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봄나들이

서울에서 도쿄, 뉴욕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까지. 올봄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국내외 주요 미술공간의 개관 소식을 모았다. 먼저 서울 서남권 최초의 공립 미술관이자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인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시흥대로79길53)이다. 개관을 기념하여 세 가지의 전시를 선보인다. <호흡>(3.12~4. 12)전은 퍼포먼스를 전면에 내세운다. 작가 25명(팀)이 참여해 ‘호흡’이라는 생체 운동을 매개로 인간과 환경의 상호 작용을 재해석한다. 향후 퍼포먼스 기반 작업을 지원하는 연례 프로그램으로 이어질 예정. 이와 함께 <우리의 시간은 여기서부터>(3. 12~7. 12)전은 서남권의 지역사와 미술관 건립 과정을 되짚는다. 5인의 작가가 그간의 기록 사진과 지역 이야기를 엮어 미술언어로 재구성한다. <서서울의 투명한 |청소년| 기계>(5. 14~7. 26)전은 포스트휴먼 시대의 ‘청소년’에 주목한다. 안은미, 양아치, 최수련 등 15명(팀) 참여.

프랑소와 뱅상 <Septembre> 종이에 에칭과 에쿼틴트 23×30cm 2020 스페이스더파란 제공

다음은 서교동에 둥지를 튼 두 곳이다. 지난달에 개관한 스페이스더파란(월드컵로 54)은 33년간 자동차 공업사로 쓰이던 산업 공간을 갤러리로 탈바꿈했다. 매끈한 화이트 큐브라기보다 땀과 기름때가 켜켜이 밴 작업장에 가깝다. 높은 층고와 십자형 복도 구조를 그대로 두고 흰 벽만 세웠다. 개관전 <You Are My Sunshine>(1. 29~2. 11)은 ‘빛’을 화두로 삼았다. 빛이 구석구석 어디든 퍼져나가듯, 예술도 일상 모든 곳에 있다는 따듯한 믿음을 전한다. 시각예술의 근본인 ‘본다’는 행위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김동기, 강지수, 홍채원, 프랑소와 뱅상 등 작가 7인의 작품 17점을 공개했다.

김륜아 <인간 연극> 린넨에 유채 97×130.3cm 2025 크리스프웨지 제공

사진작가 문형조가 세운 크리스프웨지(양화로8길 32-17)는 이름부터 전략적이다. ‘명료함(crisp)’과 ‘쐐기(wedge)’라는 단어의 결합에서 미술씬에 날카로운 질문을 제시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그에게 갤러리는 “매끈하게 봉합된 결과물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번복과 흔적을 추적하는 첨단의 실험대”다. 첫 전시로 내세운 김륜아 개인전 <날개와 다리>는 작가가 직접 구축한 신화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을 파헤친다.

한국과 세계의 새 교두보

해외에도 새로운 거점이 속속 생겨났다. 한화문화재단은 뉴욕 맨해튼 중심에 비영리 전시 공간 스페이스제로원을 설립했다. 한국 동시대작가를 국제 무대에 소개하는 교두보를 표방한다. 작년에 선보인 개관전 <Contours of Zero>(2025. 11. 7~12.20)는 기술과 문화의 접점을 다룬 한국 작가 8인의 작품 20여 점을 선보였다. 현재는 마이클 주 개인전 <Sweat Models 1991–2026>(2. 20~4. 18)이 진행 중이다. 199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 신작까지 과학과 사회, 신체의 교차점을 탐구해 온 작품 세계를 한눈에 조망한다.

중앙아시아에도 동시대 미술관이 본격 출범했다.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현대미술센터가 그 주인공. 1912년에 지어진 디젤 발전소를 개조했다. 프랑스 건축 스튜디오 KO와의 협업으로 붉은 벽돌 구조와 철제 트러스 등 산업 건축의 골격은 보존하되, 내부에는 우즈베키스탄 전통 문양을 도입해 산업 유산과 장식 언어가 조화를 이루는 이색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Hikmah>(3. 21~6. 30)는 무한나드 쇼노, 나리 워드, 타리크 키스완슨 등의 신작 커미션과 장소특정적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기획전이다. 특히 한국 작가 김수자가 참여해 눈길을 끈다.

