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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추상,100년의부활

여성화가힐마아프클린트다큐멘터리개봉

2024/02/24

“사후 20년간 내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으로 지난 100여 년의 미술사에서 사라진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 그는 세상이 자신의 그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려 작품 1,500여 점과 작업 노트 26,000장을 자체 봉인했다. 조카 에리크 아프 클린트는 1966년 비로소 작품 창고의 빗장을 풀고 힐마의 타임캡슐을 세간에 공개했다. 그러자 현대미술의 ‘정전(正傳)’이 뿌리째 흔들렸다. 미술사에 이름 한 줄 없던 스웨덴 출신의 여성화가가 1906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추상화의 원리를 파악하고 색채와 형식의 자율성을 실험했던 것. 이는 최초의 추상화가로 알려진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보다 무려 5년이나 앞선다. 지금, 그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는 아트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이 절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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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힐마아프클린트-미래를위한그림>(2019)스틸

정말,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영화의 관전 포인트 셋을 짚는다. 하나, 영화는 힐마의 생애를 섬세하게 복원해 나간다. 그간 대중에게 힐마 작품은 영적 존재와 소통하며 제작한 ‘영매의 그림’이라는 측면에서 강조돼 왔다. 그러나 영화는 힐마를 자극적으로 읽을 만한 요소를 최소화한다. 대신 생전의 그를 증언해 줄 주변 인물과 자손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 힐마의 입체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예술가를 ‘비정상’의 틀에 끼워 맞추지 않으려는 할리나 디르슈카 감독의 고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둘, 북유럽의 평화로운 풍경과 힐마의 추상작품을 유려하게 상호 교차해 그의 예술관에 깊이 다가간다. 힐마는 캔버스보다 훨씬 큰 종이를 바닥에 깔고 호수와 하늘, 달팽이와 비둘기 등에서 발견되는 소용돌이와 곡선을 수없이 그렸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나선형은 힐마 작업의 ‘모나드’가 된다. 영화는 힐마의 눈에 비쳤을 북구의 느릿한 풍광을 비추며 그의 예술을 관통하는 조형 언어의 단자를 스웨덴의 자연에서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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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힐마아프클린트-미래를위한그림>(2019)스틸

셋, 힐마의 작업에서 출발해 미술사와 미술시장의 남성 중심주의를 정조준한다. 영화에는 미술평론가 율리아 포스, 미술가 조시아 매켈러니, 컬렉터 발레리아 나폴레옹 등이 등장해 힐마가 추상화를 먼저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이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 이상 현상을 정면 비판한다. 특히 힐마의 작품을 앞장서 발굴, 전시한 포스는 “뉴욕현대미술관 <추상의 발명 1910-1925> 전시에서 힐마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남성 미술사에서는 천재가 중요한데 여자는 천재가 없다는 이유로 배제돼 왔다. 정물화, 초상화, 풍경화는 꽤 잘 그리지만 ‘천재’까지는 아니라는 식으로.”라는 뼈 있는 말로 힐마의 평가 절하에 사회 시스템의 불균형이 작동했음을 지적한다. 영화는 그의 작품에서 성차별적 미술계로 논의를 확장하며 왜 우리가 힐마를 다시 봐야 하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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