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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위로하고연대하는

아트인컬처평론프로젝트‘피칭’제4회선정자이시안

2024/05/22

독일 출신의 아티스트 괴란 그나우드슌(Göran Gnaudschun)은 4년 동안 베를린의 중심부에서 밀려나 거리를 배회하는 존재들을 담아냈다. 소위 10대 가출 청소년, ‘홈리스’라고 불리는, 사회가 규정짓는 주류에 속하지 못한 존재다. 작가에게 초상 사진이란 외모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인격과 품위를 의미한다.
작가가 사용한 ‘아웃 오브 포커싱’은 인물에게 집중력을 높이며 그들이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눈빛과 인상이 사진의 언어로 읽히게 유도한다. 사진 속 어디에서도 그들을 동정하거나 시혜하는 면은 찾아볼 수 없다. 작가는 오히려 그들을 위한 공평한 발걸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사진 언어를 채용한다. 언어가 빈약한 집단에 속할수록 자기 경험에서 소외된다. 자기 경험에서조차 소외되고 사회에서 배제된 존재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그 상흔을 초상 사진이라는 언어를 사용해 그들이 더 이상 경험에서 배제되거나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

비주류의 초상

제 안의 결핍과 공허에 시달리는 존재는 타인에게 줄 것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그러나 나만큼이나 큰 결핍과 공허를 품고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면 그도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을 테니 어쩐지 동등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가갈 수 있다. 그나우드슌 역시 스쾃에서 살며 펑크 음악을 하고 지냈다. 그들도 어쩌면 직관적으로 느꼈을지 모른다. 자신들과 같은 일종의 결핍과 공허를 품고 있는 존재를 말이다.
대부분의 관계는 애석하게도 일종의 교환 시스템이다. 사진이라는 언어도 하나의 관계라면 그 안에서도 모종의 교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여타의 관계와는 다른, 이를테면 욕망과는 다른 사진 고유의 교환 구조가 있을까. 반면, 우리가 무엇을 찍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것이 사진의 고유한 세계다. 서로를 알아볼 때, 그 세계의 균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래서 인식하고 싶은 것만 인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본다’는 것은 가시적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 대도시의 광장에는 눈에 보이는 취약성이 너무나 많다. 블랑카는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를 어떤 사진과도 연관시킬 수 없다. 그것이 사진가가 원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들을 대중으로부터 보호하고 일부는 그들 자신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마치 자기 아이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처럼 이야기한다. 작품은 진부한 고정 관념의 결에서 어긋나 문제 뒤의 개인을 보여주려 한다. 마치 주인공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는 듯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알렉산더 광장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쉽게 ‘바라보지 못하(않)는’ 개인의 운명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나우드슌은 예술적 매체로 현실에 직접 접근하는 것을 좋아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사람들과 그들의 환경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알렉산더광장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있는 곳이든, 하노버의 평범함이든, 이전 독일과 독일 국경인 곳이든, 로마의 동쪽 변방이든 상관없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가지고 그 장소를 지나치지 않고, 오히려 층위와 층위를 형성하는 고통과 시간에 대한 작업을 이어 나간다. 사람, 장소, 시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주제 영역에 따라 초상화, 풍경, 상황 이미지, 문서 그리고 발견된 이미지를 소재로 다층적인 작업을 회전한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이런 식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사진에 대한 무언가를 열어주는 또 다른 대안이라고 본다. 그래서 다른 공간, 초월적인 것, 아마도 다큐멘터리 시라는 용어로 의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시간을 충당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도 마음을 열고 다큐멘터리 시와 가까워지는 시간 그리고 사진 언어를 향유하는 순간과 조우하길 바란다.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