도쿄에는 몬타카나와:더뮤지엄오브내러티브스가 3월 28일에 문을 연다. 지하 3층, 지상 6층 규모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뮤지엄 그 이상’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한 해에 두 번, 시설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를 선정해 전시와 공연, 강연을 선보인다. 개관 기념 테마는 ‘문화로서의 삶’. 개관 특별전 <Spiral, Spiral>(3. 28~9. 23)은 은하의 소용돌이, 회전 초밥, 지문 등 자연과 사회에 편재한 나선형 구조를 예술, 과학, 기술, 전통문화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이와 함께 선보이는 <Open MoN!>(3.28~6. 6)전에서는 일본의 건축 거장 쿠마 켄고의 외관 설계 과정과 청사진, 스케치를 공개하며 공간의 탄생기를 돌아본다.

호이치 니시야마 <Shield Tunneling Machine> 2016 몬타카나와 제공

한편, 새 단장을 마치고 재도약을 알리는 공간도 줄을 잇는다. 스페이스윌링앤딜링(회나무로6길 5)이 처음 문을 열었던 곳인 경리단길로 돌아왔다. 김인선 대표는 “간판과 외관 장식을 최소화하여 ‘ 발견하는 공간’의 재미를 유지 중”이라고 밝혔다. 5회째를 맞는 연례전 <Keep Going>(2. 28~3. 14)이 새출발을 선언한다. 권오상, 윤향로, 홍승혜 등 50여 명의 작품 134점을 내놓았다.

연희동을 떠나 홍제동 건물 2층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미학관(홍제내2나길 2)의 행보도 흥미롭다. 주변에 전시 공간이 드문 주택가에 자리 잡은 것을 두고 이슬비 디렉터는 “조용하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 마음에 든다”라고 밝혔다. 이전 공간이 ‘집중’의 미덕을 지녔다면, 새 공간은 약 50평 규모의 전시실로 ‘확장’에 방점을 찍었다. 개인전 중심의 기조는 유지하되, 인문학 강연과 미학 독서 세미나 등 학술 공간으로도 활용할 계획이고. 이전을 기념해 열린 <불길한 징조 속에서 태어나>(3. 6~4. 5)전은 개인의 내밀한 불안과 절망을 주제로 작가 5인의 작품 30여 점을 공개한다.

나현 <빅풋을 찾아서> 인플레터블 가변크기 2021 초이앤초이갤러리 제공

초이앤초이갤러리(연희로11가길 48-10) 역시 새로운 서막을 올렸다.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대안 공간이 밀집한 연희동에 활기를 더한다. L자형으로 된 구조는 관람 동선이 꺾일 때마다 자연스레 장면을 전환한다. 전시, 강연, 퍼포먼스 등 다양한 행사를 수용하는 복합 플랫폼을 예고했다. 재개관을 알리는 첫 전시는 나현 개인전 <아무것도 아닐 거야>(3. 21~4. 19). 작가는 <포모사 프로젝트>, <바벨탑 프로젝트>, <나현 보고서–민족에 관하여> 등 장기 리서치작업으로 역사와 신화, 이주와 생태 문제를 탐구해 왔다. 대형 설치 <빅풋을 찾아서>와 함께 아카이브, 영상작업을 병치해 인간과 자연, 기록과 망각의 긴장을 드러낸다.

해외에서는 뉴욕 뉴뮤지엄이 오픈을 앞두고 있다. 확장 리모델링으로 전시 면적이 두 배 늘었고, 여기에 포럼을 위한 컨퍼런스 홀과 레지던시 스튜디오가 새로 들어섰다. 재개관전 <New Humans>(3. 21~미정)는 확장된 전관을 사용하는 대규모 전시이다. 20세기 초 거장부터 동시대작가까지 200여 명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산업혁명부터 최근 AI 이미지 생성에 이르는 급격한 기술 발전이 ‘인간’의 위상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 추적하며 100여 년의 단층을 가로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