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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있거든 추월해 가시구려
박서보. 한국 미술계의 살아있는 거장. 그는 전후 화단에서 앵포르멜, 옵아트, 팝아트를 자기화해 ‘단색화’로 양식적 열매를 틔웠다. 질서 정연한 화면에서 호흡하는 하늘과 땅, 공기가 솔솔 통하는 색의 숨구멍.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꾀한 그 결실은 글로벌 아트마켓에서 만개했다. 박서보 작품을 필두로 한 단색화의 대약진으로 한국 현대미술은 국제 미술시장에서 당당히 ‘시민권’을 따냈다. 호방하게 전위 미술운동을 진두지휘해 동료 미술인의 ‘애증’이 엇갈리기도 하는 ‘인간’ 박서보. 그의 이름 석 자에는 한국 현대미술사가 고스란히 겹쳐있다. 1931년생, 올해 아흔세 살의 화백은 여전히 분주하다. 올 3월 14일 그는 2024년 여름 제주 서귀포시에 건립될 박서보미술관(가칭)의 첫 삽을 떴다. 최근 발견된 폐암을 ‘친구’처럼 모시며 마지막까지 뜨겁게 작업하리라 노익장을 예보한 화백. 그간 Art는 박서보의 ‘실버 시대’를 촘촘하게 조명해 왔다. 날아가는 새도 손을 뻗쳐 잡을 기세였던 그가, 아틀리에로 침잠해 다시 한번 작품과 정면 승부하기 시작한 ‘원숙기’를 담아왔다. 70년 예술인생의 파고가 담긴 자신만만한 육성, 허심탄회한 회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수신’을 넘어 ‘수행’에 다가선 노화가의 성가(聲價)를 되새겨 보자.
“지난날 나는 ‘앞에 가는 똥차 비키시오’하고 선배들을 향해 소리쳤답니다. 이와 똑같은 말투로 ‘앞서가는 똥차 비키시오’하고 부메랑처럼 내게로 되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관 뚜껑에 못질할 때 모든 것이 끝난답니다.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도 서서히 다가옵니다. 그 찰나에 뒤늦은 후회의 한(恨)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나는 내일도 모레도 수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아무리 비켜서라 소리쳐도 나는 비켜설 의향이 없습니다. 자신 있거든 추월해 가시구려.”
2007년 4월호 「슈퍼 실버」 특집에는 76세를 맞아 박서보의 삶과 예술을 되돌아보는 ‘회고 인터뷰’가 실렸다. 그가 수집해 온 만년필, 반지, 넥타이, 안경 등의 애장품도 공개했다. 2011년 1월호 「나의 그림은 수신의 도구」에는 박서보가 자신의 완숙기를 회고하는 토막글을 썼다. 2012년 6월호 「한국의 단색화」 특집에는 박서보의 수필 「나의 현대미술 투쟁사」를 실었다. 새로운 변화로 21세기라는 거대한 물결에 맞서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2015년 2월호 「박서보, 단색화의 거장」에는 페로탕 소속 작가로 합류하며 세계 유수의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때의 소감이 실렸다. 2019년 6월호는 ‘박서보 특별호’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을 계기로 절정을 맞이한 그의 예술세계 A to Z가 총망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