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창작기금고갈!

2024문예진흥기금현황과과제

2023/12/16

사진은 9월 6일 열린 공청회 현장.

사진은9월6일열린공청회현장.

지난 10월 2024 문예진흥기금 공모가 시작됐다. 예술인의 내년도 커리어, 생계, 비전을 지원할 젖줄이 열렸다. 이례적으로 일찍부터 소통의 자리가 마련됐다. 정병국 문예위원장은 8월 전문가 라운드테이블을 열어 주요 여론을 수렴하고, 9월에는 이를 반영해 공청회와 사업 발표회를 잇달아 진행했다. 그러나 공격적인 행보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싸늘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차원에서 지원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과 구조 조정이 의심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의 공모사업 단순화가 문제였다.


문예진흥기금의 재원은 크게 문체부 예산과 기부금, 전입금, 기타 운용 이자로 조성된다. 2024년 문체부 예산은 총 6조 9,796억 원으로 2023년에 비해 2,388억 원 증가했다. 문화예술, 콘텐츠, 관광, 체육 분야 중 문화예술 부문을 제외하고 모두 증액했다. 문화예술 부문 내년 예산은 2조 3,140억 원에서 436억 원 감액된 2조 2,704억 원이다.

9월 25일 열린 사업 발표회에서 '일자리' 부문의 현장 소통 창구.

9월25일열린사업발표회에서'일자리'부문의현장소통창구.

올해 문화예술 부문 예산에서 문예진흥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8%로 4,064억 원이다. 현재까지 문예진흥기금이 확보한 총 예산은 정부 예산과 적립금 1,012억 원을 합친 약 5,076억 원이다. 이 중 창작 지원 제도인 공모사업 예산은 710억 원(다년 지원 포함, 14%). 2023년 총 815억 원(정기 공모 685억+별도 공모 130억 원)에서 약 104억 원 삭감됐다. 작년 결성된 예산을 이월한 다년 지원을 빼면 2024년 순수 편성액은 609억 원에 불과하다. 44개에 달했던 사업을 17개로 감축하고 크게 ‘창작 영역’과 ‘정책 영역’의 두 카테고리로 구분했다. 전년 대비 창작 영역의 예산은 280억 원에서 357억 원으로 증가, 정책 영역은 별도 공모를 포함한 478억 원에서 354억 원으로 감소했다.


예술위는 이번 개편의 키포인트로 플레이어 중심의 창작 지원을 꼽는다. 지원 제도의 문이 너무 비좁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창작 영역의 모집 규모를 최대한 키웠다. 대신 정책 영역의 축소는 불가피했는데, 카테고리는 줄이되 장르 집중도가 필요한 항목은 추후 세부 사업으로 보강할 예정이다. 장르별로는 창작 영역에서 ‘시각’과 ‘공연’, 정책 영역에서 ‘청년’ 부문이 전년 대비 증가했다. 반면 창작 영역의 ‘문학’, 정책 영역의 ‘일자리’, ‘향유’ 부문은 감소했다. 시각예술은 창작 영역의 13%로 공연에 이어 두 번째 규모를 차지했다.

2024년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 예산 편성표_2024년도 순수 예산 총액은 609억 원으로 창작 267억 원(44%), 정책 342억 원(56%)을 편성했다.

2024년문예진흥기금공모사업예산편성표_2024년도순수예산총액은609억원으로창작267억원(44%),정책342억원(56%)을편성했다.

실속 혹은 통폐합, 핵심은 ‘근간 확대’

변화상을 면밀히 들여다보자. 영역 내 사업 구성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세 가지다. 첫째 지원 대상 구분 삭제. 창작 영역은 창작의 과정, 창작 주체, 창작 산실의 3단계로만 구분하고 지원 대상 구분 없이 통합 지원한다. 예를 들어 작년까지 ‘시각예술 창작 산실’ 아래 우수 전시, 공간, 비평 등을 구분해 지원했다면, 이제는 동일 장르 안에선 모두 ‘창작 산실’로 한 번에 지원한다. 개편의 골자는 복잡한 구분을 줄여 사업 구조의 직관성을 높이고 실질적인 지원 폭을 넓히려는 것이다. 반면 예술위의 의도와 다르게 지원자 입장에서는 부문별로 보장 받던 최소한의 파이가 사라진 셈이다. ‘비평’, ‘플랫폼’ 같이 상대적으로 지원 비중이 작은 대상자는 아예 선정되지 못할 가능성도 생겼다. 이를 두고 실제 선정 건수와 개별 지원 규모가 줄어 사실상 통폐합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둘째 ‘창작 주체’ 사업이 신설돼 단건 프로젝트 발표가 아닌 창작자의 활동 전반을 장기 지원한다. 창작, 기획, 공간, 매체, 플랫폼 등을 대상으로 최대 3년까지 기간을 늘렸다. 취지는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보장하는 데 있지만 그만큼 자격 요건을 까다롭게 잡았다. 기금 선정 및 수행 이력 1회 이상에 활동 이력 5년 이상을 요구했는데 개인과 단체, 공간, 플랫폼 등에 동등한 기준을 적용했다. 경력이 짧은 신진 예술인에게는 문턱이 높아진 셈이다. 셋째 문체부 예산안 편성 단계에서 ‘예술과 기술’, ‘공공예술’ 두 영역이 빠졌다. 특히 ‘예술과 기술’ 영역은 8월 정부의 갑작스런 제외로 큰 논란이 됐다. 예술위에서도 ‘유감스러운 결정’이라 전하며 해당 예산을 무엇으로 대체했는지에 이목이 쏠렸다. 예술위는 임시방편으로 ‘예술과 기술’ 편성액 25억 원이 빠진 만큼 다원예술에 18억 원을 늘렸다. 후속 사업으로 빠진 두 장르 지원을 보강하는 것이 내년도 과제다.


