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바다의 물결, 생태 메아리

2025 Korea Art Festival Highlight
2025 / 09 / 05

2025바다미술제가 개막 준비로 분주하다. 이번 주제는 <언더커런츠: 물 위를 걷는 물결들>(9. 27~11. 2)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에 주목했다. 17개국 23팀이 참여한다. 이번 전시는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 김금화와 베르나 피나가 공동 감독을 맡았다. 두 감독은 아트포바이오다이버시티의 이사회 멤버로 공공미술과 생태학이라는 관심사를 공유해 왔다. 다대포해수욕장 일대를 ‘에코톤’ 개념으로 읽는다.

쟈닌 안토니 <터치> 비디오, 설치 9분 37초 447×441.3cm 2002

— 바다미술제는 1987년 프레올림픽 문화 행사로 시작된 부산의 유서 깊은 미술축제다. 부산의 주요 자연환경 ‘바다’를 십분 반영하는 행사로 유명하다. 이번 주제는 <언더커런츠: 물 위를 걷는 물결들>이다. 물을 단단한 땅처럼, 물결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표현한 제목이 인상적이다. 사실 둘은 한 존재인데.
Kim 정확하게 읽어주었다. 언더커런츠(Undercurrents)는 ‘물 아래 흐름’, ‘저류’, ‘밑 물결’을 뜻한다. <언더커런츠: 물 위를 걷는 물결들>은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물결을 일으키는 존재를 의인화한 제목이다. 이번 바다미술제에서 ‘언더커런츠’는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난 어촌계 풍경이거나, 수천 년 풍화 작용을 담고 있는 다대포의 모래알, 해변 아래를 지켜온 수많은 게들, 또는 산업화의 압력에서 살아남은 생태계 자체일 수 있다. 전시는 바다와 땅을 오가는 변화무쌍한 물결이 일상과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 환경 위기의 정점에서 공동 의식에 어떻게 경종을 울릴지 묻는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 <폴리미터> 폴리우레탄 필름, 기장 다시마, 송풍기, 사운드 600×600×350cm 2025 스케치
하이케 카비쉬 <케이시> 아크릴 수지, 안료, 점토, 섬유, 금속 30×24×80cm(부분) 2024

— 바다미술제가 다대포해수욕장으로 귀환했다! 2019년 이래로는 일광해수욕장에서 열렸는데, 7년 만에 일몰이 아름다운 다대포로 돌아왔다. 다대포 일대의 매력을 꼽는다면?
Kim ‘부산’ 하면 해운대와 광안리를 떠올리지만, 다대포는 해변의 여유와 일상을 간직한 곳이라 특별하다. 이곳은 아파트 단지가 있을 뿐, 관광특구로 개발되지 않았다. 맨발로 바닷물을 밟으며 어싱(earthing)을 즐기고, 매일 저만의 의자를 가져와 햇볕을 만끽하는 주민들이 인상 깊었다. 다대포의 풍경은 에두아르 글리상의 『관계의 시학』을 떠올리게 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존재 사이의 관계, 풍경에 스며든 다양한 관계성과 회복력, 그 공명과 흔적이 이곳에서 자연스레 드러난다. 글리상이 강조했듯, 풍경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교류의 흔적이다.

— 다대포는 낙동강의 토사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해수욕장이다. 모래사장과 갯벌, 바다와 강이 공존해 풍요로운 생태계를 자랑한다. 그러나 한때는 간척과 난개발로 오염돼 ‘해수욕장’의 기능을 잃을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Vienat 해수와 담수가 뒤섞이며 자아내는 다대포의 풍경은 천국만큼 황홀하지만, 이면에는 교란된 생태계, 어업 산업의 폐기물 등과 같이 어두운 이야기도 있다. 이번 전시는 관객이 기념엽서 같은 풍경을 넘어, 더 넓은 차원으로 눈을 돌리게 하고 싶었다. 바다의 대사 작용, 생태계의 회복력, 인간과 비인간의 섬세한 연대가 주요 테마다. 궁극적으로는 물만큼이나 서로의 ‘돌봄(care)’이 필수적이다.

