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 스컬리, 영혼과 육체의 성좌
미국 추상화를 대표하는 거장 션 스컬리. 그는 미니멀리즘과 추상표현주의를 넘나들며 인간 본연의 영성을 화폭에 담아왔다. 또한 장소의 에너지와 역사성을 기념비적 조각으로 제작한다. 스컬리에게 회화는 이질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영적 공간이다. 수평선과 수직선이 직조를 이룬 화면으로 영혼과 물질의 만남을 표현했다. 정제된 형상과 깊이 있는 색으로 숭고의 미학을 펼친다. 최근 타데우스로팍 서울에서 스컬리의 개인전 <Soul>(2024. 9. 3~11. 9)이 개최됐다. 자연 풍경을 추상 언어로 번역한 대표 연작 <Wall of Light>와 <Landline>을 한자리에 공개했다.

<Landline Grey> 알루미늄에 유채 152.4×139.7cm 2024
Choo 작가의 작품 세계는 1960년대에 전환기를 맞는다. 화풍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전회했고, 색채를 통해 공간감을 구현하는 일루전을 만들어내는 실험에 집중했다. 변화의 계기가 궁금하다. 당시 작가에겐 어떤 고민이 있었나?
Scully 1960년대 초 크로이던미술대에 다니던 시절, 인물 드로잉에 몰두하면서 회화에 관심을 키워 나갔다. 앙드레 드랭, 모네, 고흐, 폴 고갱과 같은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러다 1965년, 뉴캐슬대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당시 지도 교수였던 마이클 브릭이 내게 말했다. “너의 재능은 색이다. 문제는 그 색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 나의 전부를 바꿔놓는 ‘유레카’의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구상에서 추상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색에 집중했다. 물성이 있거나 입체성을 띤 ‘조각적’ 그림과는 달리, 추상화에선 그림의 평면성이 색채에 주목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각적 요소를 점점 줄이면서 비로소 ‘공간’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 목표가 공간성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추상을 언어로 삼았다. 추상의 화두는 그림의 주제가 무엇인지, 그 주제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그리고 표현을 통해 어떻게 내용을 만들어내는지에 관한 것이다. 추상은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이며, 세상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예술이다.
Choo 이후 작가는 오늘날까지 추상을 주요 예술언어로 고집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신에게 추상이 형식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평, 수직의 선과 색채 레이어가 중심을 이루는 당신의 작품에서 많은 관객이 본능적으로 숭고미를 찾는다. 그림을 그릴 때 ‘숭고’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는지 궁금하다. 한편 모더니즘적 평면성을 추구하면서도 물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션 스컬리만의 리얼리티를 만드는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추상화가는 개념과 물질을 상반된 개념으로 본다. 당신이 추상화를 그릴 때 실재성을 필수적인 요소로 상정하는 이유가 있을까?
Scully 나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현실적인 화면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것은 숭고라 부를 수도 있고 형이상학이라고 칭할 수도 있다. 나는 마크 로스코에게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로스코와 비교하면 내 작품은 더욱더 촉각적이고 물리적이다. 구체적이고 물성을 지닌 그림이자 동시에 영성을 지닌 그림…. 즉 실재와 형이상, 두 세계가 공존하는 화면이다. 나의 모든 붓질이 감정으로 가득 차 있기를 바란다. 때때로 멜랑콜리하거나 슬픔을 전달하면서도 바로크회화처럼 과장되지 않도록 주의해 왔다.
회화의 핵심은 그림에 인본주의적인 잠재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감각적 혹은 디자인적 관점에서의 완성도를 신경 쓰지 않는다. 좋은 그림일수록 그림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을 지닌다. 오늘날 추상회화의 힘은 물리적 상태를 시각적, 감각적, 정신적 상태로 치환하고자 끊임없이 변용하고, 전환하고, 그리고 그것을 다시 반복하는 데 있다. 이는 인간 실존의 조건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내가 추상화를 선택한 이유는 추상 표현이 물질과 인간의 연결이란 토대에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언어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 작업이 어디든 닿을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기를 꿈꾼다.

