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만추의 미술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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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위틀 <Butterfly on the sun> 자외선 방지 시트지 가변 크기 2022
프리즈와 키아프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아트씬이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여름이 아트페어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미술축제의 계절. 제주 부산 창원 진주 공주 인천 강원 등 남해에서 북부까지 말 그대로 예술제가 전국 방방곡곡을 수놓았다. 한 달을 꼬박 둘러봐도 시간이 부족할 볼거리 중에서 반드시 살펴봐야 할 하이라이트 셋을 꼽았다. 창원조각비엔날레(10. 7~11. 20), 강원작가트리엔날레(9. 29~11. 7) 그리고 인천아시아아트쇼(11. 16~20)를 소개한다.
먼저 제6회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총감독 조관용의 지휘 아래 <채널: 입자가 파동이 되는 순간>이라는 타이틀로 개최됐다. 양자물리학의 유동성을 모티프 삼아, 장르 경계를 실험하며 변화하는 조각론을 내세웠다. 부조와 환조로 조형한 전통조각은 물론, 미디어아트와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작업을 총망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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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백 <NFT 미술관(생각하는 사람)> 스테인리스 스틸 186×188×168cm 2022
탈경계, 공동체 그리고 아시아성
이번 행사에는 총 26개국 작가 90인(팀)이 140여 점의 작품으로 참여했다. 이들 중 반 이상을 해외 작가로 섭외해 국제성을 높이고, 출품작 대부분이 비엔날레 주제에 맞추어 새로 제작돼 기획력을 더했다. 국내에서는 김윤철 노진아 백정기 목진요, 해외에서는 알리시아 크바데(Alicja Kwade), 마르코 바로티(Marco Barotti), 마이클 위틀(Michael Whittle), 벤하드 드라즈(Benhard Draz) 등 국내외에서 동시대조각을 이끄는 아티스트의 신작을 선보였다. 메인 전시장으로는 창원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상징적인 장소가 선정됐다. 성산아트홀 흑백다방 중원로터리 창동예술촌아트센터 3.15해양누리공원 등에서 따뜻한 남쪽 바다를 예술로 물들일 대형 조각전을 펼친다.
창원조각비엔날레는 각각 두 개의 본 전시와 특별전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본 전시 <나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매스 중심의 개별 조형에서 벗어나, 복수의 조각으로 설치, 미디어에 접근하는 조각의 새 동향을 담는다. 각 요소의 유기적 관계를 생명 순환의 관점에서 다뤘다. 두 번째 본 전시 <공간을 가로질러-공명>은 온라인 전시로,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은 조각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한편 특별전 <예술과 문화의 시작-오픈스튜디오>는 창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특별전 <국경 없는 예술사랑방>은 세계 주요 레지던시에 입주한 작가의 대표작을 모았다. 각 작품의 테마로 작품을 분류해, 동시대 담론의 현황을 한눈에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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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반 <압록강에서> 캔버스에 유채 230×540cm 2021
예술제가 단순히 지역의 공간을 빌리는 것을 넘어 어떻게 로컬리티를 담보하고, 지역과 결합할 것인지는 동시대미술 기획에서 중요한 문제다. 올해 처음으로 평창에 론칭한 강원작가트리엔날레는 ‘사공보다 많은 산’을 주제로 예술가는 물론 지역민 모두가 참여하는 미술축제를 제안한다. 164인(팀)이 참가해 강원도의 자연과 일상을 표현한 총 250여 작품을 공개했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작가의 창작 과정, 개막 후 행사 진행까지 평창 주민이 기획팀과 함께 움직이는 지역 주체의 트리엔날레를 꾸렸다.