— 전시 장소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이번 바다미술제는 다대포해수욕장의 서측과 동측, 몰운대, 고우니생태길, 다대소각장, (구)몰운커피숍을 전시 공간으로 폭넓게 활용한다. 장소마다 어떤 장면을 기대하는가?
Kim 다대포해변은 모래, 바람, 해양 생물부터 낙동강 설화와 어부가(漁父歌) 등 다층적 스토리가 얽힌 장소이다. 우리는 다대포의 현재를 물질과 기억, 산업 사회와 자본주의, 인간과 비인간이 형성하는 관계망으로 상정했다. Resistance(저항/지속)–Resilience(회복)–Recovery(발견)라는 세 키워드로 다대포의 시간과 공간을 산책하는 전시를 그리고 있다. 가령 곧 재개발될 다대소각장은 매립지와 소각장으로 운영되었던 ‘오염의 역사’를 환기한다. (구)몰운커피숍은 ‘물의 신전’이 되어 해녀와 신화, 주민과 관객이 조우한다. 특히 작가 13인이 ‘땅과 친해지는 법’을 제안하는 고우니생태길의 ‘아티스트 인스트럭션’이 여러 공간을 매끄럽게 이어주리라.

— 이번 바다미술제에는 한국 폴란드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터키 오스트리아 칠레 태국 바하마 에콰도르 등 총 11개국 23팀이 참여한다. 참여 작가의 수를 줄이는 대신 작품의 퀄리티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할 예정이라고. 주요 작품을 살짝 스포일러해 달라.
Vienat 우리는 전시의 규모가 아니라 ‘깊이’를 택했다. 큰 이벤트를 벌이기보다 깊은 경험을 선사한다. 나는 스위스 작가 마리 그리스마의 ‘수중 조각’을 추천하고 싶다. 작가는 부산 해양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식물 플랑크톤을 세라믹으로 제작해 바닷속에 설치한다. 관객은 스노클링이나 다이빙으로만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다. 관객은 문자 그대로 물속이라는 다른 세계에 뛰어들어야 한다.
Kim 작품이 의도대로 실현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웃음), 작가 수보다는 작품의 콘셉트, 완성도에 더 주의를 기울인 건 사실이다. 이번 바다미술제의 참여 팀 가운데 3분의 2가 신작을 선보인다. 대부분 다대포해변에 설치될 예정이다. 예컨대 고우니생태길과 해변을 걷다보면, 올라프 홀츠압펠의 <사구 한가운데, 길은 희미해지지만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2025)를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은 볏짚과 흙으로 만든 구조물이다. 작가는 지역 목수와 협업해 콘크리트의 대안으로 볏짚을 제시한다. 관객은 구조물을 거닐며 창문 같은 개구부로 바다와 생태길을 함께 볼 수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른 두 생태계가 맞닿아 겹치는 과도기적 구역, 일명 ‘에코톤(ecotone)’ 개념을 구현한다.

— 두 감독의 기존 큐레이토리얼 비전을 알아보자. 김금화 감독은 베를린공대에서 예술학 석사를 전공하고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해 왔다. 야외나 공공 공간에서 대규모 설치작품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피나 감독은 스위스 국적으로 현대 사회와 환경 이슈를 연구해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리커네팅.어스((re)connecting.earth)>라는 프로젝트를 펼쳐왔다. 우선, 두 사람이 만난 계기가 궁금하다.
Vienat 우리의 협업은 베를린에서의 우연한 ‘밑 물결’로 시작됐다.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예술이 갖는 의미와 생태학 이야기로 말문을 텄는데, 이 대화는 ‘과연 전시가 화이트 큐브를 넘어 실제 환경으로 확장될까?’라는 질문으로 발전했다. 바다미술제 공모에 함께 지원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만큼 말이다. 밀물과 썰물처럼 대화를 서서히 이어가다가 부산에서 하나의 물줄기로 만난 거다.

