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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초상,끈끈한기념비

아트인컬처평론프로젝트‘피칭’제1회선정자조현아

20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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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지<오직미래만이과거를방문한다>다채널비디오,컬러,사운드12분2023

외할머니의 영정 사진에는 노년기에 접어든 그가 안경을 쓰고, 정장을 갖추어 입은 모습이 담겼다. 정형화된 규격으로 인쇄된 초상 사진에는 임종 직전 엄마가 요양원에 방문해 스마트폰 후면 카메라로 찍어온 연약한 환자의 모습이나, 술에 취해 악을 쓸 때의 표정이나 일본어가 섞인 욕설을 짓씹으며 나를 호되게 쥐어박을 때의 얼굴, 이북에서 내려와 남한에 정착한 디아스포라의 이야기 모두가 소거되어 있었다.

장례식 직후 이민지의 <오직 미래만이 과거를 방문한다>(2023, 이하 <미래>)를 우연히 보았다. <미래>는 작가의 외할머니가 장기간 머물렀던 인천의 1900년대 초반과 6·25전쟁 기간 중 촬영한 사진을 탐색함으로써, 당신보다 앞선 시대이거나 그가 목격했을지도 모르는 풍경을 담아낸다. 그러므로 작품은 외조모의 사진과 그에 대한 기억이 단순한 소지품의 차원을 넘어 사료가 될 수 있다는 ‘입체적인’ 개념의 전환을 시도한다. 나는 작품을 본 후 닮은 얼굴을 하고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나, 엄마, 할머니의 세 여자가 사진을 대하는 태도를 재고하고, 엄마들의 사진을 볼 때의 복잡한 마음을 언어화하며 그들이 신성시했던 사진을 ‘기억’ 형성의 발로로 끌어 낮춰 직시할 수 있었다. 사진은 1930년대생 외할머니, 1960년대생 엄마, 1990년대생인 내게 모두 일상적인 매체였지만, 그것에 부여하는 의미는 제각기 달랐다. 엄마들은 인화된 초상 사진을 파손하는 행동을 허용치 못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태도는 사진을 ‘위계 없는’ 이미지로 대하는 딸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미래>에서 이민지는 웃어른의 흑백 사진을 과감히 접어 흔들리는 배에 태운다. 그리곤 그 이미지를 렌즈로 훑어 현재로 소환하며 엄마를 ‘너’라고 호명한다. 나는 이 작품의 태도를 방법론으로 삼아 폭력의 주체였던 엄마이자 카메라 앞에서 최대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려 했던 여자들의 사진을 공동의 아카이브로 다시 마주하고, 경시되었던 한국 여성의 생생한 근과거를 끄집어내고자 한다. 이 사진, 메모라빌리아(memorabilia)에는 모성이 일방적으로 대물림됨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발생하는 폭력의 가능성이 내재해 있지만, 정작 우리는 이를 엄마들의 젊음을 증명하는 수단으로만 간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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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지개인전<오직미래만이과거를방문한다>(2023)전경인천아트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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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복잡한 궁극의 아카이브

<미래>는 입체적인 사진을 구현하는 스테레오스코피(stereoscopy)의 개념과 사례를 보여준다. 이를 응용해 작가는 다른 존재의 시선과 자신의 시각을 겹친 ‘두 겹의 눈’이 형성한 시공간을 탐험했다. 이때 ‘두 겹의 눈’이라 반복되는 문구는 일차적으로 카메라 렌즈와 보는 이의 눈, 또는 엄마의 초상을 찍었을 카메라 렌즈와 이를 재촬영하는 작가의 카메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나에게 ‘두 겹의 눈’은 엄마가 대물림한 정서적 틀과 그 안에서 내가 형성한 자아거나, 혹은 딸로서 갖춘 사적인 시각과 페미니즘을 학습한 서술자적 시각의 공존에가깝다.

일반적으로 사진은 과거의 사건을 입증하는 정보 역할을 하지만, 엄마들의 사진만큼은 내게 ‘미지의 물체’로 항상 남아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과거의 이미지를 어떻게든 이해하려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이미지를 회고하는 방향을 바꾸고, 유사한 경험을 가진 다른 딸들의 기억을 들으며 엄마들의 사진이 담지하고 있는 시대적 상흔과 우리에게 대물림된 외상을 파헤쳐 보는 일이라 생각한다. <미래>가 그러했듯 엄마를 긍정적으로만 기념하기를 과감히 포기하고 그들이 남긴 초상을 ‘입체적’으로 완성해 가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딸들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제 엄마들의 사진은 <미래>에서 그러했듯, 딸들의 손에서 접히고 텍스트를 덧입으며 상흔의 기록이 각인된 기념비로 변모할 수 있을 테다. 나는 그렇게 기념비가 된 사진 앞에서 엄마가 “넌 정말 나를 닮았다”라는 말을 건넬 때마다 느낀다. 죽은 엄마의 엄마와 살아있는 엄마와 내가 몸, 물질, 이미지로 공유하고 있는 끔찍하고도 끈끈한 역사를…. 그리고 우리가 이를 영원히 회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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