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ICE를 녹여라!
2026년 1월 30일, 미국 전역의 수백 개 갤러리와 미술기관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 이민세관단속국의 초강경 단속 정책과 민간인 총격 사망 사건을 규탄하는 전국적 블랙아웃에 돌입했다. 필자는 추상적인 구호에 머물렀던 미술계의 연대가 어떻게 ‘운영 중단’이라는 물리적인 운동의 영역으로 옮겨갔는지 분석한다. 성명서와 온라인 이미지 게시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마찰과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는 적극적인 연대로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간 미술계가 정치적 위기에 반응해 온 방식은 대체로 온라인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2020년 6월 2일, 인종 차별에 대항하는 ‘블랙라이브스매터’ 운동이 있다. 연대의 일환으로 많은 갤러리와 기관이 #BlackOutTuesday 해시태그와 함께 검은 사각형 이미지를 SNS에 게시했다. 2023년 10월 이후부턴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두고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하거나 휴전을 촉구하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1월 30일에는 조금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뉴욕을 포함한 미국 전역의 갤러리와 기관이 이민세관단속국(U.S.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 이하 ICE)의 단속 강화와 예산 확대에 반대하는 전국적 셧다운에 동참하여 문을 닫았다. 미술계에서 ‘파업’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공개적으로 사용되는 장면을 보는 일은 흔하지 않다. 특히 전시 개막이 집중되는 금요일에 공간을 닫는 결정은 단순한 상징적 제스처라기보다 실제 운영의 흐름을 중단하는 행위다. 하루의 휴관이 큰 변화를 만들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날만큼은 미술계가 익숙하게 반복해 온 운영의 리듬을 잠시 멈추고 지금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비영리 전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O 비자’를 통해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이민자다. O 비자는 흔히 예술가 비자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특정 직업군에 국한하지 않고 각자의 분야에서 지속적인 활동과 성과로 ‘탁월한 능력’을 입증해야 유지할 수 있는 체류 자격이다. 이 비자는 보통 3년 단위로 갱신되며, 내가 쌓아온 전시 이력과 비평, 협업 기록 등 활동이 이민국의 심사 대상이 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이민 정책의 변화는 추상적인 정치 이슈가 아니라, 개인의 체류 조건과 생존, 향후 활동의 방향까지 포함하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정치 현안에 대한 공개적인 입장 표명은 이민자에게 자기 검열의 문제와 연결된다. 발언이 기록으로 남고, 그 기록이 제도적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표현의 수위와 형식을 조정하게 한다. 그렇기에 이번 파업은 연대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에 따르는 현실적인 긴장을 함께 노출한 사건이었다.
갤러리 셧다운, 날갯짓을 돌풍으로
이번 움직임이 이례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그간 미술계가 정치 사안에 대해 비교적 간접적이고 신중하게 반응해 왔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대부분 전시는 예정대로 열리고, 운영 구조나 계약은 그대로 유지된 채 연대의 의사는 포스터나 성명문, SNS 이미지 등의 형태로만 표현되었다. 정치적 메시지는 드러내지만, 실제 일정이나 거래 관계가 중단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시 공간이 실제로 문을 닫았고 거래가 멈췄으며, 하루치 운영 자체가 중단되었다—물론,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들은 있었을 수도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을지라도 운영이 실제로 멈췄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로 작용한다.
한편, 이번 연대는 미술계 내부의 모순적인 장면을 함께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 온라인 미술저널 『하이퍼알러직(Hyperallergic)』의 보도에 따르면, 파업 연대가 본격화되기 약 2주 전 뉴욕 트라이베카 지역의 일부 갤러리가 캐널스트리트 일대의 노점상 문제에 대해 시 차원의 개입을 논의한 바 있다. 캐널스트리트는 트라이베카와 차이나타운이 맞닿아 있는 지역으로, 오랫동안 이민자 노점상이 생계를 이어온 거리다. 해당 논의에서는 노점상 증가로 인한 보행 불편과 안전 문제가 언급됐고, 뉴욕시에 반복적인 민원을 제기하거나 공동 서한을 작성하자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도시 관리와 질서 유지 차원의 문제 제기로 보이나, 실상 노점상 단속 강화나 경찰 개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한 선택이기도 하다. 논란이 커지자 일부 갤러리는 해당 사건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이는 ICE 파업 참여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러낸다. 이민자 보호와 연대를 말하는 동시에 이민자의 생계가 이루어지는 노점을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선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대의 언어와 일상의 결정이 상충하는 지점이 드러난 셈이다. 미술계의 영향력이 꼭 선언적인 문장이나 성명서에만 드러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영향력은 공간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실제로 어떤 선택을 하는지 같은 현실적인 지점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문을 열지 닫을지, 예정된 일정을 그대로 진행할지 아니면 멈출지,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쓰기로 결정할지 같은 것들 말이다. 최근 며칠 동안 SNS에는 이번 파업에 연대하는 입장을 밝히는 갤러리들의 게시물이 이어졌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모든 것이 이전과 똑같이 돌아간다면 그 말들은 결국 단순한 기록이나 이미지에 그칠 것이다.
연대라는 것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어디에서든 불편함이나 마찰을 각오해야만 한다. 하루 동안 문을 닫는 일, 전시 일정을 조금 미루는 일, 혹은 원래 쓰기로 했던 예산의 일부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일처럼 아주 작은 변화라도 기존의 흐름을 잠깐 멈추게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이런 선택이 겉으로는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들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이번 파업이 당장 큰 변화를 만들어낼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참여한 방식도 서로 달랐고, 하루의 멈춤이 제도적인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분명한 건, 그동안 미술계가 당연시했던 ‘아무 일도 멈추지 않는 상태’에 잠시나마 균열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 연대가 이미지로만 소비되지 않으려면 파업 이후의 선택이 더욱 중요하다. 전시는 다시 열리고 운영은 재개될 것이다. 그러나 후속 일정과 계약, 협업과 운영의 기준이 이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으리라 희망한다. 아주 미세하게라도 달라진다면, 이번 멈춤은 찰나의 날갯짓을 넘어 앞으로의 판단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돌풍’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