 두 개념의 연장선에서 크루즈 전시 역시 유동성의 차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특별 프로그램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동체의 가치를 탐구하고 싶었다.

— 한편 이번 부산비엔날레 공식 웹 사이트의 감독 소개 페이지에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이 플레이리스트에 대한 설명은 따로 찾아볼 수 없는데, 어떤 의도인지 궁금하다.

M&P 사운드는 고정되지 않은 유동적인 매체이다. 그런 점에서 사운드가 전통이나 역사, 문화, 정치적인 맥락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거대한 범주라고 상정했다. 그래서 플레이리스트라는 형식을 이번 전시에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참여 작가 중에도 사운드작업을 메인으로 삼거나 다른 매체와 병행하고 있는 작가가 많다. 특히 대만 출신의 린 치-웨이(Lin Chi-Wei)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테이프 뮤직>을 선보였다. 전쟁에 반대하는 시가 적힌 테이프를 관객끼리 나눠 가지고 즉흥으로 낭송하는 작품이다. 이때 낭송은 입이 아니라 주어진 악기로 하며, 테이프는 일종의 악보가 되어 사람들에게 자유자재로 읽힌다. 이 플레이리스트를 들어보면 비엔날레의 분위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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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프엉린&트엉꾸에<출처없는물:채찍&칼>채찍,칼,섬유,나무플랫폼,모터,조명&커튼시스템가변크기2024

— 두 사람 모두 동서양을 넘나들며 전시를 기획해 왔다. 독일, 캐나다, 뉴질랜드,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에서 미술씬을 경험했는데, 지난 2년간 한국을 오가며 바라본 한국 미술씬은 어떤 모습이었나?

M&P 한국 아트씬은 다양성 측면에서 인상적이다. 관객층을 보면 동시대미술에 아주 친근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거리가 먼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또 그 모습 자체로 굉장히 활발하게 느껴진다. 또 프리즈가 서울에 상륙한 것만 봐도 확실히 지금 한국이 아시아 미술의 허브가 되어가고 있음은 틀림없다.

— 오늘날 세계에는 수많은 비엔날레가 있다. 생태, 연결, 미래 등 담론이 대다수인 여타 국제 비엔날레와 비교해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어떤 차별성 갖는다고 보는가? 더불어 ‘아트페어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 동시대 비엔날레의 역할은 무엇인가?

M&P 오늘날 국제적인 비엔날레는 몸집만 거대하고 일률적인 주제로 가득하다. 구체적이지 못하면서 거창한 주제를 다룬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응해 우리는 이번 부산비엔날레 주제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정하자고 논의했고, 역사, 정치, 사회적으로 어떤 어젠다를 설정할지 가장 최우선으로 고민했다. 이에 작가를 선정할 때도 ‘비엔날레 작가’ 하면 바로 떠오르는 글로벌 아티스트나 이미 유명한 작가는 피하려고 했다. 특히 올해 부산비엔날레에는 팔레스타인, 이란 같은 중동 지역뿐 아니라 세네갈, 자메이카, 코트디부아르, 토고 등 평소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지역의 작가가 다수 참여했다.
21세기가 ‘아트페어의 시대’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비엔날레는 단순히 아트페어를 뒷받침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아트페어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미술행사여야 한다. 일단 우리는 전시장에 들어온 관객이 작품 사이에서 길을 잃기를 바란다.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작품을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듣고, 만지고, 오감으로 느껴야 한다. 그렇게 온몸으로 생생히 경험하면서 ‘내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새롭게 질문하기를 기대한다. 일단, 전시장에서 길을 잃어봐라!

— 마지막 질문이다. 이번 부산비엔날레 이후 계획이 궁금하다. 큐레이터로서 앞으로의 목표, 그리고 최종 꿈은 무엇인가?

M&P 이제까지 그래 왔듯 또 좋은 작가를 만나 지속적으로 일을 해 나가고 싶다. 이번에 부산비엔날레를 기획하면서 멋진 한국 작가를 많이 알게 되었다. 앞으로 그들과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고 싶다.

— 두 감독의 답변에 감사드린다. 지난 8월 개막 이후 전시를 관람한 이들의 호평이 자자하다. 부산비엔날레로 떠나는 이들에게 이 인터뷰가 일종의 ‘항해 가이드북’이 되어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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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메이/오클랜드테투히시립공공갤러리큐레이터.싱가포르NTU현대미술센터큐레이터역임. 필립피로트/프랑크푸르트슈테델슐레미술사교수,베를린그로피우스바우협력큐레이터,버클리대학미술관퍼시픽필름아카이브시니어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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