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슈퍼플랫 무빙이미지

아트인컬처 평론 프로젝트 ‘피칭’ 제18회 선정자 김진혁
2025 / 07 / 01

지금 우리 시대의 콘텐츠는 먹방과 먹방이 아닌 것으로 나뉜다. ‘먹방(Mukbang)’은 2000년대 중반, 인터넷 개인 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현 SOOP)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으로 확산된 일상적인 대중문화 콘텐츠다. 이 글은 먹방을 ‘무빙이미지’로 상정하고, 무라카미 다카시와 사와라기 노이가 함께 주창한 ‘슈퍼플랫(Superflat)’ 개념을 분석의 틀로 삼는다. 먹방과 슈퍼플랫이 탄생한 역사적 맥락은 서로 다르지만, 시각적·감정적 구조에서 충분한 유사성을 갖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먹방에 축적된 서사와 구조를 중계한다.

사와라기는 2005년 <리틀 보이: 일본 하위문화 예술의 폭발>(4. 8~7. 24 뉴욕 재팬소사이어티)전에서 슈퍼플랫 개념을 구체화한다. 일본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선이었던 아시아-태평양전쟁 패전 후 미군 점령, 미·일 안보조약 체결이라는 시민적 좌절에도 빠르게 재건됐다. 하지만 그 이면엔 사회적 고립과 오타쿠 문화의 부상 같은 조용한 균열이 존재했다. 아이들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몰입했고, 이 하위문화에는 <고지라>(1954), <우주전함 야마토>(1974~75)처럼 전쟁의 흔적이 가득했다. 반면 고급문화로 간주되어 온 순수미술은 전쟁의 기억을 배제했으며, 무라카미는 하위문화, 즉 오타쿠 문화에 담긴 전쟁의 기억과 봉인된 감정을 작업으로 끌고 왔다. 그 형식이 바로 슈퍼플랫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첫째, 억압된 감정의 산물이다. 둘째, 감각을 자극하는 평면적 이미지로 나타난다. 셋째, 감각은 넘치되 성찰은 부재하다. 넷째, 하위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를 허문다. 이 다층적인 의미는 먹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렇다면 먹방은 왜 슈퍼플랫화된 무빙이미지일까? 무라카미가 웃는 얼굴의 꽃과 자체 제작 캐릭터를 평면에 폭발적으로 배치했듯, 먹방 역시 공격적인 시청각 자극으로 구성된다. 과식과 폭식, 육류의 핏물 클로즈업, 욕설 섞인 감탄사, 음식 해체 장면은 시청자를 화면에 몰입하게 한다. 이는 일시적인 해소의 감각을 주지만, 감정의 근원은 그대로 남는다. 무라카미가 반복된 도상과 색감으로 회화의 표면을 무한 증식했다면, 먹방도 유사한 연출을 반복하며 자가 복제된다. 이는 생존이나 나눔의 먹기가 아니라 감각의 소비에 가까우며, 결과적으로는 ‘납작한 먹기’로 구성된 시청각적 이미지의 연속일 뿐이다. 아프리카TV의 개인 방송 스트리밍에서 시작된 먹방은 지상파 예능, 광고, 다큐멘터리, 영화 등 다양한 전통 매체로 확장되며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경계를 허물었다. 플랫폼에 따라 형식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넘치는 감각의 평면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처럼 먹방이 반복 재생산되는 가운데, 우리가 놓친 성찰은 무엇일까. 1인 가구 증가와 공동 식사의 붕괴로 ‘혼밥’은 일상화됐지만, 먹방은 그 배경을 질문하지 않고 고립된 식사를 취향으로만 포장한다. 또한 한국 사회는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거나 그것을 억제하려는 경향이 강한 문화권인데, ‘매운 것을 먹고 스트레스를 푼다’는 발화는 억압된 감정을 식욕으로 우회한 사례다. 이때 먹방은 단순한 시청 대상이 아니라 감정의 대리 분출구가 되며 폭식, 욕설, 과장된 몸짓은 비틀린 감정 표현 방식으로 정당화된다. 이에 더해 먹방은 물질적 풍요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데, 그것이 강조될수록 오히려 정서적 결핍은 선명해진다. 물질적 풍요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우리의 가치관이 사회와 개인의 내면을 채우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먹방은 결핍을 기억하는 부모 세대의 정서적 유산과 맞닿아 있다. 전후 세대의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불안은 젊은 세대로 전이되어, 오늘날 먹방이라는 형식에 기댄 채 무의식적으로 반복된다. 과식의 실체는 불안인 것이다.

일부 먹방은 소통의 기능을 하지만, 이 글은 감각 과잉과 폭력성이 반복되는 장르로서의 먹방에 주목했다. 먹방은 한국 사회의 감정 구조를 감각적으로 구현한 ‘움직이는 무의식’으로, 시청각적 쾌락 속에서 정서적 성찰은 얕은 평면성에 갇혀있다. 따라서 먹방을 단순한 콘텐츠가 아닌, 사회 변화와 결핍을 드러내는 문화적 기호로 읽는 비평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때 우리는 마침내 납작해진 감정과 구조를 입체적으로 마주할 수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