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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비엔날레의부활,‘오래된미래’로의여행

부산은지정학적으로특별한도시다.개항,한국전쟁,산업화의거친물결을거치면서특유의지역정체성을형성해왔다.이번전시는부산의과거를되돌아보며이주,여성,환경,기술문제에접근한다.필자는키워드의역사적맥락을살피고,주요출품작과의미를꼼꼼히분석한다.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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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다발로<무제:블루캐처;2022>철,그물,시멘트,PVA625×850×600cm2022_부산의어선에서사용되는그물을시멘트에담갔다가꺼내돛처럼펼쳤다.오래된유적이나바다깊숙한곳에서발견된난파선을연상시킨다.

2000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 이후 매번 부산비엔날레를 직접 보고 비평적 관점에서 기억하고자 노력해 온 입장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의 비엔날레에 참석할 수 없었다는 점은 참으로 아쉽기 짝이 없었다. 소셜 미디어로 분투하는 야콥 파브리시우스(Jacob Fabricius) 전시감독과 참여 작가들의 모습을 지켜볼 때, 아마 누구나 모종의 절박함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2022부산비엔날레의 기자 회견에서, 관계자들은 2020부산비엔날레가 당해 유일하게 강행 개최된 국제 비엔날레라고 강조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부산 사람 특유의 꾸밈 없는 다소 직설적 화법이었다. 웃음에서는 안도감과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드디어 다시 대형 비엔날레를 개막하게 됐다’는 다소간 믿어지지 않는 사실 앞에서 느끼는 안도감과 조심스러운 자부심, 그리고 ‘과연 앞으로도 이 국제 전시 제도를 순항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큰 질문 앞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약간의 두려움이 오묘하게 교차하며 뒤섞이고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뚫고

솔직히 말하면, 부산비엔날레는 매끄러운 운영으로 상찬을 받은 적은 없다. 늘 뒤죽박죽인 게 사실상 디폴트값이었지만, 종종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기획으로 찾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하지만 역시 전체적으로 보면 흥미롭게 심란한, 그런 불가해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과거 부산비엔날레는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실망을 통해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외에서 온 참여 작가나 미술인도 광주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부산에 오니까 좀 풀린다고 말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그게 덜 갑갑한 전시 덕분인지, 탁 트인 바다 덕분인지, 아니면 시원시원한 부산 사람들 덕분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랬다. 1990년대에는 ‘광주에 국제 영화제가 가고, 부산에 현대미술 비엔날레가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열기가 한풀 꺾인 현재의 상황을 보노라면, 역시 부질없는 망상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부산비엔날레나 광주비엔날레에서 개막일에 설치가 마무리되지 않는 작업들, 그리고 작업을 설치하느라 동분서주하며 울상을 짓고 있는 작가들을 보는 것은 예전엔 거의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어떤 면으로는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현장감을 느낄 수 있으니, 보는 입장에서는 더 재밌기도 했다. 분노하는 유러피언 미술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도 언제나 흥미진진했다. 언제나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웰컴 투 디어 더 파트 오브 디스 월드, 웰컴 투 코리아.”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김해주 전시감독이 기획한 2022부산비엔날레 <물결 위의 우리>는, 나의 작은 기대를 무너뜨리며, 모든 작업이 설치가 완료된 상태로 개막했다. 기자 회견 장에서 보도자료와 여타 온라인상의 사전 집행 기획의 아카이브를 살펴보면서 이미 조금 놀란 상황이었다. 온라인 저널, 준비 프로그램, 큐레이토리얼 워크숍, 참조점이 된 키워드들을 정리해 놓은 <부표들>, <뱃노래 프로젝트: 영도이로구나> 등은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쉽게 접근하고 살펴볼 수 있게 잘 정리돼 있었다. 대체 어찌 된 노릇이었을까?
9월 2일의 프레스 투어에는 예상 이상으로 많은 기자와 미술관계자가 함께했다. 프리즈 서울이 개막하는 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다소 놀라운 장면이었다. 비즈니스의 장이나 다름없는 VIP 파티가 연속되는 서울을 피해 부산을 선택한 이들이 적잖았다. 북위 25도선 이북의 바다에서 발생한 첫 번째 슈퍼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는 가운데, 이따금 거센 바람이 불고 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다행히 진행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변화한 부산비엔날레를 규정하는 첫째 특질은 새로운 조화와 균형에 있었다. 구시대의 비엔날레 제도를 이어받은 1980년대생 미술인과, 기존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여러분의 새로운 조화와 균형. 그러한 조화 속에서 ‘지역성의 역사적 맥락에 주목하는 대안 모색으로서의 비엔날레’를 재구성해 내겠다는 1980년생 김해주 감독의 의지는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또한 그와 함께한 1980년대생 미술인의 협업은 386세대가 주도하던 비엔날레에서 볼 수 없던 짜임새를 가능케 했다. 전시 공간 디자인을 맡은 김동희, 프랍서울이나, 웹 사이트 구축을 담당한 민구홍 매뉴팩처링 등은 인터페이스 차원에서 비엔날레의 지지체 역할을 잘 수행해 냈다. (웹 사이트에 하나 문제가 있다면, 검색창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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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봉엥캉가<나즈막한봉헌>나무,식물,흙,씨앗,끈,기름,물,향,퍼포먼스가변크기2022_광물의형태에서착안한카펫과신작조각퍼포먼스를공개했다.