<Nietsche> 종이에 수채, 잉크 58×38cm 2019
Choo 초기작에선 과도기적인 실험이 눈에 띈다. 각각의 리넨 및 캔버스 틀이 이격된 상태로 조립된 <Backs and Fronts>(1981)와 <Molloy>(1984), 입체화된 조각에 가까운 <Floating Painting Grey White>(1995)가 그렇다. 프레임의 적극적인 구성과 이를 통해 확장된 형상(덩어리)은 ‘공간’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Scully 공간은 내게 중요한 요소다. 그림은 보통 평평한 벽에 걸리지만, 2차원을 넘어 주변 환경과 적극적으로 반응하도록 입체적인 설계를 고려해 왔다. 분명 회화의 기원은 평면에 있다. 그러나 여기엔 2차원과 3차원 사이의 끊임없는 교류가 존재한다. 우리가 그림을 감상할 때를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납작한 표면만 눈에 들어오지만, 더욱 깊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공간이 열린다. 눈과 감각을 자극하는 공간적 특성이 있다. <Floating> 연작은 기억에 관한 작업이다. 전시장 테두리에 고정된 그림이 아니라, 공중에 매달린 조각처럼 감상자의 주변을 맴돌면서 그의 기억과 교감하도록 연출했다. 그림이 건축물 내부에 개입하고 소통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랐다.

<Opulent Ascension> 나무 패널, 서까래, 펠트 360×360×1,020cm 2019_개인전 <Human> 전경 2019 산조르조마조레
Choo 수직과 수평은 그리기의 기본 요소이면서 동시에 공간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작가의 회화에서 수직, 수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는 1970년대부터 화면을 차지했던 ‘테이프’가 주요 역할을 했다고 본다. 테이프는 형태를 만들어내고, 색과 색 사이에 공간을 구획하고, 그 깊이를 보여주려는 제스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테이프는 당신의 회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그 효과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Scully 우리는 벽과 격자로 둘러싸인 기하학과 초구조(hyper-structures) 세계에 살고 있다. 나는 이러한 환경을 작업에 반영해 시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을 만든다. 어린 시절부터 직조나 뜨개질, 식탁보 제작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역시 수평, 수직의 패턴으로 구성된다. 수평의 스트라이프로 체결된 회화에서 감상자는 배경과 줄무늬를 동시에 보고, 화면의 어떤 것도 분해할 수 없는 완결된 느낌을 받게 된다. 선을 통해 표면은 완전해지고 감정은 자유로워진다. 나는 끊임없이 감정을 억제하며 작업에 임하는데, 스트라이프는 나 자신에게 구조와 통제력을 부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관객과 작품, 전시장과 작품 사이의 공간을 그리고 싶은 것이지, 회화 속의 그림(picture space)을 그리고 싶은 것은 아니다.
1960년대 말, 모로코로 여행을 갔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기하학을 보았다. 감정과 움직임 그리고 영성을 담은 기하학이었다. 돌아와서 당시에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테이프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캔버스를 줄무늬로 덮고, 뒤집어서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그리드 형태가 되었다. 나는 스트라이프를 연작의 일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스트라이프는 내게 누드나 과일이 가득 담긴 그릇 같은, 그림을 그리는 대상, 즉 내재한 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구상화를 작업하던 시절에 빗대어 말하자면, 그림의 ‘대상’을 스트라이프가 대체한 것이다. 각각의 작품은 고유한 개성이나 관점을 담고 있다. 스트라이프라는 주제로 감성적인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다.
Choo 1970년대 중반 런던에서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다. 당시 뉴욕 미술씬에는 미니멀리즘과 추상표현주의를 중심으로 사물성과 우연성, 그리고 재료의 물성이 곧 회화적 지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양 사조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입장을 취했었나?
Scully 1970년대 초 나의 화풍이 영국과 맞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내게 큰 관심을 보였던 뉴욕으로 기반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1975년 뉴욕에 도착했을 때, 전통적 환상주의(illusionism)와 복잡한 격자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일었다. 큐비즘적인 그리드를 내려놓자 작품은 더 자유로운 해석을 지니게 되었고, 또 더욱 자립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후 회색 조의 단색 회화를 제작하며 이 개념을 더욱 극한으로 확장했고, 개인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에 더욱 집중하였다. 나의 새로운 전략은 구성을 덜 강조하고, 더 많은 느낌과 감정을 작품에 담는 것이었다. 1980년대에 나는 뉴욕의 추상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다. 당시 뉴욕에는 엘스워스 켈리나 로버트 라이먼, 바넷 뉴먼과 같은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나는 달랐다. 내 작품은 감정을 비롯한 수많은 인본적 요소를 반영한다. 사랑, 개성, 특성, 구조…, 언제나 이미지가 다층적이고 은유적일 수 있도록 열어 둔다는 점이 차이를 만들었다.

