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상 수상의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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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그림자의 그림자(홀로서다)> 청동 230×216×800cm 2010
2022년을 빛낸 미술인들의 상반기 수상 결과가 발표되었다. 수상 제도는 작가에게는 고단한 미술업의 여정을 독려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위한 포석이 된다. 올해는 35년 전통의 유서 깊은 미술상은 물론, 신설된 미술상까지 더해져 아트씬의 활기를 한층 높였다. 우선 국내 원로, 중견 작가를 지원하는 상으로 호반미술상, 김복진미술상, 이중섭미술상이 있다. 신진 작가 발굴에 힘써온 에르메스미술상, 그리고 기획, 이론, 행정가를 조명하는 석남이경성미술이론가상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미술의 경향과 담론을 제시하는 5개 미술상, 6인의 소식을 모았다.
신진 작가에서 미술이론가까지
호반문화재단은 국내 중견과 원로 작가를 지원하는 호반미술상을 2022년 신설했다. 제1회 호반미술상에는 강운(1966년생), 홍순명(1959년생) 작가가 선정됐다. 주최 측은 “주류 미술계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작업 세계를 키워온 행보가 선정 사유로 작용했다”라고 밝혔다. 지난 4월에는 수상자 2인의 회고전(4. 20~5. 14 전쟁기념관)이 열렸다. ‘구름 작가’로 알려진 강운은 지난 40여 년의 화업을 3개 연작 <공기와 꿈>, <물 위를 긋다>, <마음산책>과 아카이브 영상으로 펼쳤다. 작가는 하늘과 구름 같은 자연의 형태를 내면에 빗대어 추상화로 그린다. <마음산책> 연작은 언어로 형용되지 못한 채 마음속에 켜켜이 쌓아 두었던 감정의 응어리를 촉각적 화면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오랜 자기 탐구의 결실로, 단색조 물감을 여러 번 덧입혀 상흔을 덮고 치유하는 과정으로 제작했다. 홍순명은 198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까지의 화업을 일대기순으로 펼쳤다. 작가는 회화, 입체, 미디어아트 등을 아우르며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실험해 왔다. 대표작 <사이드스케이프> 연작은 사회 정치적 사건에 대한 집단 기억을 주제로, 보도 사진을 작은 화면으로 분할한 대작 풍경화와 사건 현장에서 수집한 오브제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구성된다. 주변(side)과 장면(scape)을 결합한 제목처럼, 작가는 중심과 주변을 차별하는 사회적 위계를 작품으로 꼬집고, 소외된 존재를 조명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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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 <마음산책-카이로스의 시간> 캔버스에 유채 227.3×181.8c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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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명 <바다-태풍> 캔버스에 유채 400×840cm 2021
청주시립미술관은 한국 근대미술의 토대를 이룩한 정관 김복진을 기리는 김복진미술상을 신설했다. 근현대조각사 발전과 한국 미술의 세계화에 이바지한 작가를 조명하는 취지다. 제1회 수상자에 조각가 김영원(1947년생)을 선정했다. 주최 측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 비평과 교육 등 미술계에 기여한 공로와 삶과 업의 일치’를 선정 사유로 밝혔다. 김영원은 1976년 한국구상조각회를 결성하고, 작업 전반에 걸쳐 국내 ‘리얼리즘 조각’의 지평을 넓혔다. 작가는 후기 산업 사회의 익명성과 신체의 해체를 주제로 조각해 왔다. 90년대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은 신체의 앞뒤가 역전되고, 잔상이 교차하는 형태로 영혼을 상실한 인간 소외를 강조했다. 최근에는 신체 조각을 야외에 설치해 인간 군상을 풍경으로 펼쳤다. “후진을 격려하며 우리 조각예술 문화의 국제화에 일조하라는 뜻으로 받들겠다”며 소감을 밝힌 김영원은 올해 12월
청주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조선일보 주관 이중섭미술상은 국내 중견과 원로 작가를 꾸준히 지원해 왔다. 올해 제35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로 작가 윤동천(1957년생)을 선정했다. 윤동천은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다원주의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다. 회화, 설치, 디자인을 아우르며 다채로운 장르를 소화하고, 적극적인 소통을 추구한 작업 스타일이 이번 수상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작가는 평범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 일상을 예술로 만든다. 그의 작품에는 날카로운 사회 메시지가 위트 있게 담겼다. 일례로 백화점 쇼윈도에 설치한 <삶의 무게>에는 권력을 상징하는 권총 앞에 빨래 도구를 늘어놓아 부패한 정치상을 은유했다. 소박한 소재와 제목, 직관적인 언어유희를 고집해 온 그는 난해함 대신 누구나 쉽게 읽는 작업을 추구한다. 작가는 지난해 30년간 재직한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직에서 퇴임했다. 이제 전업 작가로서 일상을 예술로 승화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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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천 <돼지 발톱에 봉숭아 물들이기>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3×162.2cm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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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천 <Deep in the Forking Tanks> 단채널 비디오 3채널 오디오 42분 2019
2000년 제정된 에르메스재단미술상은 신진 작가를 지원해 왔다. 패션 기업 에르메스가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수상자에게 유럽 미술계와의 네트워킹 기회를 마련한다. 제20회 에르메스재단미술상 수상자에 작가 김희천(1989년생)을 선정했다. ‘테크놀로지를 통한 자아 인식의 재구성을 도전적으로 다룬 동시대성’을 높게 평가했다. 김희천은 영상 매체를 기반으로 촬영한 푸티지, GPS, VR, 게임 등의 테크놀로지를 혼합해 디스토피아를 상상한다. 작가는 <바벨>, <탱크>, <커터 3> 등에서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가상과 실재 감각의 경계가 사라진 기이한 풍경을 연출했다. 김희천은 수상전으로 내년 하반기 아뜰리에에르메스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마지막으로 인천시 주관 석남이경성미술이론가상은 미술이론과 현장에 공로를 세운 연구자, 교육자, 행정가, 학예연구사를 지원한다. 제10회 수상자엔 전남도립미술관장 이지호(1959년생)를 선정했다. 주최 측은 선정의 이유로 “대전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에 이어 전남도립미술관장으로 역임하며 지역 예술문화 확대에 기여한 공로를 높게 평가했다”라고 밝혔다. 퐁피두센터, 조르주루오재단과 협력해 루오 회고전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전남도립미술관 2022)를 기획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지호는 “지역에만 안착하는 미술관을 넘어 지역민과 지역 예술가가 세계 미술계와 발 맞춰 성장해야 한다”라며, 향후 지역 미술관 인프라의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 주예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