네 가지 주제, 네 가지 장소

김해주는 전시를 다음의 네 가지 “주요 항로”로 소개했다: 1. 이주, 2. 여성 그리고 여성 노동자, 3. 도시 생태계, 4. 기술의 변화와 로컬리티. 나는 이를 ‘이주/여성/환경(자연)/기술’로 간단히 메모해 놓고 전시를 살펴봤다. ‘물결 위의 우리’라는 시적 정조의 대주제 아래에 놓인 하부 문제 네 가지는 전시 구성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각 전시 섹션과 출품작을 ‘이주/여성/환경(자연)/기술’의 필터로 재사고해 보지 않으면, 종종 하부 주제는 잊는 수가 있었다.

네 가지 소주제로 직조되는 맥락성은 다시 다음 네 곳의 각기 다른 장소에서 구현됐다: 1. 을숙도의 부산현대미술관, 2. 근현대 산업 유적지인 부산항 제1부두, 3. 옛 송강중공업의 영도 폐공장 건물, 4. 산복도로를 타고 올라가야 닿는 초량의 고지대 주택.
2022부산비엔날레엔 25개국 64작가/팀(80명)의 작업 239점이 출품됐는데, 신작이 40% 정도 된다고 했다. (부산비엔날레가 제작을 지원한 작업은 따로 목록을 만들어 공개하는 것이 매회 정례화될 필요가 있다.)

본 전시관 외의 특수 장소에서 펼쳐지는 전시가 많으면 사실 관람이 쉽지 않은 게 보통인데,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경우 사실상 주요 작업은 부산현대미술관과 부산항 제1부두에 밀집됐고, 영도와 초량 쪽에서는 보통 작업보다는 장소의 맥락성에 압도되는 터라, 하루에 관람을 마치는 데 큰 무리는 없어 뵀다. (즉, 3과 4번 장소에서는 그리 오랜 관람 시간이나 집중력이 요구되지 않았다.)

개항(1876)과 한국전쟁(1950~53)과 산업화를 거친 부산의 도시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전 지구적 ‘이주’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설득력이 높았지만, 역시 한국전쟁 시기의 부산을 더 적극적으로 재고찰하는 장치나 작업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좋았던 점 가운데 하나는 참여 작가 목록에 국적, 출생지, 거주지 및 활동지, 생년/결성 연도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돼 있었다는 것. 이런 디테일은 386세대가 만든 국내 주요 비엔날레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여성 그리고 여성 노동자’ 부분은 기존에 남성 미술인이 해당 주제를 다룰 때와는 사뭇 다른 부분을 기대했지만, 역시 참여 작가의 작품이 전시 감독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 전시의 키워드를 정리해 놓은 <부표들>을 보면, ‘고무노동자투쟁’을 김해주 감독이 직접 작성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만큼 그가 강조하고픈 역사였을 테다. 해당 사건을 다룬 출품작은 사실상 한 점 같은 석 점이었지만, 무척 공을 들인 프로젝트로서 빛을 발했다.
콜롬비아 보고타 태생의 콜롬비아/네덜란드 이중 국적자로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란시스코 카마초 에레라(1979년생)와, 한국 공주 계룡산 인근에서 태어나 수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가 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이수자 승려 법인(1962)의 협업으로 탄생한 그림과 영상은 보통의 비엔날레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종류의 신작이었다.

