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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umnPreview]강원국제트리엔날레

‘개미굴’은발밑의생태예술

2024/09/20

강원국제트리엔날레 9. 26~10. 27 평창송어종합공연체험장 외 진부면 일원
강원트리엔날레는 작가트리엔날레, 키즈트리엔날레, 국제트리엔날레로 구성된 국내 최초 3년 주기 국제 예술제이다. 올해 강원국제트리엔날레 예술감독 고동연은 <아래로부터의 생태예술: 강원, 개미굴로부터 배우다>전을 선보인다. 기후 위기 시대에 맞서는 대안으로 생태예술적 태도를 강조한다. 21개국 작가 51팀이 130여 점을 출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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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나방8-은밀한세계>천에아크릴릭130×130cm2024

— 올해 강원국제트리엔날레는 기후 위기 시대에 예술의 역할을 묻는다. 기획 의도와 전시 주제를 자세히 설명해 달라.

Koh 이 주제에 내가 생태예술 전시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을 반영했다. 생태예술이 최근 국내 미술계에서도 인기 있는 주제로 떠오르면서 식상하게 느끼는 부분이 없지 않다. ‘생태예술’이라고 하면 나무, 풀, 돌로 그득한 일종의 자연주의 예술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생태예술전을 나무와 풀로만 채우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전시 목적을 “생태예술은 형태가 아니라 태도”로 내세웠다. 다음으로 전시나 포스터에 자연, 풀, 나무 등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거시적으로 자연을 아름다운 풍경쯤으로 여기는 방식과 거리를 두고자 개미굴을 생각했다.

— 특히 지구의 환풍구라 불리는 ‘개미굴’에서 영감을 얻었다. 개미굴이 어떻게 동시대의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는가?

Koh 엄밀히 말해서 생각해 냈다기보다는 원래 개미굴과 같은 개념을 좋아했다. 1960년대 건축가이자 예술가 공동체인 미국의 ‘개미굴(Ant Farm)’에 대해서 리뷰도 썼고, 당시 영국의 공상 과학 소설이 유럽의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곤충이나 유기적인 형태에 관심을 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가 쉽게 바라보는 자연이 아니라 우리의 발밑 자연을 다뤄보자고 결심했다. 더불어 ‘생태’를 떠올릴 때 단순히 식물, 동물이 아니라 유기적인 구조에 관한 관심이 맞물려서 지하의 개미굴을 떠올렸다. 또한 『최재천의 곤충사회』를 읽으면서 곤충 사회, 특히 개미와 벌과 같은 유기적인 곤충 사회가 다윈의 초기 종의 기원에서부터 상당한 고심거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곤충과 같은 미물도 사회적인 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적자생존의 원칙에 맞지 않을뿐더러 휴머니즘의 기본을 이루는 인간의 이타성과 도덕적 우월성에 근거한 인간 예외주의도 성립이 안 되니까 말이다. 물론 이 논쟁은 훨씬 복잡한 여타 쟁점과 연관되지만, 이 주제가 철학적, 생태학적, 미학적으로 유의미하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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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이<ThePrayerontheWind>승복,편지,매트,베개혼합재료260×218×223cm2015/202

— 동시대미술에서 생태예술은 이제 낯설지 않다. 오히려 유행처럼 수많은 기획전, 비엔날레의 주제로 언급되고 있다. 이번 강원국제트리엔날레가 어떤 독특한 방식으로 생태예술을 구현할지 청사진을 그려달라.

Koh 맞는 말이다. 주제를 참여 작가군에 적용하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문제가 관건이다. 개미굴의 개념을 어떻게 재현할지, 그리고 재현을 넘어서 관객이 어떤 경험을 얻어갈지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먼저 입구에 굴처럼 길게 통로를 만든 다음 요안나 라이브스카의 <뿌리 도시, 강원>을 설치하고, 이어서 유비호의 <철학자의 망상>을 배치하려 한다. 또한 정정엽의 곤충 그림 연작을 놓을 예정이다. 아래로부터의 개념을 물리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개념은 단순히 지하 세계를 재현하지 않는다. 위와 아래의 위계질서를 흔들고, 미시적인 존재가 도약하는 새로운 구도를 만들려는 태도. 넓은 의미에서 생태예술이 장려해 온 삶의 자세에 주목하는 것이다.

— 이번 전시는 평창송어종합공연체험장 메인홀을 중심으로 파빌리온, (구)평창문화도시재단, 게이트볼장, 월정사, 진부시장에서 열린다. 주요 출품작을 소개해 달라.

