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목 위의 베니스
“지금의 동시대성을 이해하기 위해 그 형성 맥락의 촉발 지대를 알아내는 것”을 기획 의도로 삼은 전시 <백 투 더 퓨처>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렸다. 전시는 과거와 전혀 달라서 이전 논리로는 해석되지 않았던 다양한 1990년대 작품을 선보였다. 그중 매우 허름한 설치작이 가장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전시장 한가운데에 자리해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바로 박이소의 <베니스비엔날레>(2003)이다. 박이소는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가해 <베니스비엔날레>를 출품했다. 한국관 야외 앞마당에 설치된 작품은 물이 담긴 네 개의 싸구려 플라스틱 대야 위에 엉성한 사각 각목을 설치한 구조물이다. 이 작품이 야외에 덩그러니 놓였다고 상상해 보라. 당시는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대규모 설치작업이 동시대미술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기에, 이를 비엔날레 출품작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박이소 <베니스비엔날레> 각목 대야 물 타일 자갈 콘크리트 290×230×161cm 2003
박이소, 국가관의 허를 찌르다
이것이 박이소의 의도였다. 그는 작가 노트 초반에 “1. 단순할 것 2. 덜 그리고, 못 그릴 것”이란 메모를 남겼다. 자기 강령과도 같은 짤막한 글에 드러난 반미학적 태도는 귀국 후 작가 노트에도 반복되는데, 이를 통해 그가 형식적 완성도를 거부할 것을 지속적으로 상기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작품 제작은 세심한 계획으로 이루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에는 작가가 고심해서 작품을 구상한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작품의 위치를 계획한 6점의 건축 도면이다. 기록을 보면 작가는 한국관 주변에 있는 일본관과 독일관, 심지어 나무의 높이와 위치까지 고려해 작품이 설치될 곳을 결정했다. 그만큼 작품의 위치가 중요했다는 뜻이다. 당시 이 작품은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해 무심히 지나다 ‘문득’ 작품임을 지각하게끔 설치되었다. 작품처럼 보이지 않으니 대부분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관심을 두고 가까이 다가선 이들은 무언가를 발견했을 것이다. 바로 각목 위에 늘어선 약 2cm 크기의 작은 모형들이다. 모형은 일반인의 키를 기준으로 매우 교묘하게 보일 듯 말 듯한 높이에 설치되었다. 미술관에서는 모형의 존재를 알아채고 작품 앞에 바짝 다가선 관람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작품임을 인지한 순간 반전을 이루면서 몰입하게 하는 장치로, 이 모든 과정은 계산된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이 말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박이소는 전시 리플릿에 “대야 안의 물이 베니스 운하며, 작품은 베니스의 축소판이다”라는 모호한 설명을 남겼다. 대야 위 각목이 베니스인 셈이다. 그렇다면 작품 제목인 ‘베니스비엔날레’는 바로 틀 위에 놓인 모형이다. 작가가 남긴 메모에 따르면 긴 사선 지지목 위에는 자르디니공원에 있던 26개의 국가관, 짧은 지지목 위에는 3개의 아르세날레 본전시관 모형이 놓였다. 이들은 조악하지만, 실제 건물의 외형을 갖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주 작은’ 그리고 ‘같은’ 크기라는 사실이다. 그간 베니스비엔날레는 서구 국가관을 중심으로 국가를 서열화하고, 민족주의와 문화적 패권주의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박이소는 국가관들을 작고 같은 크기로, 그리고 볼품없이 만들어버렸다. 이로써 국가관의 권위는 무력화되고 위계는 해체되었다. 엉성하기 그지없는 <베니스비엔날레>는 실로 신랄하고 날카로운 제도 비판 작업이었다. 작품은 무심한 듯 미묘한 지점에서 응축된 날카로움을 드러내며 비판점을 시사한다.
박이소가 펼친 논의가 현재에는 어떠한가. 여전히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미국과 유럽 국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2022년 베니스비엔날레는 세계적인 미술잡지 『더아트뉴스페이퍼』가 선정한 ‘꼭 봐야 할 국가관 전시’ 7개에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이 포함되어 여전한 서구 국가관 중심 현상을 보여줬다. 이처럼 <베니스비엔날레>는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 이것이 서로 다른 시공간이 중첩하는 <백 투 더 퓨처>전의 가장 중심에 <베니스비엔날레>가 선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