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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을맛보는‘빵지순례’

문화역서울284,지역대표브랜드기획전

2024/06/18

‘나도 독립 서점을 열어볼까’ 궁리해 본 사람은, 도쿄의 모리오카 서점 탄생기를 한 번쯤 접해봤으리라. 이 책도 보여주고 저 책도 선보이고픈 의욕을 지워낸 채, 한 주에 한 가지 책만 판다는 주인장의 원칙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의 저자 김키미는 ‘미쉐린 가이드’의 성공 전략으로 ‘하지 말 것(not to do)’을 꼽는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미쉐린 가이드’에선 평가원의 신분을 공개하지 않는다. 한 번 먹고 바로 결론 내리지 않는다. 인테리어나 분위기 등 음식 외 요소를 반영하지 않는다. 많은 요인이 덧대어져 나온 평가의 산물인 줄 알았는데 예상 밖 지점이다.
한편 지역이라고 하면, KTX에서 틀어주는 홍보 방송이 주는 인상처럼 ‘우리 고장엔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어요. 이곳으로 놀러 오세요.’라는 이미지를 곧잘 떠올린다. 근데 <로컬 크리에이티브 2024>(5. 17~6. 2)가 열린 문화역서울284를 찾아가 전시장을 관람했을 때, 문득 떠오른 단어는 ‘소거(消去)’였다. 전시를 주도한 어반플레이와 전시기획자는, 로컬 문화의 볼거리를 풍성하고 다양하게 제공했으리란 예상에서 비켜난 전시를 열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흰 가벽이 보이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명하고 값비싼 커피가 아니라 단지 우리 사이에 놓인 ‘검은 물’ 한 잔일 뿐이다”란 문구가 눈길을 끈다. 문구 아래 커피가 든 하얀 커피잔이 놓여 있다. 좀 더 진입하면, 커피 한 잔에 얽힌 개개인의 사연을 볼 수 있는 큰 원형 테이블이 보인다. 테이블 주변으로는 전시에 참여한 커피 관련 로컬 브랜드가 지역 내 커뮤니티를 만들게 된 유래, ‘커뮤니티 의식’을 어떠한 방식으로 실현해 나가는지 집중한 소개문이 보인다. 해당 섹션을 지나면, 성심당 등 ‘빵지순례’에서 빠질 수 없는 브랜드와 그 창설 서사에 강조점을 둔 전시 공간이 나온다. 이를 통해 전시는 지역의 산해진미와 특산품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식의 자리가 아님을 분명히 한 채 빵과 커피, 술 등의 아이템에 한정된 전시물을 배치했다. 그것은 로컬과 동떨어질 수 없는 ‘여행’과도 결부된다.

소멸 대신 소거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찾음’과 ‘찾아감’을 구별해서 보려는 전시의 매력이다. 본 전시는 검색해서 찾아낸 명소 등의 틀로 로컬 문화를 가두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왜 찾아 ‘가는가’라는 이동성의 관점으로 로컬 문화를 조명한다.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가 여행서 『약한 연결』에서 밝혔듯, (관광과 달리) 여행은 인터넷에서 쉽게 뜨는 검색어에 저항하는 실천이다. 기존의 검색어에 포획되지 않는 새로운 검색어를 찾아 나서며, 그런 가운데 이미 잘 짜인 환경 말고 돌발적인 상황과 잡음에 내 육체를 맡기는 시도다. 고로 전시에 참여한 로컬 문화 생산자들은 자신이 위치한 지역에 관해 손쉽게 검색되는 기존 정보들을 하나하나 소거한 뒤, 아직 검색되지 않은 정보와 이야기 및 가치를 찾아 나서는 산책자이자 여행자다. 그러한 맥락 아래 간편히 소비되고 마는 잡다한 정보성으로 로컬리티를 한계 짓지 않으려는 실천은, 각각의 지역성을 내세운 채 전시물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모하는 에디터 등 로컬 이야기 생산자의 주목으로 이어진다. 관련하여 로컬 문화에 내재된 이야기의 힘을 두고 나와 대화 중이던 전시 담당자는, 관객이 예상보다 “체류”하더라는 관찰기를 들려주었다. 스치듯이 흘깃 보며 전시장을 나오지 않고, 객지에 한동안 머물다 가듯 섹션마다 공개된 이야기와 이미지에 일정 시간 자신의 몸을 고정한 사람이 많단 뜻이었다.
소멸과 활기라는 양분화된 구도로 지역에 대한 걱정과 비난, 방안이 난무하는 시대다. 본 전시는 소멸의 반대 항을 (활기 대신) ‘소거’로 잡았을 때 곳곳에 잠재된 로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로컬 문화 생산자와 관객이 함께 모색할 수 있는 자리였다. 아울러 로컬이란 화두 너머 암울한 전망 가득한 한국 사회를 향해 무언가를 자꾸 더해나가려는 시도가 능사만이 아니라고 목소리 내는, 묘하게 도발적인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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