개인전 <Landline Weave> 전경 2023 타데우스로팍 파리 팡탱
Choo 아티스트에겐 여행이 작업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작가에겐 멕시코 여행이 그랬다. 당시 보았던 고대 마야 유적지가 영감으로 작용했다. 특히 ‘겹겹이 쌓는’ 방식으로 회화와 조각을 제작하는 방식이 마야의 성벽과 닮았다.
Scully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는데 그중에서도 멕시코는 특별했다. 1980년대 초 새로운 영감을 얻기보다, 작업에 확신을 얻고자 멕시코 여행을 떠났다. 멕시코 문화는 마야, 올메, 톨텍, 아즈텍 문명의 충돌로 탄생했다. 또 도시의 삶과 소작농의 삶이 교차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러한 일종의 혼돈, 광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멕시코는 잔인하면서도 세련되고 또 정제된 나라인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같은 캐릭터를 지녔다. 멕시코에서 나는 내 작업 중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렸다. 마야 유적지에 흠뻑 빠진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빠르게 제작했다. 자노(Zano)의 해변에서 진행한 작업이었는데 여기에 <Wall of Light>라는 제목을 붙이고는 13년을 잊고 지냈다. 이후 다트퍼드에 있었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중에 문득 모서리에 주황색을 추가하여 화면을 분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작업실에 있던 누군가가 작품을 보고 <Wall of Light>를 떠올렸다. 그제야 멕시코에서 그렸던 수채화가 기억났고, 그때부터 이 연작은 마야 유적에 대한 나의 깊은 관심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다.
Choo 영국 노퍽섬의 휴튼홀에서 선보인 개인전 <Smaller than The Sky>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국의 첫 번째 총리를 위해 지어진 역사적 건축물과 아름다운 정원에서 열린 전시에는 공간 자체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시장은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설치를 구상할 때 공간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가?
Scully 나에게 조각은 회화를 3차원으로 번역한 결과다. 색채 블록이 캔버스와 벽에서 벗어나 공간 한가운데에 입체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당시 개인전이 열렸던 영국 동부는 날씨에 따라 도시의 풍경이 시시각각 바뀌는 곳이었기에 환경이 매우 중요했다. 노퍽섬 주민들이 늘 하늘, 구름, 습도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 정도였다. 이러한 변칙적인 환경이 영감의 원천이었다. 야외 조각을 설치할 때는 작품과 주변 정경의 관계가 중요하다. 해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주위에 있는 사물이 조각에 그림자로 비치기도 한다. 어떤 아름다운 작품일지라도 광활한 하늘 앞에선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당시 정원 중앙에 설치했던 <Crate of Air>(2018)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생명력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조각의 재료 또한 주변의 나무, 오래된 벽돌 건물의 물성과 어우러지도록 신경을 기울였다. 작품은 물론 휴튼홀에 펼쳐진 광활하고 장엄한 자연을 강조하고 싶었다.