불화 <낙원으로의 여정, 오래된 미래-1>(2022)에서 화승 법인은 프란시스코 카마초 에레라와 협업해 남미 아마존과 아프리카의 고무 플랜테이션 및 그 착취 방식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이전된 사실을 연결하고, 그를 다시 부산의 고무 산업과 연결 지었다. 그림에서 각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하는 도상은 다소 상충하는 모습이었지만, 부산의 삼화고무에서 필 나이트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의 주문으로 첫 생산된 나이키 신발을 신고 춤을 추는 해골(죽음)의 모습은 잊기 어려운 이미지였다.
단채널 4K 비디오작업 <낙원으로의 여정>이나 함께 배치된 <고무 산업 자료 아카이브>는 <낙원으로의 여정, 오래된 미래-1>을 보조하는 것처럼 뵐 수밖에 없었다. <낙원으로의 여정, 오래된 미래-1>를 보자마자, 나는 삼화고무를 방문한 나이키 임원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에서 한복을 갖춰 입은 여성 노동자들이 생각났다. “NIKE POEPLE”이라는 배너 앞에서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백인 남성은 어딘지 불편한 모습으로 영원히 남아있다. 과도하게 환대를 받은 그는 다소간 죄책감을 느꼈던 것일까? 알 수 없다. 사진은 진실을 알려주진 않는다. <낙원으로의 여정, 오래된 미래-1>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니, 후속작이 예정돼 있다는 뜻일 터. 어디에서라도 꼭 성과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한데, ‘도시 생태계’와 ‘기술의 변화와 로컬리티’를 다루는 작업들을 보면, 한국인 작가와 외국인 작가 사이의 세계관 차이, 현실 인식 차이가 두드러졌다. 비백인계 외국인 참여 작가들은 자연환경과 기술 환경 사이에 놓인 인간을 재사고하며 포스트휴머니즘의 비평적 사고를 21세기의 방식으로 업데이트하는 가운데, 토속적/공예적 매체를 재창안해 인종 정치학의 맥락으로 자신의 문화적 배경과 하위 주체의 역사에 힘을 싣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아메리카 선주민의 안료 배합법과 아마테 종이를 활용하는 샌디 로드리게스(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멕시코의 바하 칼리포르니아, 티후아나에서 성장, 캘리포니아 거주), 무굴 제국 세밀화를 참조하는 아딜라 술레만(1970년 파키스탄 카라치 출생, 카라치 거주), 수제 와슬리 종이에 수채와 구아슈로 그림을 그리는 산신티아 모히니 심슨(1991년 호주 브리즈번 출생, 브리즈번 거주) 등은 그러한 경향을 대표했다.

하지만 한국계 한국인 작가들은 자연환경과 기술 환경 사이에 놓인 인간을 재사고할 때도 인종 정치학을 결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위 주체의 역사를 고찰할 때도 자기 자신의 주체는 초월적 관찰자 시점―종종 우월적 위상을 차지하는―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구식 민족 국가 정체성 비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딱히 찾기 어려웠다. 나는 이를 한국계 한국인의 자기 인식 업데이트 실패와 연관된 현상으로 이해했다. 한국은 더는 약소국이 아니고 전 지구적 착취의 네트워크에서 이제 강자의 위치에 서게 된 입장인데, 한국계 한국인 사회와 예술가들은 아직은 자신을 소제국의 시민으로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준비가 되지 않은 모습이더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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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제1부두의고고학:물결은빛이되다.바람이되다.길이되다.역사가되다>혼합재료가변크기2022_김주영작업의핵심주제는‘떠남’과‘머무름’이다.광목천에먹으로발자국을남기고,땅에엎드려무명의영혼을위한제를올린다.

