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타자’의 목소리를 듣는가

제15회 상하이비엔날레 현장 리포트
2026 / 04 / 03

제15회 상하이비엔날레(2025. 11. 8~3. 31)가 막을 내렸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꽃은 벌의 소리를 듣는가?’. 인간과 비인간의 소통과 감각적 교류를 탐구했다. 비엔날레 사상 최초 여성 감독 키티 스캇의 기획 아래 24개국 총 67인(팀)이 작품 300여 점으로 참여했다. 필자는 예술이 타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식과 그 사회적 책임을 고찰했다. 이번 전시 이면에 가려진 국가 주도 미술행사의 한계, 로컬 담론의 부재를 짚었다.

제니퍼 알로라, 기예르모 칼자디야 <Phantom Forest>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5 ©Allora & Calzadilla. Courtesy of the artist, Lisson Gallery, Galerie Chantal Crousel, and Kurimanzutto. Image courtesy of Power Station of Art.

예술축제를 넘어 동시대를 돌아보고 사유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한 비엔날레는, 1990년대 이후 세계 미술지형의 이동에 따라 아시아에서도 제도, 담론적 기초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미술담론의 지리적인 확장은 그간 간과되었던 소위 변방의 논제를 수면으로 끌어 올리며 대화의 지평을 넓혔다. 식민지 경험,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도시화, 문명과 자연의 충돌이라는 전 지구적 당면 과제에 지역 고유의 역사 조건이 더해지면서 비엔날레는 오쿠이 엔위저의 언급처럼 ‘동시대성의 조건이 가시화되는 비판적인 장소’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한 중국과 타이완의 긴장 관계 속에 지난 11월, 타이베이와 상하이에서 아시아 레거시 비엔날레가 연이어 개막했다. 제15회 상하이비엔날레는 총감독 키티 스캇을 중심으로 데이지 데로시에, 쉐 탄이 기획했다. 중국 아티스트 16명을 포함해서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67명의 작가가 30여 점의 커미션 작품을 비롯한 2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145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전시가 열리는 파워스테이션오브아트는 황푸강변 산업 지대에 위치한다. 2012년 개관한 이래 상하이비엔날레를 개최해 오고 있는 중국 최초의 국립 현대미술관이다. 날것 느낌의 회색 인더스트리얼 공간에서 이번 비엔날레는 “꽃이 벌의 소리를 듣는가?”라는 시적인 질문을 주제로 내세웠다. 꽃과 벌의 상호 관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이번 비엔날레의 출발점이 되어 우리에게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비인간적 감각과 지성, 인간이 아닌 생명체와의 관계, 다양한 형태의 연결에 대해 고찰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러한 기획 의도는 전시장 디자인에도 반영되었다. 라차폰 추추이가 이끄는 방콕의 건축 스튜디오 올(존)이 정형화된 관람 동선 대신 미술관 자체를 열린 풍경으로 설정했다. 관람객은 작품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다가 발길이 멈추는 곳에 자연스럽게 머무를 수 있다.

양혜규 <서사적 분산을 수용하며 비카타르시스 산재의 용적에 관하여> 알루미늄 베네치안 블라인드, 분체 도장 알루미늄 행잉 구조물, 스틸 와이어 로프 가변 2012 Courtesy of the artist. Image courtesy of Power Station of Art.

경계를 넘는 몸짓


전시의 여정은 중앙 홀을 가득 채운 노란 꽃의 스펙터클과 대면하면서 시작된다. 전시장의 높은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세 그루의 나무에서 수만 개의 꽃송이가 떨어져 내리는 듯한 이 작품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제니퍼 알로라와 기예르모 칼자디야의 <Phantom Forest>다. 뿌리도 가지도 없이 유령처럼 공중에 떠있는 수천, 수만 송이의 조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흔적으로 남은 과거의 숲이다. 카리브해의 노예를 나르던 바람에 실려 이곳 상하이까지 옮겨진 노란 꽃은 단절 이후의 지속성과 가시적인 것이 사라진 후의 현존성을 묻는다.

1층 전시장에는 한국계 캐나다 작가 로터스 강의 <Azaleas II>가 바닥과 벽면에 그림자와 이미지를 투사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시의 운율에 응답하는 악보를 만들어 움직이는 조각의 패턴으로 사용했다. 로터스 강은 영어로 번역하지 않은 한국어 원문을 그대로 사용하여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대화하는 동시에 서로를 벗어날 방법’을 찾고자 했다. 작가는 어떤 기억은 왜 이미지로 남지 못하는지, 반복되지만 끝내 드러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했다.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에는 회색의 인조 블록 위에 커다란 조형물이 놓여있다. 이제 막 발굴된 유물 같기도, 도자작품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마사오미 야스나가의 <Melting Vessel>. 그는 가마에서 일어나는 소성 과정을 조형 행위의 핵심으로 삼는다. 형태적 안정성을 거부하고, 유약이 중력과 화학 반응에 따라 스스로 흐르고 응고되도록 내맡긴다. 2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양혜규의 거대한 블라인드 설치작업과 벽화를 지나 프란시스 알리스의 콜라주와 <Children’s Games> 연작이 상영되고 있다. 그는 이번 상하이비엔날레를 위해 음조가 겹치는 놀이를 선별했고, 관람객은 대형 화면 사이를 거닐며 아이들의 놀이가 서로를 보완하고 연결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차이를 초월하는 순간의 발현이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다양한 지역의 원주민 작품이 소개되었다. 그중 캐나다 이누이트 출신 슈비나이 아슈나는 북극의 풍경을 면밀히 관찰해 개성 있는 필치로 그려냈다.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텐트를 지나면 전시장 양쪽 복도에 불타고 있는 선인장 이미지와 드로잉이 일렬로 설치되어 있다. 멕시코 출신 미겔 페르난데스 데 카스트로는 원주민 문화에서 신성하게 여겨지는 사와로 선인장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무장 단체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불태워지는 것을 목격했고, 그 흔적을 반복 재현하는 방식으로 비판했다. 이처럼 상하이비엔날레는 ‘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을 관람객 각자의 몫으로 남겼다.

타냐 칸디아니 <Prologue ll. Resonant Blossoms> 메탈, 대나무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5 Courtesy of the artist and Vermelho Gallery. Image courtesy of Power Station of Art.

하지만 중국의 국가 핵심 서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표현의 자유, 대표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한족 출신 단 얼이 위구르족의 전통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작품이 구설에 올랐다. 작가는 이전에도 신장의 여러 문화를 개별 맥락에서 떼어내어 뒤섞는 방식으로 문화적 맥락과 의미를 왜곡했으며, 47개의 특수한 문화를 ‘위구르’라는 하나의 요소로 단일화한 점, 현지 공동체를 배제한 채 합의되지 않은 대표성을
자칭했다는 점이 지적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이번 비엔날레에는 동일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또한 양혜규와 프란시스 알리스 등을 포함해서 기존에 발표되었던 작품이 200점 이상이고, 이 과정에서 로컬 예술계의 담론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시의성 있는 주제 선정과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재조명은 단연코 고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