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과 살아가기
양은경 개인전 <사라지는 몸, 만져지는 말>(10. 1~8 인천아트플랫폼)은 조현병 당사자의 병리적 경험을 다루는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선보인 전시다. 조현병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므로, 그 고유하고 독특한 각자의 경험은 단일한 서사로 모일 수 없다. 전시는 다채널 미디어로 질병 당사자의 각기 다른 경험을 병렬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관객 앞에 호명한다.
정신 질환은 사회적 편견의 대상이 되기 쉽다. 조현병은 공포와 혐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표적으로 조현병 환자가 범죄 사건의 피의자인 경우를 들 수 있다. 피의자의 병력이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대중은 여과 없이 적대감을 드러낸다. 재생산되는 낙인은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숨기고 치료를 거부하게 만들어, 종국에는 증상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양은경의 영상은 조현병이라는 이름에 내포된 낙인의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환자의 개별 경험을 존중하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 작가가 조현병 당사자 8인과 진행한 인터뷰는 그들이 겪는 신체적·정서적 어려움, 그리고 병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는 병에 대한 전형적인 관념과 이미지에 반기를 든다.
모두가 동등한 ‘몸과 말’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이 처음 마주하는 장면은 모니터 뒷면이다. 관람자가 처음부터 화면을 마주할 수 없도록 설계됐다. 또, 관객은 극장의 어두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동공을 확장해야 한다. 어둠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극장 깊숙한 데 있는 화면을 향해 20여 초 남짓 걸어야 한다. 도착한 곳에 놓인 다섯 대의 모니터에는 인터뷰이의 몸이 송출된다. 뒤로는 그들의 말이 자막으로 제공된다. 언뜻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 구성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험난한 일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을 내디뎌야만, 끊임없이 뒤돌아보며 현실을 되새겨야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세계에 한 발짝이나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인터뷰이가 처한 상황마다 그를 모니터에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자신의 상태를 수용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이의 초상은 온전히 드러난다. 정좌불능¹⁾을 겪는 사람은 손이나 발처럼 신원을 특정할 수 없는 신체 일부만 보여준다. 작업에 참여하는 게 오히려 더 큰 낙인을 부를까 봐 두려워하는 이는 음성과 자막으로만 등장한다. 조현병이 사람마다 다르게 발현되며, 그에 따라 신체와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신 질환을 예술작업으로 풀어내는 과정에는 반드시 윤리적 문제가 뒤따른다. 질병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칫 환자를 ‘비정상’ 존재로 대상화하거나,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결이나 명확한 결말을 지양하는 연출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인위적으로 연결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질병에 대한 단일한 해석과, 그로 인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는 정리되지 않은 ‘말 묶음’에 가깝다. 양은경은 단선적이고 일방향의 경로를 만들어내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여러 서사를 동시에 겹쳐내거나 의도적으로 공백을 만들어 인간 삶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의 담론장은 ‘모두가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이상에 바탕을 두지만, 현실에는 자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이들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듣는 이의 존재는 말하는 이의 자리를 만든다. 양은경의 작업은 조현병 환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그들이 사회적 주체로서 발언할 기회를 마련한다. 결국 <사라지는 몸, 만져지는 말>전이 지향하는 바는 다른 누구도 아닌 ‘질병 당사자’가 자신의 언어로 병의 경험을 동료 당사자 및 비당사자와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다양한 몸과 말 사이에 선 관객은 질병에 대한 인식 개선이라는 장밋빛 결말이 아니라 삶과 현실, 제도를 향한 의문과 마주한다.
1) 향정신성 의약품의 부작용. 정서적 불안과 긴장, 배회, 몸을 움직이거나 떠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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