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AutumnPreview]창원조각비엔날레

‘잘익은조각’,문학과미술의만남

2024/09/13

창원조각비엔날레 9. 27~11. 10 성산아트홀 외 도심 일원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 창원조각비엔날레 사상 최초의 여성 예술감독인 현시원은 동시대조각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한다. 창원 지역을 리서치해 역사적인 장소를 전시 무대로 삼았다. 16개국 86명(63팀)의 작업으로 조각의 수평성, 여성과 노동, 도시의 변화, 공동체 등의 키워드를 다룬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ff79db3d3f3f7afa236c4d7325fc1dda08cf43f2-8390x11166.tif?rect=0,502,8390,10022

이유성<달걀껍질>알루미늄,구리선170×28×55cm2023사진:임장활,작가제공

— 올해 전시명은 김혜순 시인의 「잘 익은 사과」에서 따왔다. 사과 껍질이 깎이며 길이 만들어진다는 시인의 상상력을 따라 조각의 새로운 지형도를 조망한다.

Hyun 「잘 익은 사과」는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간의 깊이를 말한다. 세잔의 사과, 사과를 자르는 야무진 칼, 칼이 자전거의 길을 만드는 장면에서 ‘도시와 조각’이라는 전제 조건을 가진 창원조각비엔날레와의 방향성을 새롭게 생각했다. 이 시를 제목으로 결정한 계기는 박현, 이미지 큐레이터와의 대화였다. 우리는 시와 언어의 관계, 땅의 깊이, 루시 리파드가 쓴 다양한 글, 암각화와 조각을 인류학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토의했다. 도시와 조각이라는 상투적인 틀에서 벗어나 ‘길 만들기’로서 비엔날레를 경험하게 하자고 합의했다. 성산패총에서 동남운동장까지 이어지는 동선을 일종의 길 만들기로 여겼다. 조각을 깎는 행위, 시퍼런 칼이 둥글게 둥글게 만들어내는 길이 이번 전시의 구상이었다.

— 주요 의제로 조각의 수평성, 여성과 노동, 도시의 역사와 변화 등을 내세웠다.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첫 여성 감독인 만큼 여성과 노동 키워드에 더욱 눈길이 가는데.

Hyun ‘여성과 노동’은 손과 공장/부엌, 만들기의 장소에 관한 이야기다. 이때 부엌은 철과 나무, 거대한 건축과 작은 공간을 아우르는 하나의 개념어다. 물론 부엌이 전시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조개 무덤이 우리의 손과 입, 몸과 머리를 움직이게 했듯 여성과 노동은 살림, 1970~80년대의 노동, 엄마의 시와 노래 등을 모두 말한다. 첫 여성 감독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의미를 갖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중요하다. 창원중앙역에 내리는 순간 우리는 이곳이 남성 중심의 공업, 기계 도시임을 알 수 있고, 굳건한 조각의 세계에서 여성의 목소리와 자리는 빗금 그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과 노동은 다듬기, 만들기, 변화, 주물에 시간성을 부여하는 장면을 만든다. ‘노동’이라는 말은 ‘만들기’로 대체될 수도 있고, 때로는 둔탁하기 이를 데 없는 언어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노동, 작업, 행위를 구별했다. 작업은 생존을 넘어 의식 있는 행위로 세상에 무언가 남긴다. 노동은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생산하려 자연에 의식적인 변형을 가한다. 의식적인 변형으로 조각이 만들어지고, ‘나이를 먹으며 돌보며 사는 행위’ 또한 그렇다. 노동을 하려면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전시 만들기의 노동이 현시점에서 어떤 공장이며 또 미래가 될지 질문하고 싶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79d3f0d7f986796ebcb58a76113db355be6ebec2-4759x6984.jpg?rect=0,541,4759,6268

이동훈<화병>나무에아크릴릭53×53×78cm2019

— 올해 전시는 성산아트홀, 성산패총, 창원복합문화센터 동남운동장,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에서 펼쳐진다. 특히 조개더미 성산패총과 산업 단지 근로자들의 활동지였던 동남운동장은 창원의 지역성이 물씬 묻어나는 새로운 전시 공간이다.

Hyun 성산패총 야철지를 경험한 순간이 ‘전시 만들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공장 소리가 들리는 문화 유적지 성산패총 자체가 조각적이라고 느꼈다. 조각이 놓임으로써 공간에 동선이 생기고, 시점이 발생한다. 반대로 공간이 있음으로써 조각의 자리도 결정되고, 나름의 기운이 작용하는 풍수나 공간의 자장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야철지 앞의 설명문을 읽는다면 역사와 허구, 도시의 미래와 아주 먼 과거의 시간이 동시에 진동하는 미세한 떨림을 경험할 것이다. 또 한때 근로자의 쉼터이자 체력 단련장이었던 동남운동장은 축구 골대가 남아있는 빈터였고, 비엔날레 이후 다른 건물이 생겨난다. ‘큰 사과가 소리없이’의 사과가 깎이는 운동장, 시간이 흐르는 모습, 창원의 변화가 두 공간에 담겨있다고 느꼈다.