Koh 평창송어종합공연장에는 작가 30인(팀)이 참여하는데 입구의 <뿌리의 도시>가 일종의 지하 세계를 의미한다면 메인홀 입구의 작업은 주로 바닥에 놓이거나 흙, 하천, 미시적인 시점 등을 재현하는 반면, 무대 위에는 정연두의 <백년의 여행기>가 올라간다. 이어서 1960년대 어스아트로 유명했던 데니스 오펜하임이 계단의 위아래를 계속 이동하면서 위계질서를 상징적인 의미에서 혼동시킨다. 그리고 메인홀의 뒷방에는 토마스 사라세노의 VR작품 <궤도-s>가 놓인다. 메인홀은 아래에서 위로 서서히 올라가고, 마지막에 중력을 벗어나 전혀 다른 세계를 꿈꾸는 구성을 따른다. 개미굴의 개념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재현의 방법과 함께 좀 더 형이상학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위아래의 위치를 전복하는 등 우회적으로 생태적인 태도를 전달하려 했다. 메인홀에는 임시 벽을 적게 세우고 바닥에 놓는다든지 했는데, 생태예술이라는 태도를 전시 설치 과정에 반영하고 전시에서 파생되는 잉여물을 줄이려는 의도였다.

—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핵심 키워드는 ‘에코 페미니즘’이다. 여기에 ‘기술’까지 접목해 특별전을 펼칠 예정이다. 생태예술에 여성과 기술을 접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Koh 에코 페미니즘은 여성주의, 생태주의, 기후 생태학, 정치학, 자본주의 등 여러 이슈와 맞물려 있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여성의 역할에 주목하는 것이다. 여성은 여러 문화권을 통틀어 기우제 등에서 중요한 퍼포머로 나서왔다. 자연을 공격하거나 개발하지 않고 보듬는 역할을 하거나, 자연과 접촉하면서 먹거리를 마련해 온 존재이다. 이전에 강원트리엔날레에서 다룬 자연의 모습이 지나치게 비장하거나 남성주의적이라고 느껴져서 생태예술과 관련해 여성주의적 관점을 끌어오고 싶었다. 전시 섹션 3의 제목은 ‘그녀의 디지털 자연’이다. 사바 칸이 리더로 있던 파키스탄 여성 그룹은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댐 건설의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어 왔다. 제주에서 해녀와 생활하면서 행동가, 예술가, 인류학적 리서치를 이어가는 요이, 자연의 형태에서 패턴을 발견하는 김지수, 오순미, 이지연, 신경진은 여성과 자연이 생존하는 방식 사이의 접점을 찾고 있다. 최근 30~40대 여성 작가들이 어떻게 과학과 기술의 협업을 주제로 한 예술장르에서 여성과 자연의 독특한 관계성에 주목하고 있는지 확장해서 해석하고자 했다. 또 9월 7일 서울예술인지원센터에서 열리는 심포지엄 ‘여성 일꾼과 에코 페미니즘’에서 강원도 여성 농민이 주도하는 씨앗 운동이나 제주도 해녀의 삶과 미학적 의미에 대해서도 추가로 조망할 예정이다.

— 참여 아티스트의 라인업이 짱짱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놓쳐서는 안 될 하이라이트 출품작을 추천해 달라. 또 참여 작가의 작품은 전시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Koh 라이코브스카의 <뿌리 도시, 강원>, 최근 파리 팔레드도쿄에서 수상한 볼스카의 <저항으로서의 여가>, 올해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전시에 참여해 좋은 반응을 끌어낸 조지 오소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서도호와 함께 전통 천 잇기나 퀼팅을 후기식민주의 관점에서 다룬 부이 콩 칸, 아즈텍 문명의 기초 양식에 해당하는 씨앗을 관객과 공유하는 보스코 소디 등을 추천한다. 또한 어스아트의 선구자인 데니스 오펜하임과 아나 멘디에타의 국내에 비교적 덜 소개된 영상작업도 전시된다. 국내의 경우 정정엽, 이수경, 정연두, 유비호 등 유명 작가는 물론 30~40대의 설치 및 사진작가를 다수 포함했다. 박문희, 임승균, 안종현, 임윤경, 하루나의 작업으로는 생태예술적인 태도가 무엇인지 미술, 자연 과학, 타자성 논리를 경유하며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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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엄경환<끝까지아름다운3>한지에먹과채색148×74cm2023

— 비엔날레는 개최 지역을 대표하는 미술행사인 만큼 지역성과 분리할 수 없다. 강원의 현대미술 발전과 다양화를 위해 강원을 대표하는 트리엔날레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 보인다. 강원국제트리엔날레는 지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보는가?