“예술제가 끝나도 주민의 힘으로 살아 숨 쉬는 공간을 만들겠다.” 올해 트리엔날레의 예술감독 차재는 전시 공간을 선정하면서 주민의 일상과 결합을 강조했다. 화이트 큐브처럼 일상과 분리된 공간이 아닌, 주민의 삶이 녹아 있는 장소에 작품을 설치했다. 주제전 <사공보다 많은 산>은 강원도의 중장년층이 모여 여가를 즐기던 게이트볼장을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황재형 신철균 길종갑 박홍순 등이 강원도 곳곳의 풍경을 작품에 담았다. 주제전 <우리가 모두 이미 산>은 어린이 실내 낚시터에 펼쳐졌다. 이곳은 매년 겨울에 평창송어축제가 열리기로 유명한 장소다. 야외 공간에서는 권용택 정지연 원인종 등이 다양한 입체작품을 공개했다. 또한 특별전 <일상예술전>과 <오일장 프로젝트>는 좀 더 깊숙한 생활 공간으로 들어갔다. 평소 주민들이 애용하던 진부시장과 진부오일장의 한 공간을 전시장으로 꾸몄다. 지역과 주민의 삶이 중심에 놓이는 기획력으로 대중의 삶과 소통하는 예술에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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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복 <일상일기(달빛)> 캔버스에 아크릴 외 혼합재료 26×18cm 2022
전시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청소년 아티스트의 참여다. 트리엔날레는 지난 7월 드로잉 공모전을 실시했고 30인을 선발해 이번 특별전을 채웠다. 월정사 그라피티에서도 청소년 작가가 중심에 섰다. 진부중학교 2학년 학생 100여 명이 대형 벽화를 그리고 작가 제바가 마무리했다. 유명 작가의 출품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 기존 예술제와 차별화한 전략.
강원트리엔날레는 3년 단위로 강원도 곳곳을 순회하는 노매딕 예술축제다. 작가트리엔날레와 키즈트리엔날레, 국제트리엔날레가 매년 돌아가면서 열린다. 내년에는 국제 어린이 미술축제인 제2회 강원키즈트리엔날레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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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중 <원본자연도(原本自然圖)> 판넬, 마대에 석고, 안료, 볏 180×240cm 1991
한편 미술시장 규모가 사상 최초 1조 원을 넘을 거라 예측되고 전문 컬렉터뿐 아니라 직장인, 주부, 대학생에까지 컬렉팅 문화가 확대되는 요즘, 인천아시아아트쇼는 상업성은 물론 예술성까지 잡은 유니크한 아트페어다. 국내외 갤러리 194곳이 참여하는 부스전에 한·중·일 작가의 개인전과 영 아티스트 특별전을 결합했다. 약 1천 명의 작가, 5천 점의 작품이 출전 준비를 마쳤다. 마켓으로는 드물게 ‘아시아성’이라는 주제까지 내세웠다. 한미애 예술총감독은 “한국 중국 일본 아시아 3개국이 어떤 동질성과 이질성을 띠는지 고찰”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서양 미술의 모방을 넘어 아시아 동시대미술의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한다.
부스전에는 뉴욕 사피라&벤투라, 조지아빌스갤러리, 아헨 츠비션, 베이징 수미술관, 하마다시미술관의 참여가 일찍부터 화제를 모았다. 국내 대형 아트페어에서 만나지 못했던 글로벌 유수 갤러리뿐 아니라, 그동안 마켓에 참여하지 않았던 유명 미술관이 한국 미술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개인전에는 김근중 김수자 조덕현 육근병 첸로빙(Chen Ruo Bing) 마슈칭(Ma Shuqing) 구노 도시히로(Kuno Toshihiro) 세노(Seno)가 참여한다. 뮤지엄급 작가의 대표작을 선보이는 전시로 아트페어의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채운다. 마지막으로 영 아티스트 특별전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체코 이라크 네팔 등 10개국 국가에서 22인이 출품한다. 미술계 각 전문가가 자신 있게 선정한 미래의 국가 대표 블루칩 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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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진 <Self Potrait> 캔버스에 유채 91×72cm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