— 각 전시장의 메인 콘셉트와 대표 출품작을 소개해 달라. 전시 디스플레이에서 특별히 신경 쓴 포인트가 있다면?

Hyun 성산아트홀과 문신미술관은 인공 도시와 자연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곳이다. 성산아트홀에서는 전시동 지하부터 2층, 1층으로 이어지는 동선 안팎을 경험하고, 문신미술관에서는 맞은편 바다와 언덕을 올라 문신의 무덤과 주변 정경을 봐도 좋겠다. 총 네 곳의 전시장은 조각의 수평성, 도시의 역사와 변화, 여성과 노동, 공동체의 움직임을 교차한다. 테라스와 천장, 유리창의 시트지와 인공 폭포 등 각 공간을 보고 경험하는 방식에 따라 작가들이 첨예하게 조각의 자리를 찾고 만들었다.
우리는 작가들이 도시를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지 배워야 한다. 네 공간을 잇거나 절연하는 방식으로서 도시의 역사와 조각에 관한 언어들도 등장한다. 동남운동장의 신작들이 밤에는 어떤 모습일지, 관객이 언덕을 올라 성산패총의 고졸한 전시관 기둥을 보았을 때 건축과 조각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나는 이 전시에 청각적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소리와 음악적인 전시의 몇 장면들을 발견할지도 기대한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a1d2ab88ab30fcdb3dac7e330da1a53a587b303b-3668x4891.jpg?rect=0,379,3668,4133

감동환<종이와바다와유리병편지>문어발포스터29.7×21cm2024작가제공

— 당신은 그동안 독립큐레이터, 전시 공간 운영자, 미술평론가, 잡지 발행인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지만, 비엔날레 감독은 처음이다. 동시대에 비엔날레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Hyun 오래 생각한 주제이다. 도시를 이동하며 시점의 방향을 바꿔보는 일은 중요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한 구절이 있지 않나. 천국에서는 천국만 생각하지만,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생각한다. 어떤 공간에서 우리는 두 개 이상의 다른 시공을 교차하듯 다이어그램을 그린다. 그러니까 서울 밖에서는 서울에 있는 이들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다. 사실 2010년대 이후 비엔날레에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창원조각비엔날레를 만들면서 많은 고민이 들었는데, 디자이너 슬기와민의 최성민이 어느 토론회에서 말했듯, ‘전시회’의 ‘모일 회(會)’ 자에 답이 있는 듯하다.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인다’는 행위 말이다. 그는 이를 ‘성지 순례’에 비유했는데, 수평적인 모임의 장에 다층적인 시점을 엮어보는 것에서 비엔날레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비엔날레는 ‘방향성을 지닌 가변적 시스템’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 다양한 전시와 이벤트, 예술행정과 지자체의 목표, 지역의 권력관계에서 미술이 미술로 자리하려면 비엔날레를 지탱하는 예술행정의 전문화가 필요하다.

— 동시대 한국 미술씬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근자의 쟁점을 꼽아보자면?

Hyun 미술보다 행정이나 제도, 관, 프리즈 등의 ‘행사 친화적’인 환경이 문제 아닐까. 미술의 본래 언어를 날카롭게 만들고, 작품이 ‘존재하는 방법’을 다각도로 사고할 가능성이 어디 있나 봐야 한다. 오늘날은 아예 사고의 프레임 자체가 위기이다. 특정 대상이나 사물의 가치를 논할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사라진다고 느낀다. 자본의 위계 구조나 물량 공세 외에 한 개인이 갖는 힘이나 교란, 위상의 변화에 대해 미술작품을 통해 말하려면 비평가, 큐레이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근자의 쟁점, 이슈라면 모두가 미술에 대해 말하지만, 어떤 때에는 그 무엇도 미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상적인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 고민하게 된다. 결국 예술교육이 중요하며, 비엔날레는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배움의 장이다.

— 한국 미술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해 보는 값진 시간이었다. 특히 올해 창원조각비엔날레에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젊고 새로운 작가군이 다수 보인다. 이들이 깎아낼 ‘조각의 길’이 더욱 궁금해진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9a21c972ce50528ae2b2dbacbe91ea499d6dc735-4263x6394.jpg?rect=0,1505,3574,4649

현시원/큐레이터,미술평론가,시청각디렉터,『계간시청각』편집위원,서울시공공미술위원.저서『1:1다이어그램-큐레이터의도면함』,『사물유람』등.Photoby오석근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2024.11.01~)
[만료]고흥군청(2024.11.01~2025.01.08)
[만료]한솔제지(2024.11.13~2025.01.08)
아트프라이스(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