전 지구적 현대미술계의 정치적 변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전 지구적 현대미술계는 크고 작은 변화를 경험하고 또 추진하고 있다. 북미 미술계의 경우, 유색 인종과 여성 리더십을 강조하는 흐름에서 대대적인 미술관 주요 직책 교체가 이뤄졌고, 상업 화랑에서도 유색 인종/여성/성 소수자 작가 모시기와 유색 인종/성 소수자 기획자 고용이 일종의 대세가 됐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총감독 체칠리아 알레마니가 거의 철저하게 여성과 젠더 비순응 작가 중심의 전시를 만들어 화제가 됐다. 본전시 참여 작가 가운데 여성이 9할이었던 것. 그가 강조한 주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비남성) 육체의 재현과 그의 탈바꿈, 개인과 테크놀로지의 관계, 신체와 대지의 연결성.

‘이주’라는 키워드를 빼면, ‘여성/환경(자연)/기술’이라는 부산비엔날레의 하부 주제들은 사실상 체칠리아 알레마니의 베니스비엔날레와 거의 그대로 중첩되는 모습이었다. 부산비엔날레만의 차별점이라고 하면, 역시 부산의 역사적 맥락을 대안적 관점에서 재사고하고자 애를 썼다는 사실에 있었다.

체칠리아 알레마니가 기획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정치적 변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각광을 받은 주역은 도자 조각가 시몬 리(Simone Leigh, 1967년생)와 환경 운동 미술가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1948년생), 그리고 영국관을 이끈 아프리카-캐러비언계 영국인 미술가 소냐 보이스(Sonia Boyce, 1962년생)였다.

부산비엔날레에서 시몬 리와 세실리아 비쿠냐의 역할을 맡은 사람은 제8회 양현미술상 수상자 오토봉 엥캉가(1974년 나이지리아 카노에서 태어나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활동 중)였다. <바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떨림으로 줄지어 연결된(Lined with shivers sprouting from the rock)>(2022)은, 울 카펫, 수작업한 면 밧줄, 유럽 너도밤나무로 제작된 뭔가를 포용할 수 있는 구조물과 그에 담은 다양한 향신료와 꽃과 식물, 핸드 블로운 기법으로 제작된 유리 조각, 점토 오브제, 비디오, 흙, 다양한 기름으로 구성된 작업인데, 자연을 착취해 온 인간의 방식을 바로잡는 뜻으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상호 관계성를 복원하는 의지를 담은 의사-주술적 퍼포먼스 <나즈막한 봉헌(SOFT OFFERINGS)>이 함께 전개됐다.

오토봉 엥캉가의 작업 해설을 듣노라면, 그가 베니스비엔날레의 타임캡슐 가운데 하나였던 <잎, 조롱박, 조개껍데기, 그물, 가방, 끈, 자루, 병, 솥, 상자, 용기(A leaf a Gourd a Shell... - Una foglia una zucca un guscio)>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장검 같은 남근 형태를 상징으로 강조해 온 남자들의 주장과 달리, 인류 문화에서 첫 상징은 채집한 곡식 등을 모으는 그릇 모양의 도구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던 인류학자 엘리자베스 피셔에 주목한 어슐러 르 귄의 에세이 『허구-운반-가방론(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을 바탕으로 구성한 특별전 섹션에, 오토봉 엥캉가는 거의 직접적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부산비엔날레에서 소냐 보이스의 영국관처럼 소리와 음악의 차원으로 여성의 삶을 재조명한 프로젝트라고 하면, 역시 뱃노래 프로젝트 <영도이로구나>를 꼽을 수 있겠다. 박민희(음악)와 송민정(영상)과 조율(음악)이 제작을 맡고, 민구홍(웹 사이트)이 협력하는 가운데, 구전돼 온 뱃노래를 새롭게 편곡하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물질을 하며 이동하는 해녀의 여정을 컴퓨터 혹은 모바일 화면의 스크롤을 이용해 따라가도록 한다는 목표가 성공적으로 구현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를 관통하는 비평적 사운드트랙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개막 후 제작-공개된 전시의 드론 기록 영상도, 이와 같은 비평적 협업의 과정을 거쳤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드론으로 전시장 전체를 기록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시점으로 전시를 기록해 제시한다는 면에서 퍽 흥미로운데, 다소 안이한 음악을 배경 삼은 채 화면이 고속으로 전개되니, 전시를 면밀히 본 입장에서 속도의 조절이나, 부가 정보의 미제시 등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부산비엔날레의 전시감독이 가장 크게 힘을 실어준 작가는 이미래(1988년 한국 서울 출생,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주)였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이미래는 정금형과 함께 <사이보그의 유혹(Seduction of the Cyborg-La seduzione del cyborg)>이라는 타임캡슐과 연관된 작가로 다뤄졌는데, 역시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A Cyborg Manifesto)』(1985)을 재방문하며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포스트휴머니즘을 재정의하고자 하는 큐레이터의 관점 아래 호명-소환된 셈이었다. (베니스비엔날레의 총감독 체칠리아 알레마니는 카셀에 도착해 전시를 둘러보던 도중에, 프랑크푸르트 MMK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이미래의 개인전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소개하기도 했다.)

