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 화가’ 별세
‘긋기와 지우기’ 미학을 실험해 온 원로 작가 최병소가 9월 11일 타계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194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서양화과와 계명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970년대 김영진, 박현기, 이강소 등과 대구에서 ‘현대미술제 붐’을 일으켰다. 1974년 대구현대미술제를 낙동강변에서 열고, 대구의 경도와 위도를 딴 전위 단체 35/128을 창립했다. 중앙과 지역의 교류로 실험미술의 확산을 도모했다.
최병소가 신문지에 볼펜과 연필로 선을 반복해 긋기 시작한 기점은 1975년. 작은 작업실에서 제작 가능한 작업을 고민하다 신문지를 택했다. 신문지를 접어 그리드를 만들고, 칸마다 검은 볼펜과 연필로 집요하게 선을 박박 그어 ‘시커먼 누더기 물질’로 만들어냈다. 군데군데 날카로운 구멍이 뚫릴 정도였다. 이 <신문 지우기> 연작은 유신 정권의 언론 검열을 꼬집는 작가적 반응이자, 6·25전쟁으로 궁핍하게 보냈던 어린 시절에 얽힌 개인의 기억이었다. 이후 작가는 ‘검은 화면’을 공간의 차원으로 확장해 14m에 달하는 대형 작업을 제작하기도 했다. 때로는 종이를 벽이나 천장에서 늘어뜨려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허물었다. 일평생 <무제>라는 이름으로 종이를 긋고 또 그었다. 집요한 수행적 작업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제11회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했다. 생테티엔현대미술관, 도쿄 센트럴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최병소의 작업 세계는 『아트인컬처』 2013년 2월호, 2015년 5월호, 2016년 1월호, 2021년 2월호 등에 소개됐다. 2013년 2월호 아티스트 기사에서 김미경 미술사학자는 총 7개의 키워드로 최병소의 예술세계를 분석했다. 그중 작업의 방법론인 ‘반복’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공간 속에 시간을 타고 넘나드는 최병소의 ‘검은 물질’은 엄청난 반복 행위가 집적된 결과이다. (···) 가까이 보면 촉각적 사태가 극대화된다. 기계적 혹은 몰아적 손의 반복에 그치지 않는 그의 반복적인 행위 사이에는 간극이 만들어지고, 간극은 차이를 낳으며 패럴렉스(parallax)의 장소를 점유한다. 그것은 선형적이지 않다. 이미 표면적 반복의 시작은 이면적 반복과 같이 시작하며, 모든 것은 반복이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차이’이다.”
또 2016년 1월호에서 김용대 큐레이터는 최병소의 예술을 ‘실존’으로 읽는다. “최병소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실험미술, 개념미술 등으로 불리나 내게는 한 인간의 치열하고 처절한 삶에 기초한 인간의 실존으로 다가온다. 1950년대 초 군정청 문교부의 엉성한 교과서, 제본도 제대로 안 된 국사 교본 등 어린 시절 기억은 그의 작업에서 망각에 맞서고 있다.” 최병소의 예술은 노자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을 떠올리게 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화려한 기교를 덜어내고 서툰 듯 보이는 그림을 더 높은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병소는 작고 가는 필선으로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남기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