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비명
노르웨이의 국민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 그는 평생 인간 내면의 처절한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대표작 <절규>의 ‘비명 지르는 얼굴’은 불안한 현대인의 초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 뭉크의 삶과 예술을 얼마나 깊이 아는가? 뭉크는 왜 이런 악몽 같은 그림을 그렸을까? 그 의문을 풀어주는 다큐멘터리 영화 <뭉크. 사랑, 영혼 그리고 뱀파이어 여인>이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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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뭉크. 사랑, 영혼 그리고 뱀파이어 여인> 2024 스틸
“나는 죽음과 함께 산다”
뭉크는 1863년 노르웨이 로텐에서 군의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엘리트 가문 출신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유복하지 못했다. 5살에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며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다. 누나 소피와 동생 라우라, 안드레아스는 차례로 병에 걸려 죽거나 정신병에 걸렸다. 아버지 크리스티안은 종교에 심취해 뭉크를 정신적으로 억압했다. 죽음과 폭력에 시달리던 뭉크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땅속의 요정, 중세 기사, 검은 천사 등을 그리곤 했다. 훗날 그는 유년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연소된 램프의 불을 켜자, 문득 반대편 벽의 절반부터 천장까지 뻗어있는 내 거대한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벽난로 위 거대한 거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유령 같은 얼굴. 나는 죽음과 함께 산다. 나의 어머니, 누나,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대부분이 죽음과 함께다.” 영화는 뭉크 예술세계의 뿌리가 되는 우울한 가정 환경을 초기 드로잉과 일기로 생생히 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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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뭉크. 사랑, 영혼 그리고 뱀파이어 여인> 2024 스틸
이후 뭉크는 전통과 도덕을 거부하는 크리스티아나(현재 오슬로) 보헤미안 집단과 교류해 나간다. 무정부주의 작가이자 보헤미안 그룹의 리더였던 한스 예거, 노르웨이의 현실을 그대로 묘사한 사실주의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그, 현대 연극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극작가 헨릭 입센 등이 그의 정신적 지주였다. 젊은 뭉크는 자신의 삶을 ‘해부학적 시험장’으로 여겼다. “레오나르도는 시체를 해부했지만, 나는 내 영혼을 해부하고 인간 영혼의 보편을 찾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작품의 길라잡이가 되어준 주변 인물을 추적하고, 당시 시대정신에 비추어 뭉크의 예술을 한 꺼풀씩 벗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해설사의 출연이다. 에세이스트 수 프리드, 뭉크미술관장 스테인 올라브 헨릭센과 수석큐레이터 존-우베 스타이하우그, 미술품 복원 전문가 린 솔하임, 미술사가 엘리오 그라치올리 등이 등장해 뭉크의 작품을 분석한다. 예술가를 신화화하는 전설 같은 일화 중심이 아니라 작품에 담긴 사회, 정치, 문화적 의미를 짚어낸다.
사랑 죽음 불안 고통 쾌락 등 인간의 원초적 고뇌와 본능을 강렬한 색채와 왜곡된 형태로 담아 독일 표현주의의 불씨가 된 뭉크. 마침 한가람미술관에서 뭉크의 전시 <비욘드 더 스크림>(5. 22~9. 19)도 열리고 있다. 회화, 판화, 드로잉 140여 점이 한데 모인 아시아 최대 규모의 뭉크 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