하면 부산비엔날레에선 어땠을까. 공식 자료는 “유기체와 기계의 합성, 극단적인 공존의 상태에 대한 탐구, 삶의 유한성에 대한 공포와 아름다움, 여성과 여성들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작업을 확장해 가고 있다”라고 작가를 소개하고, “태풍으로 건물의 지붕과 벽체 일부가 날아간 폐공장에서, 뼈대이자 피부이고 부피이자 면인 건물의 골조를 작업의 일부이자 배경으로 수합하면서 다공질의 덩어리를 쌓을 예정인데, 이 모습은 풍화된 고래의 뱃속과 같은 폐공장에 삼켜진 생물체의 흔적처럼 남을 것이다”라고 작업을 사전-해설했다.

송강중공업의 영도 폐공장 건물을 활용해 비계를 쌓고, 구멍을 낸 공사 가림막에 폐유를 먹이고 걸어놓음으로써 ‘다공질의 의사-신체’를 구현해 놓았는데, 바람을 이용해 꿈틀거리는 생명체를 연출하고, 또 구멍들을 통해 선박의 들뜬 도장이나 조개껍데기를 망치로 제거하는 ‘깡깡이 작업’까지 연상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이미래의 설치 작업 <구멍이 많은 풍경: 영도 바다 피부>(2022)는, 아마 한국에서 제작된 현대미술품 가운데 최대 사이즈에 해당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런 초대형 스펙터클이 이 시대에도 유효한 형식인지는 의문이었다. (같은 의문이 런던 테이트모던 터바인홀에서 초대형 작업을 공개한 세실리아 비큐냐에게도 돌아갈 수 있다. 영국 언론은 작가를 존중하는 뜻에서 <세실리아 비쿠냐: 브레인 포레스트 쿠이푸(Cecilia Vicuña: Brain Forest Quipu)>를 호평했지만, 다소간 그의 작업 이념에 반하는 모습인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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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래<구멍이많은풍경:영도바다피부>비계,폐유,공사가림막1,620×2,160×1,660cm2022_영도전시장전경.선박관련공장으로사용되던곳이다.태풍으로건물의지붕과벽체일부가날아가고,거대한골조만남았다.이미래는잔해를작업의일부이자배경으로삼아고래뱃속같은풍경의설치물을만들었다.

