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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예술은하나!

제12회베를린아트위크폐막

2023/11/17

베를린아트위크가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베를린 전역에서 열렸다. 주요 미술관, 갤러리, 비영리 공간, 공항 등에서 전시, 행사, 아트페어를 동시 개최해 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베를린아트위크는 도시의 전통과 예술사를 엮은 프로그램으로 시민이 향유하는 미술축제를 도모한다. 필자는 베를린아트위크의 하이라이트 스폿을 방문해 베를린 아트씬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당면 과제와 향후 개선점을 짚는다. / 김 지 연

컬처 서머 페스티벌 행사(2023) 전경.

컬처서머페스티벌행사(2023)전경.

네스토 지메네스 <Proyectos Monclova> 종이에 파스텔 112×76.5cm 2023

네스토지메네스<ProyectosMonclova>종이에파스텔112×76.5cm2023

2012년 시작한 베를린아트위크는 도시 곳곳의 예술현장을 조명하고 예술인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됐다. 올해 12회차인 베를린아트위크는 대규모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했지만, 규모가 커지며 두 가지 과제가 따랐다. 첫째,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행사임에도 일반 관객에겐 진입 장벽이 높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주최 측 쿨투르프로젝트베를린(Kulturprojekte Berlin)이 ‘접근성 완화’에 힘을 쏟았다. 특히 비미술인 관객을 겨냥해 퍼포먼스, 워크숍, 스크리닝, 요가, 디제잉 등의 프로그램을 알차게 준비했다. 둘째,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점. 베를린에는 많은 창작자가 거주하지만 그에 비해 컬렉터와 예술애호가를 위한 콘텐츠가 적다. 올해는 도시의 문화예술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관객 유치에 열을 올렸다. 베를린 음악계와 협력한 음악 페스티벌 ‘베를린아토날(Berlin Atonal)’, 공연계와 협력한 ‘헤벨암우페레(Hebbel am Ufereh)’를 기획해 다양성을 더했다. 또 아트페어 ‘포지션즈베를린(Positions Belrin)’이 아트위크 기간 개최돼 관객 유치와 미술시장 활성화에 힘을 보탰다. 미술계 중심의 네트워크를 문화예술 전반으로 확장해 ‘베를린 아트피플을 위한 축제’로 이끌겠다는 포부다.

현재 진행형 ‘예술도시’

베를린아트위크는 도시에 깃든 실험 정신과 예술의 역사를 살려 개성을 심화한다.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키워드가 ‘퍼포먼스’와 ‘리노베이션’이다. 먼저 주요 협력 기관인 ‘베를린 신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은 지난해부터 아트위크와 연계해 퍼포먼스 페스티벌 ‘퍼폼!’을 기획했다. 올해는 오노 요코의 1964년 퍼포먼스 <컷 피스>를 재연해 관객이 직접 퍼포머의 옷을 오리도록 유도하고 현대미술의 문턱을 낮추려는 목표에 다가갔다. 또 미술관은 이번 아트위크를 위해 조경사 그룹 ‘아뜰리에르발토(Atelier le Balto)’를 선임해 정원을 조성하고 전체 아트위크의 안내 센터이자 부대 행사 공간으로 활용했다. 신국립미술관이 미술관 접근성을 높이려 노력한 것은 ‘퍼폼!’이 처음은 아니다. 2022년 1월 6년 만에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미술관의 관장으로 취임한 클라우스 비셴바흐(Klaus Biesenbach)는 미술관의 새로운 비전으로 ‘열린 미술관’을 내세웠다. 신국립미술관에서 아트위크와 연계해 열린 여러 프로그램은 이러한 비전과 맥을 같이 한다.

함부르거반호프(Hamburger Bahnhof) 현대미술관에서는 튀니지 출신의 베를린 기반 작가 나디아 카비-링케(Nadia Kaabi-Linke)의 개인전과 퍼포먼스가 열렸다. 관장 틸 펠라스(Till Fellrath)가 직접 입구에서 관객을 맞고 프로그램을 안내하며 “베를린아트위크는 현지 예술인의 네트워킹을 위한 행사”라고 소개했다. 핵심은 베를린에 이미 국제적인 문화예술인이 모여 있어 굳이 ‘글로벌’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도시 본연의 국제성을 살려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이 말을 반증하듯, 아트위크 기간 현지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김수자, 김영나, 탁영준의 개인전이 열렸고, 아트페어 포지션즈베를린에는 한국 갤러리 디스위켄드룸이 참가해 김진희의 작품을 선보였다.

베를린은 버려진 공간을 무단 점거해 예술공간으로 사용하는 ‘스쿠어팅(Squatting)’의 고장으로, 이런 관행은 많은 독립 기관, 비영리 공간, 레지던시가 오래된 건물을 고쳐 사용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번 아트위크 기간에는 사진 전문 미술관 포토그라피스카 베를린(Fotografiska Berlin)이 재개관하며 스쿠어팅의 상징이었던 쿤스트하우스타헬레스 (Kunsthaus Tacheles)를 리노베이션했다. 개관전으로 캔디스 브리츠(Candice Breitz)의 개인전 <화이트 페이스>를 열고 남아프리카 출신 예술가로서 백인의 특권을 성찰했다. 포토그라피스카는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베를린에서 가장 개방적인 미술관이 되겠다’고 선언한 후, 미술관에 많은 상업 시설을 들이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인테리어로 탈바꿈했다. 일각에서는 타헬레스의 상징성이 휘발되고 예술을 장식품으로 만든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럼에도 미술관은 기금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적 자립’을 위해 변화를 단행했다.

로렌 모팻 <Local Binaries> 스틸, VR쿤스트프레이스 2023

로렌모팻<LocalBinaries>스틸,VR쿤스트프레이스2023

이리나 트후츠스 <Transit> AW23컬렉션 2023

이리나트후츠스<Transit>AW23컬렉션2023

우퍼할렌(Uferhallen)은 폐공장을 리노베이션한 레지던시다. 레지던시는 공장의 소유주가 바뀐 뒤 언제 공간이 사라질지 모르는 문제를 반영해 전시 <자주 묻는 질문>을 열었다. ‘예술계는 어떠한 위험에 당면해 있는가?’ ‘예술가와 문화 생산지는 도시 주변부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베를린처럼 급변하는 대도시가 창의적 발전을 위한 자유를 계속 보장할 수 있도록 경제적, 예술적 이익 간에 균형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할까?’ 등의 질문을 던진다. 아트위크 개막 전 베를린에서는 비영리 공간을 위한 정부 지원금이 예산안 단계에서 삭감되는 일이 있었다. 독립 기관과 비영리 공간은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며 자생력 확보를 위한 토론을 열었다. 우퍼할렌의 질문이 현지에서 여전히 공감을 이끌어내며, 유효함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혹자는 이번 베를린아트위크에서 비영리 단체의 활동이 잘 보이지 않았던 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타지인의 눈으로 본 베를린아트위크는 한시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이벤트’라기보다는 도시 자체가 예술가의 자양분이 되도록 하는 장기적인 관점의 행사였다. 도시가 관객과 예술을 매개해 진입 장벽을 낮춘다. 여기엔 현재 진행형 ‘예술 핫 스폿’이고자 하는 베를린의 바람이 담겼다. 쏟아지는 일정을 소화하고 나니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유산이 어떻게 동시대의 창의성과 만나 우리를 더 흥미로운 삶의 장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자주 묻는 질문’ 아래로 여정을 마친 질문을 덧붙인다.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