<Madonna> 알루미늄에 유채, 오일파스텔 215.9×190.5cm 2019
Choo 한 도록에서 작가는 ‘장인 정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무라노 유리로 제작한 <Venice Stack>(2020)은 특히 공예적 특성이 드러나는 조각이다. 작품과 관련해 작가가 생각하는 장인 정신과 공예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다.
Scully 나의 작업은 근본적으로 쌓거나 엮는 행위를 기반으로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뜨개질이나 테이블 매트를 만드는 데 재미를 느꼈다. 수공업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주로 종사하는 노동으로 여겨져 왔지만, 예술에서 성별이나 직위는 중요하지 않다. 예술은 사랑과 헌신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양자가 있다면 작품은 스스로 자라난다고 믿는다. 나는 언제나 조각이 힘든 노동과 반복적인 작업에서 나온다고 생각해 왔다. 창작할 때 굉장히 육체적인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물질, 재료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 그런 점에서 장인 정신, 반복성,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적 윤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Choo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동안 바실리카타 섬의 산조르지오마조레교회(San Giorgio Maggiore)에서 선보인 개인전 <Human>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전시다. 특히 이때 공개했던 드로잉은 션 스컬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Scully 당시 전시를 준비하는 몇 주 동안 수도사들과 함께 먹고 생활했다. 개인전에서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가장 흥미로운 화두는 어떻게 작품이 교회 건물의 웅장한 아우라와 연결될 수 있는지였다. 교회가 지닌 엄숙함에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면서도 너무 진지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어렵고 낯선 예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쉽게 접근하고 경험하며 사랑할 수 있는 예술 말이다다. 추상을 더 인간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느끼고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한편 드로잉은 나에게 시와 같다. 그리고 2019년은 나의 아들이 태어난 해이기도 했다. 아들의 탄생은 삶의 관점을 바꿔놓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자연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Madonna>(2019) 연작에 등장하는 아이는 아들을 모티프로 삼은 것이다. 아들을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교회라는 영원성의 장소에 놓인 아이를 그리고 싶었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을 대표해서 말이다.

<Indoor Sleeper> 자라 나무 250×250×400cm 2020
Choo 작가의 작업이 직접 보고 경험하는 대상에서 영향을 받아 변화해 온 것처럼, 서울 여행 역시 당신의 다음 작품에 어떤 식으로 영감을 줄지 기대된다. 이번 방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을 공유해 달라.
Scully 물론이다. 한국은 매우 아름다웠고, 내 작업과 가깝다고 여겨지는 아시아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중국은 19세기의 미국처럼 역동적이고 거칠다. 한편 한국은 도시 경관과 자연이 흥미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마치 ‘도시를 관통하는 자연’이라고 불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연상시켰다. 바로 한국에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 작업이 추상, 선(禪, Zen)과 늘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관객은 그 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듯했다.
Choo 마지막으로 동시대회화에 대한 질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실재’를 경험하는 방식과 태도가 스크린을 통해 변화했다. 경험하는 것과 보는 것이 달라진 지금, 젊은 세대의 회화는 이미지와 재료의 물성을 실험하면서 촉각적 혹은 비촉각적 감각에 집중한다. 당신은 이 같은 세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Scully 우리는 세상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예지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런던에서 지낼 당시, 나는 굉장히 가난했고 작은 가스 불빛에 의지해 작업해야 했다. 그러나 세상은 어느 순간 아무도 모르게, 아주 매끄럽게 모두가 아이폰을 사용하는 모습으로 전환되었다. 온라인 이미지의 가용성으로 미술은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막 발을 딛었을 때만 해도 미술은 상당히 소외된 분야였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히 주류를 이룬다. 접근성과 자유도가 높아진 지금처럼 미술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젊은 세대의 추상화가에게 추상은 더 많은 색채를 가진, 더욱 물리적인 언어가 된 것 같다. 선대보다 개념적인 면은 덜하지만 감정적인 요소가 강해졌다. 그리고 내 작업 역시 이러한 동시대미술의 흐름과 연결성을 지닌다. 마치 레고를 연상시키는, 반복적인 정사각형의 색채 블록은 컴퓨터 세계와 물질적인 낭만의 세계 모두에 어울리지 않을까.

Photo: Felix Friedmann
션 스컬리 / 1945년 더블린 출생. 런던 크로이던예술대학, 타인위어 뉴캐슬대학교 졸업. 하버드대학교 펠로우십 연수.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해 시민권을 취득했다. 광둥성 히아트뮤지엄(2024), 코블렌츠 루드비히미술관(2024), 타데우스로팍 파리 마레(2024), 필라델피아미술관(2022), 볼로냐현대미술관(2022), 런던 내셔널갤러리(2019), 뉴욕 허시혼미술관(2018) 등 세계 각지 유수의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 개인전 개최. 현재 뉴욕, 바르셀로나, 뮌헨을 오가며 거주 및 작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