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영화, 순수의 세계
영화 <오키쿠와 세계>(2023) 포스터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신작 <오키쿠와 세계>(2024)는 에도시대 가난한 청년의 사랑과 순수한 삶의 태도를 그린 흑백 영화다. 영화는 9장으로 구성되어 각 장이 넘어가는 경계부에 검은 화면이 등장하는데, 그럴 때면 비가시적인 음향이 이미지에 앞서 닫힌 은막 너머에서 들려온다. 빗줄기와 개울 등 자연의 사물이 내는 소리의 유동성은 이내 수직과 수평을 가로지르는 축으로 시각화되어 화면 안에서 밖으로, 하염없이 흘러가고 또 밀려 들어온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고정된 스크린 표면에 일렁이는 허구적인 질감처럼 구현된다. 물론 여기엔 주인공 야스케와 츄지의 생계를 책임지는 인분의 질퍽거림도 포함된다. 아버지와 목소리를 동시에 잃게 된 오키쿠. 그의 주위를 맴도는 죽음의 경직성과 황량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수직,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형상은 만물의 순환적 움직임을 숙고하게끔 변모된다. 계절의 반복으로 인식되는 시간의 순환이 있고, 그 흐름의 물성이 실의와 비관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인물의 보이지 않는 의지를 떠받친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곧은 눈빛
<오키쿠와 세계>에는 흑백의 명암만이 존재한다. 영화는 봄과 늦봄처럼 육안상 잘 구분되지 않는 계절을 분절한다. 드물게 나타나는 컬러 이미지는 합의된 체계에 기반한 구분이 불필요한 것임을 알린다. 흑백뿐인 세계에선 색채보다 지하의 똥통과 지상의 우물의 둥근 형태적 유사성이 더 중요하다. 분간할 수 없단 것은 기준점이 무너졌단 뜻이고, 이는 곧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신호다. 오키쿠의 손이 백지를 가로질러 새긴 검은 낱말이 가리키듯, 흑백의 대비는 사념과 기교가 제거된 무구한 형상 위에서 발견된다. 글을 가르치는 오키쿠의 서체에선 언어의 본질을 범람하지 않는 정직함이 묻어난다. 거기엔 연모의 탐욕마저 한없이 긍엄해지는 흑과 백의 어우러짐, 즉 계급적 차이를 의식하지 않고 전체를 보는 인물의 정신이 존재한다. 차가운 눈길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은 오키쿠와 츄지의 왜소한 형상이 바로 그 정점이다.
영화 <오키쿠와 세계>(2023) 스틸컷
말을 잃고 글을 배우지 못한 두 존재에겐 상대의 마음에 귀 기울일 폭설의 절대적인 적막감만이 요구된다. 눈발로 인해 거칠어진 화면 해상도를 뚫는 고요한 숨소리엔 속세의 소요를 알량하게 만드는 숭고한 경지가 있다. 영화는 빈궁한 외피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순수함의 가치를 찾아간다. 기능을 상실하고 깡마른 육신으로 똥지게를 짊어진 채 비틀대는 인물들. 여기서 육신의 조건은 인위를 벗어난 무위의 이념에 달라붙은 겉치레마저 제거된 상태다. 허공을 휘적이는 오키쿠의 몸짓이 지닌 결함은 츄지와의 관계 안에서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초월적인 마음을 가리킨다. 인물들은 자주 외화면(off-screen) 너머 하늘을 응시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쇼트는 잇따라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집요한 응시, 사색하는 얼굴의 맹렬함이 있다. 허공을 반듯하게 가로지르는 응시에는 어떠한 의심도 방황도 없다. ‘눈빛’이라는 보이지 않는 직선 경로는 똑바로 살아가리라는 존재의 의지를 가시화하고, 영화의 프레임, 곧 세계의 닫힌 문을 열어젖히는 운동으로 은유된다.
인물들은 거대한 진리로 세상을 뒤흔들지 못하며, 명료하지 않단 의미에서 순수한 얼굴로 존재하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그런 한계가 있기에 이들은 불필요한 위선과 욕심, 자기 삶을 낮잡는 반발심 없이 타인과의 거리, 존재와 세계, 영화와 현실 사이 허공을 횡단하고, 진동시키고, 간극을 잇는 경이를 안긴다. 이걸 두고 세상의 얄궂은 면에 현혹되지 않고 실존적 고뇌 안에서도 다른 것들을 들여다보려는 심안, ‘생의 본질적인 의지’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오키쿠와 세계>는 결말과 해답이 다 드러나지 않아 벌어진 틈 속에서 엿보이는 가능성,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더 깊은 생명의 직관으로부터 솟구치는 거대한 힘들”이라는 사유의 여지를 열어준다. 따라서 큰 시차를 두고 나타난 하늘 이미지는 그 자체로 답을 내리려는 게 아니다. 외려 여태껏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영화의 막, 그 앞의 허공이야말로 끝점 없이 펼쳐진 하늘이었음을 천천히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