전체 예산이 감소한 상황에서 예술위의 선택과 집중은 필수였다. 그 결과에는 ‘실속 향상이냐 통폐합이냐’의 갑론을박이 따랐다. 이번 개편안을 종합하면 진입 장벽은 높이고 불필요한 구분은 없앤 게 핵심이다. 다만 포괄성과 전문성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다 다양성을 놓칠 우려도 제기된다. 이 점에 대해 예술위는 “이번 개편을 세세한 득실보다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진행했다…. 작게는 개별 선정 건수가 줄어들 수 있겠지만 우리는 보다 큰 흐름에 주목했다. 개편의 핵심은 지역문화재단과의 차별화다. 현재 전국의 지역문화재단은 기초와 광역을 합쳐 134개에 달한다. 로컬이 아닌 총체적인 예술지원 사업을 담당하는 만큼 지역문화재단과 차별화가 필요했고 중장기 지원 확대가 그 해답이었다.” 이번 개편에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줄어든 신진 예술인과 소액 지원 건을 염두에 둔 답변이다. 청년 예술인이나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타깃으로 삼는 소액, 단건 지원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지역문화재단의 수시 사업으로도 충당할 수 있다. 나아가 예술위의 신진 예술인 지원 정책으로는 정책 영역의 청년 예술가 부문에 ‘예비예술인지원사업’을 신설했다. 단순히 청년 예술가 개인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교육 기관을 현장과 연계하는 데 방점을 두었다. 정리하면 구조적인 지원에 무게를 실어 예술생태계의 내실을 다지는 것.

한편 사안의 핵심은 단편적인 득실 비교가 아닌 문화 산업의 동향, 문체부 예산, 문예진흥기금의 삼각관계에 있다. 현재 문체부 예산을 제외하고 문예진흥기금이 보유한 적립액은 1,012억 원 수준으로 기금 고갈이라는 위기를 코앞에 두고 있다. 문예진흥기금 재원 조달을 사실상 정부 예산에 의존하고 있고 기금 의존도가 특히 높은 순수예술 창작 분야엔 더 큰 악재다. 정 위원장은 취임 이래 자생력 향상을 거듭 강조해 왔다. “콘텐츠 산업 성장의 뿌리는 순수예술인데 당장 수익화가 안 된다고 순수예술 창작 지원을 줄이는 건 그 원천을 간과하는 일이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기업 후원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금을 정부 예산에만 기대면 정권에 따라 제도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 위원장의 말처럼 시류에 힘입어 사기업 후원을 독려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일지 모른다. 그러나 당장 수익성이 없는 분야에 사기업의 자금 출연을 요청하는 대응은 국가의 책임 전가로 보인다. 게다가 국가 제도가 아닌 사기업에 의존하는 예산이 더 안정성이 높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기업이야말로 경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10월 문체부 장관으로 부임한 유인촌 역시 문화적 기반인 창작 지원을 강조하며 “현재 문체부 총 예산에서 창작 지원금의 비중은 1% 선이지만 추후 2% 이상으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나 긴축 재정을 기조로 각종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서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2023년과 2024년 공모사업 예산 비교_기타 영역에는 별도 공모로 시행한 국제예술공동기금, 예비예술인지원, 공연예술중장기지원이 포함됐다

2023년과2024년공모사업예산비교_기타영역에는별도공모로시행한국제예술공동기금,예비예술인지원,공연예술중장기지원이포함됐다

정부 예산이 삭감된 지금,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책임 회피성 행정’과 지원자의 ‘손익 계산에 매몰된 근시안적 태도’다. 예술위는 문체부의 결정으로 인한 손실을 보강하는 실속 높은 기획을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 지원자는 양질의 창작으로 보답해야 한다. 올해는 국가가 문화 진흥의 책임을 명문화한 문화기본법 제정 10주년이었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미술시장은 불황의 전조 증상을 보이고 있다. 창작 지원 예산 삭감은 창작자뿐 아니라 시민의 예술 향유권도 함께 빼앗는 결과로 이어진다. 미래의 공익을 고려한 신중한 예산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 주예린 기자

9월 25일 사업 발표회 무대 인사에 오른 정병국 문예위원장.

9월25일사업발표회무대인사에오른정병국문예위원장.

예술경영지원센터(2024.06.27~)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2024.07.04~)
스팟커뮤니케이션(2024.01.24~)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