Koh ‘글로컬리즘’이라는 신조어가 사용된 지도 어언 20년인데, 과연 무엇을 성취하거나 하지 못했는지 논하려면 목적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 아마 이 부분은 계속 동상이몽의 상태로 이어질 것이다. 지역 문화 재단과 미술인 협회, 독립적인 지역 미술인, 서울의 미술계 등 다양한 집단이 국제 예술행사에 원하는 바는 모두 다르리라. 외부자로서 지역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쉽게 제안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무언가 다르게 해보려고 노력했다. 지역 아동 센터의 센터장과 인터뷰하고, 경로당 복날 파티에 참석하고, 경로당 회장님을 전시 참여자로 초빙하고, 진부시장의 동네미술관을 위해 매일 가게 문을 두드리고,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고, 진부역 인구분포도 리서치했다. 역사, 장소, 국가의 정체성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이들의 욕망으로 정해진다고 한다. 그러한 오류를 피하고자 철저하게 내가 본, 그래서 한정적이지만 더 다양하고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평창 진부면에 집중하려 했다.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아트씬은 큰 분기점을 맞았다. 미술시장이 성행하면서 키아프 & 프리즈 서울을 중심으로 매년 가을 초대형 미술축제가 펼쳐진다. 지역 트리엔날레를 이끄는 예술감독의 입장에서 오늘날 한국 미술씬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Koh 국제 미술전에 참여하는 국내 작가를 글로벌 화랑과 연결하는 방안에는 여러 단계의 논의가 필요하다. 해외에서도 실험적인 매체를 다루는 작가가 주요 화랑에 진출하려면 훨씬 많은 시간과 중간 과정이 있어야 한다. 즉 미술관 전시 등으로 몸값을 올리는 등 다각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당장 국내 트리엔날레를 통해 해외 화상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건 시기상조이다. 대신 참여 작가의 국제화를 돕기 위해 어떤 행사를 준비했는지 소개하겠다. 3명의 해외 커미셔너와 해당 국가의 작가를 선정했는데, 강원 작가 공모에서 서류 심사를 거친 최종 8인 중 전시에 참여할 4인을 커미셔너와 함께 줌 미팅으로 결정했다. 오프닝 다음날 국제 심포지엄에서 크리틱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커미셔너들은 국내 미술계와 많은 접점을 갖고 있기에 후속 프로젝트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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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호<예언가의말>단채널영상,컬러,스테레오사운드13분30초2018/2024

— 한국 미술계가 지금의 열기를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제언해 달라.

Koh 이 질문에는 트리엔날레와 같은 국제 행사가 미술시장과 더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깔려있다고 본다. 일단 국내 기업이나 주요 화랑의 다양한 협찬이 필요하다. 현실은 국내 유명 갤러리조차 지역의 미술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물론 아직 강원트리엔날레의 지명도가 적어서겠지만, 공공 기금에 의존하는 시스템도 재고해야 한다. 미술시장과 트리엔날레가 접점을 찾으려면 국내 기업, 화랑과 연계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전시나 아트페어 등의 한시적인 행사로 누군가 뽑히고 해외로 진출하기를 바라기보다 기업이나 시장의 우회적인 지원이 선행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지금보다 다양한 접점이 만들어질 수 있다.

— 이번 강원국제트리엔날레 이후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테다. 미술비평가로서 당신의 최종 꿈은 무엇인가?

Koh 귀국 후 18년간 한국 작가나 문화를 인문 과학적인 틀에서 설명하고, 해외 미술 전문가에게 소개하는 일을 해왔다. 내년에는 영국의 주요 아카데믹 출판사인 블룸즈버리에서 이정실 교수와 공저한 전후 교과서 『맥락에서의 한국미술, 1950-현재』가 발간된다. 나는 한국 문화와 현대미술의 등장 배경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려 한다. 이 책은 지난 30여 년간 한국 미술을 월드컵 이후 개인주의의 발달, 다문화, 가장의 실직, 도시화 등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에서 읽어낸다. 앞으로도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미술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저술 활동을 지속할 것이다. 또한 지난 2~3년간 강원도에서 심사하면서 서울의 많은 작가가 이곳으로 이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지역 작가는 나이 든 세대를 일컫는 것 같은데, 최근에는 지역에도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있고, 중앙과 지역의 경계가 불확실하기도 하다. 그 경계를 선호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왜 문제인지, 문화 정책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나는 비평가이자 저술가로서 작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30~40대 작가들이 국내 미술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나도 함께 성장해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어느 정도 작업 세계가 형성된 작가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기회는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중견 작가 지원 프로그램도 극소수 작가만 혜택을 받는다. 너무 늦기 전에 40대 작가들에게 더 많은 국내외 진출 기회를 주려 한다.

— 솔직한 답변에 감사드린다. 올가을 평창에서 많은 관객이 즐거운 ‘개미굴’ 탐험을 떠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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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연/미술평론가,이화여대겸임교수.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집행위원,고양야외조각축제커미셔너역임.저서『소프트파워에서굿즈까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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