부산, 한반도의 담론적 장소

부산은 한반도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한다. 역사적으로 일본 열도와의 관계에서도 특별했지만, 한국전쟁 시기의 피란 수도 역할 때문에 부산의 시공간적 정체성은 더욱 예외적인 것이 됐다. 하다못해 풍수지리 전문가에게 듣는 부산의 이야기조차 여타 지역의 서사와는 사뭇 결과 구조가 다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듣는 일본 식민기의 이야기나, 한국전쟁기의 이야기에도 특별한 면이 있었다. 공식적인 역사 기록이나 자료에서는 만날 수 없는, 부산 특유의 리얼리티를 단편으로나마 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70~80년대의 부산이라고 하면, 외지인의 입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일본의 방송이 TV와 라디오에 그대로 잡힌다는 점이었다.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K-POP 문화 산업의 설계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어려서 일본의 대중문화에 노출되며 단카이세대의 자유로운 의사-히피적 통기타 가수들과 동화된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단카이세대처럼 자유롭게 노래하던 그는, 1984년 “미국물을 먹고” MTV 시대의 문화 산업 유형에 개안하더니, 갑자기 댄스 가수 현진영을 키워내고, 그를 통제하는 데 실패하자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소속 가수를 인형처럼 통제할 수 있는 비정상적 체제를 추구했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왜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다루지 않을까?
부산에서 이주 여성을 이야기한다고 하면, 부산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국전쟁 시기에 남편을 잃고 피난 온 여성들이 본인과 자식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첩이라도 돼야 했던 상황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당시 복수의 첩을 거느리고 살았던 부산 남자가 적잖았으니, 부산 지역의 남자들이 경험한 전쟁은 여타 지역의 것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고 볼 수 있다. 부산 특유의 돌출하는 남성성도 어느 정도는 한국전쟁 트라우마의 부재와 연관이 있다. (한국전쟁과 극심한 좌우 대립을 직접 경험한 지역에서 한국인 남성은 트라우마와 울분을 내면화하고 남성성을 우회 표출하는 경향을 봬왔다.) 물론 부산 사람들도 그러한 부조리한 시대에 상처를 입었다. 첩을 여럿 거느린 아버지의 모습에 상처를 입은 자식, 고통을 감내했던 본처의 이야기는 지금도 공식적으론 잘 언급되지 않는다. 하면 전쟁이 끝난 뒤, 첩들은 어디로 떠났을까? 생존을 위해 첩이 된 어머니과 자식의 관계는 어떻게 유지됐을까?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 나는 한국전쟁 시기의 부산에서 여성이 어떤 상황에 처했었는지, 그러한 고난의 시기에 여성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 가려진 존재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작업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작업을 출품한 작가는 오우암(1938년 한국 장성 출생, 한국 함양 거주)이 유일했다. 한국전쟁으로 고아가 됐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노년에 바라본 부산의 풍경을 소박한 필치의 회화로 담아내 온 그는, 아무도 대변하지 않는 시점으로, 과거를 담담히 재현-제시해 냈다. 과거를 회상하는 오우암의 그림에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쓸쓸한 소외의 숭고미가 발견된다. 한국인의 그림에선 보기 어려운 정조다. 현대미술 전공자들은 왜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잘 다루지 못할까?

사실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업 가운데 하나는, 가마타 유스케(1984년 일본 가나가와 출생, 일본 후쿠오카 거주)의 신작 <일본식 주택, 제국주의의 석정>(2022)이었다. 일본, 한국, 대만, 브라질, 미국에 남아 있는 일본식 목조 가옥을 조사-기록하고 그를 메타-분석해 역사와 문화의 변동을 고찰해 온 그는, 부산과 일본 규슈 지역과의 지정학적 연관성을 주제로 다뤘다. 작가는 16세기 부산과 경남 일대에 지어진 왜성의 흔적과 지금도 잔존하는 진구 황후의 전설, 그리고 같은 시기 규슈, 대마도, 이키섬 등에 설치됐던 성곽의 유구를 추적해 상호 연결했는데, 일본의 석조 정원과 전통 가옥을 차용한 의사-건축적 구조물을 만들어 사진 전시용 설치작업을 만드는 일이 효과적인 비평이 되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연결 지점들은 극히 낯익으면서도 낯선 것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런 작업을 전개하면서도, 한반도 왜성을 답사하는 일본의 역사 마니아를 언급하는 일은 피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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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정<커스텀>휴대전화여러대,영상설치가변크기2022_초량전시장전경.작품에는가상의인물하루코와춘자가등장한다.1945년봄,각각일본과부산에서태어난하루코와춘자의스마트폰을따라가며벌어지는미스터리스릴러다.

