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우즈베키스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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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켄트에 지어진 군사, 우주 항공 실험기지 ‘Big Solar Furnace’. 중앙아시아 최대 태양열 에너지 과학관이다.
오늘날의 타슈켄트는 고대 실크로드와 이슬람 문화, 공산주의 영향을 거쳐 켜켜이 쌓인 역사의 층만큼이나 혼종의 정체성을 표방한다. 이 도시는 새로운 문화 교차로 역할을 자처하며, 예술을 중심으로 변화의 움직임을 꾀하고 있다. 지난 10월, 필자는 타슈켄트현대미술센터(Centre for Contemporary Art, 이하 CCA) 아티스트 레지던시프레스 트립에 초청되어, 동시대 예술의 허브로 자리매김하려는 타슈켄트의 야심을 목격할 기회를 가졌다.
CCA 아티스트 레지던시 설립은 제4차 세계창조경제회의(World Conference on Creative Economy, 이하 WCCE)와 함께 발걸음을 내딛었다.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창설된 이후 두바이(2021)와 발리(2022)에서 개최된 WCCE는 정책 입안자들과 문화예술, 디자인, 패션, 정보기술 등의 산업 관계자가 모여 ‘창조경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해결법과 기회를 모색하는 국제 포럼이다.
유엔무역개발기구에 의하면 창조경제는 인간의 창의력, 아이디어, 지식재산권, 기술이 결합한 역동적인 지식 기반 경제로, 광고 디자인 예술 소프트웨어 등 창조산업이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한국에서는 정권 교체와 함께 국정 담론에서 퇴색됐지만, 그 씨앗은 비슷한 시기 아시아 전역에 흩뿌려져 지난 몇 년간 각국의 문화적, 경제적 특성에 맞게 변모하여 성장해 왔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이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인다. 2016년에 취임한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하며 문화예술 분야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그 일환으로 2017년 설립된 예술문화개발재단(Uzbekistan Art and Culture Development Foundation, 이하 ACDF)은 우즈베키스탄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모든 작가에게 동등한 창작 환경을
우즈베키스탄의 예술은 장인의 섬세한 손길을 거친 강렬한 색채와 정교한 무늬가 조화를 이루는 수공예로 특징이다. ‘수자니(suzani)’ 자수 직물의 힘찬 적색과 석류 문양은 건강과 풍요를 향한 온기 어린 염원을 전하며, 청록과 군청이 깊게 배어든 도자기는 생기를 발산한다. 한편, 세상을 손바닥 한 뼘 크기로 압축한 듯한 미니어처회화의 극도로 섬세한 묘사는 경이로울 따름이다. 공예는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는 시각언어다. 장인들은 끊임없이 현대적 요소를 가미해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인의 삶과 문화적 정체성을 작품에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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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나 마할라 단지에 세워진 아티스트 레지던시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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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트 이맘 마할라 단지에 지어진 큐레이터의 입주 공간.
ACDF의 주요 과제는 우즈베키스탄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이다. 대표이사 가야네 우메로바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유산과 혁신을 융합함으로써 예술가들이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미학과 장인 정신을 현대적 시각으로 탐구하도록 독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2024베니스비엔날레 우즈베키스탄관 전시 <Don’t Miss the Cue>는 이러한 접근의 대표적인 사례다. 아지자 카디리 작가는 키즐라르 콜렉티브, 수자니 장인과 협업해 인공지능으로 수자니 전통을 새롭게 변형했다.
베니스비엔날레 같은 국제 무대 외에 우즈베키스탄 내 움직임도 이목을 끈다. ACDF는 CCA 개관 외에도, 9월 열릴 부하라비엔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또 지난해 10월, CCA나 비엔날레에 비해 규모는 다소 작지만 우즈베키스탄 문화와 역사적 맥락의 물결 속에서 같은 의의를 지닌 이니셔티브가 출범했다. 바로 CCA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창작자에게 작업 공간과 네트워크 형성, 새로운 환경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 예술 창작을 지원하는 사회 제도다. 오늘날 국제 예술 생태계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다. 우즈베키스탄 문화예술을 세계 무대와 연결 짓고자 하는 ACDF에게 아티스트 레지던시 설립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올해 2월 시작되는 CCA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매해 세 차례에 걸쳐 운영되며, 세션별로 8주 동안 다섯 명의 입주 작가를 맞이한다. 작가 5인 중 한 명은 우즈베키스탄인으로 지정된다. 동료 입주 작가들에게 타슈켄트와 우즈베키스탄 문화를 소개하는 매개자 역할을 할 예정이다.
레지던시 선정 위원 미술사학자 글렌 아담슨은 인터뷰에서 “공예는 현대미술에 동력을 부여한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수 세기 전 실크로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장인의 기술이 미래지향적으로 재고되는 놀라운 상황을 맞고 있다. CCA와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이러한 에너지가 만나는 역동적인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CCA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타슈켄트의 500여 개 마할라(동네) 중에서도 역사가 깊은 ‘나무나(Namuna)’와 ‘하스트 이맘(Khast Imom)’ 지역에 움텄다. 나무나 마할라 단지는 시각예술, 영화, 건축, 사운드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최대 4명이 거주할 예정이다. 19세기에 지은 모스크와 이슬람학교가 인상적인 장소다. 또 극도로 쇠퇴한 구조물을 아가칸문화재단(Aga Khan Trust for Culture, 이하 AKTC)의 복원 작업으로 되살려내 전시 공간으로 쓴다. 모스크의 맞은편에 위치한 이슬람학교도 AKTC의 손길을 거쳐 입주 작가의 생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기존 건물의 300년이 넘은 벽돌과 최근 부하라에서 새롭게 조달한 벽돌이 한 겹 한 겹 쌓인 벽은 장엄함과 아늑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한편, 건너편의 스튜디오KO 건물에는 판화, 도자기, 직물, 목공작업을 위한 워크숍 공간과 카페를 들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하스트 이맘 단지는 큐레이터와 연구자 한 명을 위한 장소로, 볕이 드는 따뜻한 생활 공간과 도서관으로 구성됐다. 이 도서관은 중앙아시아 최초의 큐레이터 연구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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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켄트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건축물 초르수 바자르. 우즈베키스탄 현지 음식과 기념품, 의류, 가정용품을 판매하는 대규모 전통 시장이다.
입주 기간 8주는 작업물을 만들어내기엔 매우 짧다. 이는 레지던시의 주목적이 타슈켄트 탐구 및 우즈베키스탄 미술씬과의 네트워크 형성임을 암시한다. 우메로바는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아티스트에게 완전한 창작의 자유를 제공하려는 의도로 설계되었다”고 밝혔다. “우리는 질적 성과에 중점을 둘 것이다. 예술가들이 어떻게 서로, 그리고 지역 장인 및 사회와 교류하는지, 또 어떻게 지식을 얻고 기여하는지가 중요하다.”
모든 이니셔티브가 그렇듯, CCA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창작자에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조율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특히 창조경제 담론 속에서 창작자를 산업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행정 주체와 자신을 독립된 예술가로 정의하는 창작 주체 간의 입장 차이는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이를 조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문화 정책은 단순히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온전히 포용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입주 작가에게 문화 매개자 역할을 기대하는 부분은 신중해야 한다. 모든 입주 작가가 창작자로서 동등한 조건에서 배우고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운영진의 숙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