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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셋이모이면세상을깬다!

페미니즘미술신간,근현대부터동시대,퀴어까지

2024/11/04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여성 예술인의 대약진이 주목받는 지금. 한국 여성주의 미술담론의 질적, 양적 확장을 도모하는 신간 세 권을 소개한다. 그 주인공은 『그들도 있었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만든 여성들』(윤난지 외 52인, 나무연필), 『페미니즘 미술 읽기: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김홍희, 열화당), 『퀴어 미술 대담: 동시대 한국 퀴어 미술의 현장』(이연숙·남웅, 글항아리)이다. 각 책은 다른 방법론으로 여성 미술에 접근하지만, 서로를 상호 보완하며 하나의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다. 이 세 권을 다시 ‘접속’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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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자<자화상>캔버스에유채,청바지,사진162.2×130.3cm1994_『그들도있었다』수록.

먼저, 『그들도 있었다』는 한국 1세대 현대미술사학자이자 전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윤난지가 엮었다.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금성출판사, 1975)에 여성 미술인은 고작 4명밖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총 두 권으로 구성된 책에는 나혜석 정찬영 박래현 김정숙 윤영자 김윤신 등의 1세대 화가와 조각가를 포함해, 이신자 석란희 최욱경 이숙자 송수련 정보원 윤석남 박영숙 노은님 정강자 차학경 강애란 등 105명의 단편 작가론이 수록됐다. 회화 조각 사진 영상 공예 설치 등의 장르에서 활약한 ‘여성 선구자’를 그러모았다. 이는 1971년 발표돼 남성 중심 미술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끈 린다 노클린의 논문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에 대한 미술사적 화답이다. “미술사에서 여성이 배제된 것이 생래적인 재능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 미술사를 보는 보다 공정한 시각을 이끌어 내는 데 책의 의의가 있다.” 『그들도 있었다』의 또 다른 성과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여성 필자를 규합했다는 점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는 무려 53인. 기관 갤러리 연구 교육 언론 등 다양한 미술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힘을 합친 협업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광의의 개념에서 ‘여성의 공동체성’을 표방한다. 『그들도 있었다』에서 ‘그들’은 미술사에서 누락된 여성 작가이자, 이들의 재조명을 목표로 함께 모인 필자로서의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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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미술읽기』출간기념회.행사에는저자김홍희를포함해미술평론가백지숙,화가정정엽등이참석했다.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의 힘

다음으로 『페미니즘 미술 읽기』는 큐레이터이자 미술비평가로서 현장과 이론을 종횡무진하는 김홍희가 저술했다. 김홍희는 <팥쥐들의 행진>(1999)전을 공동 기획하고, 『여성과 미술』(눈빛, 2003)을 출간해 한국 아트씬에 페미니즘 돌풍을 불러온 주역이다. 그는 이번 책에서 한국 동시대 여성주의 미술의 ‘지형도’를 그렸다. 현재 페미니즘이 당면한 15개의 화두를 설정하고, 그에 알맞은 여성 작가 2~4인을 선정, 인터뷰해 생생한 현장 비평을 개진했다. 여성성과 섹슈얼리티(윤석남 장파), 몸의 미술(이불 이피 이미래), 광기, 에로스, 히스테리(박영숙 이순종 이은새), 저항적 여성 서사(임민욱 송상희 함양아 김아영), 디아스포라 미술(차학경 민영순 윤진미), 불편함의 미학(정서영 김소라 양혜규), 페미니스트 콜렉티브(정정엽 봄로야) 등의 주제에 맞춰 원로, 중진, 신진 여성 작가 44인을 매핑했다. 책 전체가 부계적 가치관에 맞서는 여성 미술의 ‘드림팀’이다. “2010년대 중후반 일어난 ‘페미니즘 리부트’와 이에 맞서는 역풍인 ‘백래시’ 사이를 통과하며, 2024년 현재 한국의 페미니즘은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을까. (···) 이 년 가까운 시간 동안 글쓰기에 매달리고, 작가들과 친밀하게 소통하면서 비평이나 큐레이팅이 ‘사랑의 행위’라는 평소 생각이 확고해졌다.” 이 책은 세대를 뛰어넘어 작업 세계를 공유하는 여성 미술인을 짝지어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각개격파로 활동하던 동료의 존재를 확인하는 ‘장’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또한 『페미니즘 미술 읽기』는 지금 아트씬에서 자신의 xy축을 고심하는 미술인에게 스스로 방향성을 점검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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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김홍희『페미니즘미술읽기』열화당2024/윤난지52인『그들도 있었다』나무연필2024/남웅·이연숙『퀴어미술대담』글항아리2024

마지막으로 『퀴어 미술 대담』은 젊은 미술비평가 남웅과 이연숙이 2023년 봄부터 여름까지 네 차례 진행한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1부 #퀴어 #미술 #비평, 2부 #공동체 #하위문화 #액티비즘, 3부 #정서 #자긍심 #부정성, 4부 #재현 #욕망 #불화로 구분된다. 큰 틀은 퀴어 미술이지만, 주로 남웅은 게이, 이연숙은 레즈비언 미술인의 입장을 대변한다. 생물학적 성별을 기준으로 여성 미술인과 페미니즘 미술을 논한 앞선 두 책의 ‘사각지대’를 깊게 파헤친다. 특히 이연숙은 여성 퀴어 미술과 (래디컬) 페미니즘 미술 사이를 오가며 둘의 합집합, 교집합, 차집합을 분석한다. “여성 퀴어 미술은 유연하다. 페미니즘 미술과 레즈비언 미술을 매끈하게 구분해 낼 수 없다. 여성 미술의 스펙트럼에 퀴어적 면모가 있으니깐. 여성의 범주와 정의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얘기를 모두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퀴어 미술의 문법과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한 풍부한 각주와 더 읽을거리 리스트가 ‘백미’다. 세 책은 여성들의 미술언어를 정교하게 가다듬고 있다.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2024.11.01~)
고흥군청(2024.11.01~
한솔제지(2024.11.13~)
아트프라이스(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