이번에도 일각에서는 비엔날레 무용론을 제기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뚫고 전시 제도의 복원에 나선 여러분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런 비판이야말로 무용하게 느껴졌다. 부산에 온 외국인 작가들도 어떻게든 다시 국제적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대형 비엔날레의 제도적 딜레마는 그대로였다. 전시감독이 전시를 성실히 잘 만들어도, 출품되는 신작들이 기대에 못 미치면 전시는 오작동한다는 딜레마 말이다.

메간 코프(1982년 호주 브리즈번 출생, 브리즈번 거주)의 <킹인야라 구윈얀바(오프 컨트리)>(2022), 히라 나비(1987년 파키스탄 라호르 출생,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거주)의 <땅의 경계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들>(2019), 알마 헤이킬라(1984년 핀란드 팰캐네 출생, 핀란드 헬싱키 거주)의 <이 과정은 가소성, 상호 공생, 멸종을 포함한다>(2022) 등 여러 인상적인 작업이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은 것은 김도희(1979년 한국 부산 출생, 한국 서울 거주)와 김익현(1985년 한국 부산 출생, 한국 수원 거주)이었다.

김도희 작가의 ‘깡깡이 회화’ 연작 가운데 하나인 구작 <몸의 소실점>(2020)과 동명의 영상작업은, 자꾸 되살아나는 기억이 됐다. 볼 때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부산 영도의 조선 수리소 마을, 속칭 ‘깡깡이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원형석 드릴로 합판을 갈아내는 수행적 작업을 통해 일종의 추상화를 제작했는데, 관객은 그림 자체보다는 제작 영상에 더 몰입했다. 역사적 소명을 마감한 부산항 제1부두에서 김도희의 유령적 행위의 기록 영상은 오묘한 실존성을 획득했다. 영상이 설치된 곳은 항만 건물 내부의 사무실 공간이었는데, 공간 속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전시장의 스펙터클에 대비를 이루는 묘한 아늑함을 제공했다.

반면 김익현의 <빛 속으로>(2022)는, 시각적으로 재현 불가능한 연결망을 추적하는 프로젝션 작업으로, 사진가로서 비가시적 구멍들을 탐구해 온 그의 이력에 연결된다. 사진에 담기지 못한 옛 제뢰등대 불빛, 광케이블을 통과하는 보이지 않는 데이터, 1930년대 식민 조선의 부산과 만주 봉천을 연결했던 급행열차 히카리(ひかり)호의 노선을 중첩하며, 그는 사진술 너머의 사진을 망상하고 그를 향해 전진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도전이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며 도큐먼트 자체의 실체적 진실을 존중하는 태도를 고수하는 그의 모습에선, 모종의 ‘몰락의 에티카’, 그리고 그를 통해 구현되는 고요한 숭고를 감지할 수 있었다.

20세기 현대예술을 규정했던 ‘고뇌하는 인간형‘은 이제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실체적 진실을 내용과 형식 양 차원에서 포괄-구현해 내야 한다는 현대예술의 과제는 점차 부정당하는 추세다. 21세기 인간의 퇴행과 불행은, 탐구할 가치가 있는 내면, 혹은 그러한 내면과 외부 세계 사이에 형성됐던 비평적/성찰적 접면/전선을 무효화하는, 인간 존재의 데이터적 허깨비화로부터 야기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예술의 위기는, 예술 차원의 투쟁만으로 극복될 문제가 아니다.

생물학적/문화적 반응 기제의 짜깁기로 구성된, 잘못 학습시킨 딥 러닝 알고리즘 같은 오작동 소비자 인간형을 핑계 삼아, 밈적 짜깁기로 일관하는 기회주의적 미술가들이 넘쳐난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면과 외부 세계 사이의 접면을 붙들고 늘어지는 시대착오적 예술가들도 존재한다. 김익현과 김도희의 작업을 자꾸 생각해 보게 되는 이유는, 그들의 작업이 성공적이어서가 아니라, 작업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그들의 세계관이 밈적 패턴화나 동시대적 동질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과잉 유동하는 세계에서, 때때로 낡은 것은 더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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