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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규어와장승,우리는친구

강민구,최정화2인전<무이무이또이또이>

202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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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무이또이또이>전전경

강민구, 최정화가 2인전 <무이무이 또이또이>(8. 20~11. 13 미도파)를 열었다. 콘셉트는 ‘진열전 (陳列展)’이다. 각자 취향껏 모아온 잡다한 소장품을 함께 배치해 하나의 전시로 꿰어냈다. <무이무이 또이또이>에선 개별 사물이 작품으로서 가치를 지닌다기보다는, 두 작가가 대화를 나누며 그것들을 착착 쌓아나가는 ‘진열’ 행위가 메인이다. 기획자 이병재, 이윤호는 두 작가의 ‘본업’에서 진열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만남을 주선했다고 한다. 강민구는 사진가이자 을지로의 편집숍 ‘우주만물’ 대표다. 우주만물은 ‘팔기 싫은 걸 판다’는 슬로건 아래 레트로 문구, 스티커, LP, 카세트테이프, 티셔츠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최정화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소비재를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설치작가다. 시장바구니, 돼지 저금통, 빗자루, 풍선 등 값싸고 흔한 오브제를 조합해 기념비적인 조형물로 만들어낸다. 최정화는 플라스틱 병뚜껑부터 오래된 가구, 건축 폐기물까지 작업실에 깡그리 모아 눈 휘둥그레지게 하는 ‘만물상’으로 유명하다. 강민구는 편집숍에서 팔 소품을, 최정화는 예술이라는 새 옷 입힐 작품을 선보여야 하는 ‘진열자’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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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무이또이또이>전전경

사물로 두는 ‘바둑’처럼

두 ‘컬렉터’의 세계가 어떻게 경합하는지 살펴보기 전에, 미도파라는 독특한 전시 공간을 알아야 한다. 미도파는 마포에서 신촌행 버스를 타면 반드시 지나가는 ‘연희104고지 정류장’ 건너편 2층에 자리한 카페다. ‘을지로스러움’을 대표하는 바(bar) ‘신도시’의 운영진 이병재, 이윤호가 2020년 11월 문을 열었다. 평소에 미도파는 술과 커피를 팔지만, 때때로 캐주얼한 팝업 스토어, 디제잉 이벤트 등을 기획한다. 그렇다면 미술관도 갤러리도 아닌 카페에서, 전시는 어떤 형태로 이뤄지고 있을까?

우선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최정화의 <달마와 비너스>(2019)가 관객을 맞는다.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와 선종의 창시자인 달마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좌대에서 원형 춤을 추고 있다. 과거에 최정화는 모든 신이 같이 논다고 했다. 이질적인 문화의 상징물도 이념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나면 그저 눈앞에 놓인 잡화라는 것. 최정화는 위아래도 좌우도 없이 거기서 거기인, ‘또이또이’한 사물의 속성을 바로 보자는 메시지를 진열에 담았다. 여기서 아리송한 주문 같은 전시명의 비밀이 풀린다. ‘무이무이(無異無二)’는 다르지도 않고 둘도 아니라는 뜻. 어디선가 만나 한바탕 잘 놀고 나면, 낯선 배경을 가졌든 이상한 생김새를 하였든 결국 모두 똑같이 우주 속 만물이라는 얘기다. 강민구와 최정화는 진열장을 놀이터 삼아 명품이든 골동이든 사실은 사물일 뿐인, 공명정대한 물질의 본질을 탐구한다.

전시 주제의 ‘스포일러’에 다름없는 <달마와 비너스>를 기준으로 오른편은 전시 공간, 왼편은 카페로 나뉘어 있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이 떡하니 서서 관객을 노려본다. 장승은 본래 마을의 수호신, 지역의 경계표, 큰길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민간 신앙의 대상이지만, 여기선 달마와 비너스의 ‘K-버전’처럼 육중한 물질로서 놓여있다. 이들 옆에는 피규어숍을 연상시키는 거울 장식장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강민구와 최정화의 ‘진열 열전’이 펼쳐지는 링 안이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포켓몬 케시고무(keshigomu), 귀여운 동물 미니어처부터 스카프를 둘러매고 담배를 뻐끔거리는 금연 인형까지, 출처를 알 수 없는 기상천외한 사물로 가득 차있다. 무려 1,000여 개에 달하는 소품들. 없는 게 없는 풍물시장의 축소판처럼 보여도, 자세히 눈길을 주면 묘한 스토리가 연상된다. 큼직한 목각 새 주변에는 유원지에서 팔법한 플라스틱 잉꼬, 물 건너온 듯한 도자기 파랑새 등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다른 구석에는 중소기업 사장의 책상에서 자태를 뽐낼법한 황금 용, 호랑이, 거북이 등이 조를 이루고, 도심을 무자비하게 휘저을 듯한 괴수들은 둥글게 모여 강강술래를 한다. 한편 미도파 카페 공간에는 50여 개의 울트라맨 군단이 키순대로 도열해 무지개 모양을 만든다. 이렇게 두 작가는 기숙사를 배정해 주는 해리포터의 마법 모자가 되어, 본래의 맥락에서 각 소품을 떼어내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도록 조력한다.

강민구와 최정화는 약 2주 동안 진열장을 오가며 자신들이 모은 가지각색의 사물을 배치했다고. 한 사람이 특정 캐릭터 피규어를 가져오면 다른 사람이 그에 잘 어울리는 또 다른 소품을 챙겨 오는 식이었다. 강민구는 이 과정을 ‘바둑’에 비유했다. “함께 진열할 때 바둑 두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정화 작가가 새를 두면, 나는 그 옆에 괴수를 두고, 최정화 작가의 투명 손 모형 위에 나의 투명 슬라임을 얹었다. 물건의 형태나 색, 성질에 따라 두다 보니 진열장이 점점 채워져 갔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쟤 옆에 얘를 왜 두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악보 없이 수십 분간 상대방의 장단에 화답하는 즉흥 재즈처럼 혹은 여러 명의 서화가가 한 화면에 다른 소재를 그리는 휘호 합작처럼, 강민구와 최정화는 소장품으로 물질들의 하모니를 이끌어내고 있다. 진열전의 바통은 박다함, 용녀Dydsu가 꾸린 프로젝트 ‘주고 받기 놀이’가 이어받는다. 이들은 이번 전시에서 받은 인상으로 믹스테이프를 제작 발매했다. 물질에서 비물질로 ‘만남’이 확장되는 순간이다. 네 사람은 “너 없는 나도, 나 없는 너도 없다”라는 최정화의 말마따나, 100년이 채 안 되는 잠깐 동안 얽히고설켰다가 헤어지고야 마는 ‘행복한 우주 먼지’의 법칙을 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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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무이또이또이>전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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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무이또이또이>전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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