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돌’

평론 프로젝트 ‘피칭’ 제19회 선정자
2025 / 08 / 01

돌은 오랜 시간 조각의 재료로서 예술가에게 형태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변화 속에서 돌은 단지 조각의 대상이 아닌 개념적 기호이자 설치의 구성 요소로 확장되었다. 동시대 미술작가는 돌이 지닌 물성과 상징성에 주목하며 이를 매개로 인간의 역사, 기억, 노동을 재구성한다. 흥미롭게도 지난겨울부터 올봄까지 ‘돌’을 직접 제목에 포함한 두 개의 전시가 막을 내렸다. 바로 홍이현숙과 염지혜의 2인전 <돌과 밤>(2024. 12. 5~3. 30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박진아 개인전 <돌과 연기와 피아노>(2024. 12. 3~1. 26 국제갤러리)이다.

돌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열망과 신념을 담는 매체였다. 고대인은 동굴 벽에 신앙과 생활상을 그려냈고, 중세 대성당은 솟구치는 석조 구조물로 신에 닿으려 했다. 서양이 수직적 열망을 표현했다면, 동양에서는 주로 깨달음을 위한 내면의 열망을 담았다. 대표적인 예로 석불이나 암벽을 파낸 석굴이 있다. 즉 인간은 돌을 깎고 쌓으며 신과 죽음, 이상향을 기록해 왔으며 돌은 인간의 정신적 표상을 담을 수 있는 하나의 원형적 캔버스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조각이 설치 개념으로 확장되면서 돌은 점차 그 물성을 탐구하고 설치하는 대상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작가는 돌이 지닌 의미망 자체를 작업의 주제로 끌어들인다. <돌과 밤>전에서 홍이현숙이 선보인 <아미동 비석마을>(2024)이 대표적이다. 작업 배경인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에 공동묘지였으나 6·25전쟁 이후 피란민의 거주지로 변모한 장소이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던 피란민들은 묘지 비석 위에 집을 짓고 계단을 만들었다. 홍이현숙은 이 장소에서 헐렁한 파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비석마을에 살았을 ‘삶에 찌든 명랑한 아줌마’의 몸짓을 표현했다.¹⁾ 비석을 조심스레 닦으며 그 위에 존재했을 생들의 기억을 더듬었다. 퍼포머 사토 히로무와 몸을 움직이며 돌 아래 존재했을 생의 기억을 호출했다.

또 다른 출품작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인수봉>(2024)은 전문 등반가와 협업해 북한산 인수봉 바위에 광목천을 덧대고 크레용으로 프로타주한 작품이다. 현장 참여자는 줄에 매달려 돌의 표면을 비문처럼 떠냈다. 인간의 손이 경험한 바위의 촉감은 붉고 거친 시각적 무늬로 전유되어 돌의 육중한 무게와 오랜 시간성을 환기한다. 높이 11m에 달하는 프로타주 설치작품은 온몸으로 더듬은 암벽의 압도감을 전시장에 옮기며, 관객에게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이 무엇인지 상기하게 한다.

한편, 박진아는 <돌과 연기와 피아노>전에서 돌의 이동과 그 이면의 노동에 주목했다. 작가는 2023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박현기의 설치작업 배치 현장을 목격한 바 있다. 그는 여기서 무명의 전시장 노동자, 즉 돌을 옮기고 지탱하는 이들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돌 포장을 벗기고>(2024)에 등장하는 노동자의 무채색 셔츠와 청바지는 고된 노동에도 먼지가 묻거나 쉽게 해지지 않는 옷이다. 이들의 옷은 돌이 놓이는 화려한 주황색 미술관 바닥과 대비된다. 여기서 박진아에게 돌은 더 이상 조형의 대상이 아닌, 일상적 노동의 무게를 대변하는 상징이다. 돌은 딱딱한 자연물이 아니라 미술관, 촬영장, 공장 등 일상에서 발생하는 노동을 포착하는 매개체이다. 나아가 작가가 사용하는 밝은 원색 계열 물감은 그가 포착한 일상의 순간을 몽환적인 화폭의 사건으로 번안한다. 노동자의 분홍 양말, 보랏빛 얼굴은 일상의 무심한 제스처를 푼크툼(punctum)으로 전환해 비가시적인 노동의 흔적을 미묘하게 부각하는 장치다.

홍이현숙이 돌의 표면에 억눌린 시간을 몸짓으로 되새긴다면, 박진아는 돌의 무게를 떠받치는 몸의 흔적을 회화로 조명한다. 재일 조선인 2세 소설가 이양지는 유작 『돌의 소리』에서 돌은 오랜 시간 인간의 이미지를 보태거나 가공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자기 뜻을 지녀왔다고 표현한다. 돌은 말이 없기에 때때로 우리를 눈뜨게 한다. 동시대에 이르러 미술작가는 이를 포착하고, ‘더 이상 조각되지 않는’ 돌의 언어를 제시함으로써 우리를 감각하게 한다.

배경 · 홍이현숙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인수봉>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31분 24초 2024 스틸 © 최황

1)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작품 설명 중.

두 개의 ‘돌’ •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