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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미술의동반자

아트인컬처평론프로젝트‘피칭’제14회선정자차승우

2025/03/01

예술계에서 건축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건축은 공학이고 인문학이자 예술이다. 나아가 건축은 건축가의 가치관에 따라 사회학, 경영학, 심지어 자연 과학도 될 수 있다. 이런 시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건축이 단순히 공학의 한 지류로 인식되는 작금의 상황은 안타깝다. 건축에서 공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지만, 건축이 지닌 예술적 잠재력과 최근 경향을 고려하면 분명 또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고대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건축의 3요소’로 구조, 기능, 미를 제시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건축의 바이블이다. 이 세 키워드는 가변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무한해, 결국 건축을 특정 장르로 국한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로 작용한다.

건축의 3요소 중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이 되는 요소는 기능이다. 건축은 ‘필요’에 의해 탄생하고, 필요는 기능의 시발점이다. 기능의 형태화를 위한 탐구에는 ‘인문학’이 선두에 선다. 그리고 지리, 환경, 사회적 분석이 뒤따른다. 이는 건축의 장르적 포용성이 만개하는 시점이다. 구상의 발원에 불과한 비가시적 필요가 가시적 현상이 되는 과정에서 갖가지 가능성이 터져 나오는, 설계의 ‘꽃’과 같은 단계다. 동시에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공학’이 필요하다. 건축에 공학이 필요한 이유를 인문학이 설명하는 아이러니하고도 철학적인 과정에 예술이 스며든다.

‘미’는 건축을 예술로 인식하는 데 타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다. 여기서 ‘미’란 건물 껍데기의 시각적 미추 판단을 넘어 공간이 기능과 구조를 아름답게 품어낸다는 의미다. 건축이 그곳의 프로그램 기능을 해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를 미학적으로 얼마나 아름답게 풀어냈는가, 또 공간이 사용자의 경험을 얼마나 즐겁게 만들며 이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가. 이러한 질문은 미술적 담론의 어젠다가 되기에 충분하다. 저마다의 답은 건축의 예술적 가치를 논하는 시금석이다.

이러한 물음이 비단 건축의 바운더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건축계에 있어 더욱 고무적이다. 오늘날 건축은 현대미술의 조력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훌륭한 건축이란 잘 만들어진 그릇과 같아서 미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포용하고, 그 자체로 작가의 작업 대상이 될 잠재력을 갖는다. 고든 마타-클락, 크리스토&장- 클로드 등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는 데 건축을 활용한 대표적인 20세기 예술가다. 이들 작업은 건축의 영원성에 대한 반박의 측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영원히 남는 것보다 사라질 것을 만드는 데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하다.” 2020년 타계한 대지미술가 크리스토 자바체프가 생전에 남긴 이 말은 건축의 영원성이 아닌 소멸성에 초점을 둔다. 여기서 건축의 한계가 한 꺼풀 벗겨지고, 예술의 조력자가 아닌 주인공으로 기능할 잠재력을 드러난다. 크리스토&장-클로드는 전 세계 굴지의 랜드마크나 자연을 ‘패킹’하는 작업으로 관람자가 대상을 오롯이 예술로 감상하게끔 유도했다. 이는 건축의 3요소를 소멸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예술이며, 그중 하나인 ‘기능’의 소멸이 건축의 예술적 가능성의 한 갈래를 도출한 역설적인 상황이다. 기능의 소멸은 구조의 소멸로 이어진다. 그때 비로소 미적 경험이 남는다.

현재 한국의 미술산업을 지배하고 있다시피 한 ‘현대미술 전시’ 트렌드 역시 이러한 소멸성에 기반한다. 전시는 근본적으로 일시적인 콘텐츠다. 전시기획자는 사라질 공간을 디자인한다. 이런 일시성에도 불구하고 작품 세계를 쏟아내는 작가와 이들을 전시장에 옮겨 놓으려는 큐레이터의 창의성을 온전히 담아낼 방법은 ‘최적의 공간디자인’이라는 추상적이면서도 명쾌한 해답이다. 최적의 공간디자인에 건축가의 능력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2024년 키아프 & 프리즈 서울의 공간 연출에 서을호, 장유진 등 건축가가 참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미술과 건축은 함께 성장하고 있다. 건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여기에 발맞춰야 한다. 소멸을 단순히 붕괴의 측면으로 해석하는 전형적 사고로부터 탈피하고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일 때, 건축은 마침내 예술적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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