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인간, 인간의 AI
2025년 하반기, AI를 예술언어로 승화시킨 네 개의 전시가 열렸다. <뉴-미디어의 재해-석>(2025. 10. 28~7. 4 중랑아트센터), <의문의 AI>(2025. 11. 20~2. 1 인천아트플랫폼),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2025. 8. 1~2. 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A Place Called You>(2025. 11. 12~12. 27 피비갤러리)다. 이들은 모두 기술의 진보를 낙관적으로 찬미하기보다 AI가 촉발하는 균열과 불화에 주목해 인간 중심주의를 전복한다.
먼저 <뉴-미디어의 재해-석>은 생성형 AI 기반 미디어아트 전시다. 슬릿스코프, 디지털세로토닌, 아키버스스튜디오가 참여했다. 전시는 가상의 공간, 관객 참여형 인터페이스, QR 코드와 AI 프롬프트를 활용했다. 결과보다 이미지 생성의 경로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성에 주목한다. 여기서 AI는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는 매개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을 지닌 채 창작에 개입하는 협업의 주체로 기능한다. 작가의 질문에 인공지능이 답하고, 여기에 관객이 참여하는 공동 창작을 선보였다.
앞선 전시가 창작 주체로서의 인공지능에 초점을 맞췄다면, <의문의 AI>전은 기술 발전이 촉발한 동시대의 정치, 윤리적 쟁점을 인터랙티브 설치, 영상, 조각 등으로 시각화한다. 한국, 프랑스, 대만, 싱가포르 등 4개국 9팀이 참여했다. 전시는 AI의 저자성 문제를 출발점 삼아 서구 중심주의, 듀프 소비, 기후 위기까지 연결했다. 여기서 인공지능은 중립적 도구가 아니라 이미 편향된 세계를 학습하고 증폭하는 존재로 제시된다. <의문의 AI>전은 기술 만능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모색한다.
한편, 추수(1992년생)의 개인전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과 융합예술 그룹 퓨처데이즈 개인전 <A Place Called You>는 AI와의 협업을 시각적 결과에 국한하지 않고 생식, 목소리 등 인간 신체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특히 추수는 3D 프로그램으로 모델링한 조각을 유기적 물질과 결합하여 젠더, 성적 욕망, 생명의 순환을 시각화한다. <아가몬 5>(2025)는 엄마가 되고 싶은 작가의 열망을 투영한 조각이다. 인큐베이터 속 ‘아가몬’은 시간이 흐르면서 부패하지만, 그 위를 덮은 이끼는 계속 자라난다. 생명과 소멸이 공존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영상설치 <살의 여덟 정령>(2025)에서는 동양의 팔괘(八卦)에서 착안한 디지털 정령들이 초대형 스크린을 유영한다. 사회가 규정한 섹슈얼리티를 거부하듯 왜곡되고 불완전한 형상은 신체의 경계를 뒤흔든다.
마지막으로 퓨처데이즈는 인공지능을 청각의 차원으로 끌어들인 ‘AI 오페라’를 선보인다. 객석에서 무대를 감상하는 일방향적 관람 형식을 해체하고 인터랙티브 구조를 도입했다. 갤러리를 체험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관객은 VR 헤드셋을 착용한 채 공간을 이동하며, AI 배우와 그의 보컬은 관객의 움직임과 시선에 반응한다. 작품의 주인공 ‘HER’는 고전 오페라 <카르멘>에 등장하는 ‘미카엘라’를 모티프 삼았다. 정숙하고 수동적인 여성이었던 등장인물을 스스로 목소리 내는 주체로 격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