마리 그리스마 <호수 여행> 스톤웨어에 유약 가변크기 2024

아트, 미래를 매개하는 윤활유

— 두 사람은 예술가와 큐레이터의 생태학적 관심을 도모하는 비영리 기구 ‘아트4바이오다이버시티(Art for Biodiversity)’의 이사회 멤버다. ‘아트4바이오다이버시티’는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그룹인가?
Vienat 아트4바이오다이버시티는 생태와 예술의 접점을 탐구하는 비영리 플랫폼이다. 생태를 화두로 예술가, 큐레이터, 연구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연결된다. 예술이 생물 다양성 보호에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라 불리고 싶다. 전시, 워크숍, 지역 공동체와의 만남 등으로 예술과 과학을 넘나든다. 목표는 심플하다. 문화예술로 생태 이슈 가시화, 이 질문을 다루는 예술가 지원. 결국 아트포바이오다이버시티는 예술과 생태를 연결하려는 의지와 호기심만 있다면, 어디서든 지펴지는 불씨이다.

안체 마에브스키 <물고기들> 워크숍 2023 산트 플로리안 플로라폰템포러리

— 전시 기획에 있어 유럽과 한국의 상황은 많이 다르리라. 크게는 행정 절차, 예산 처리 등부터 사소하게는 문화예술을 대하는 개인의 태도와 대중의 이해도까지···. 유럽 아트씬에서 주로 활동해 온 감독들에게는 바다미술제가 하나의 도전이었겠다.
Kim 바다미술제의 공동 감독이 된 건 큰 영광이다. 그러나 바다미술제를 통해 부산시가 기대하는 ‘부산성’과 미술인으로서 지향하는 ‘부산성’에는 다소 차이가 있음을 실감했다. 나는 부산 출신 작가만이 아니라, 어떻게 부산의 지역성을 품느냐가 ‘부산성’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글로벌과 지역성의 균형을 맞추어야 했다. 더욱이 전시 종료 후 대부분 작업을 폐기 처리해야 하는 규정에도 의문이 들었다. 생태의 지속 가능성이 바다미술제의 중요한 정체성이니, 전시의 실행 과정과 종료 이후도 고민해 봐야 한다.
Vienat 솔직히 한국과 유럽의 큐레이팅 환경이 아주 달랐다. 내게 인상 깊었던 점은 ‘기대의 차이’였다. 한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예술이 공개될 때 굉장히 강한 공적 책임 의식을 지닌다. 반면 유럽에서는 예술적 자율성이 더 중시된다. 이 문화 차이 덕에 바다미술제와 같은 행사가 지역 사회에 어떻게 울림을 줄 수 있을지 되새길 수 있었다.

— 마지막 질문이다. 두 감독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Kim 내게 예술은 환경 위기, 사회 분열, 전쟁으로 치닫는 세상의 복합적 구조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방법론이다. 예술가들의 다중 시점이 모일 때, 세계는 살아볼 만한 공간이 된다. 예술은 자본의 논리에 매몰된 시대에도 경계의 공간을 비추며, 사회적 상상력과 집단적 유연성을 열어준다. 그 경계는 보이지 않는 것들, 잊힌 존재들에 대한 존중을 일깨우는 자리다. 예술은 이를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가는 힘이 된다. 인류학자 안나 칭이 말한 ‘폐허 속 삶’에서 예술은 과거의 유령과 현재의 이웃, 그리고 미래의 인류를 매개하는 윤활제이자 촉매제이다.
Vienat 나에게 예술은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이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감지되지 않던 것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또한 예술은 ‘관계’이다.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 인간과 더 큰 존재 사이의 연결을 만든다. 우리가 어떤 예술을 보고 웃고, 떠들고, 놀라워하지 않는다면 그건 본질적인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김금화 / 금아트프로젝트 설립자, 아트디렉터. 경기도미술관 경기창작센터 협력 국제 심포지엄 ‘혼종의 풍경: 갯벌’ 기획.
베르나 피나 / 비영리 협회 아트-베르크 창립. 프로젝트 <(리)커넥팅.얼스> 기획. 아트4바이오다이버시티 이사회 멤버.
강과 바다의 물결, 생태 메아리 •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