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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여인’의별자리

아트인컬처평론프로젝트‘피칭’제6회선정자최보영

2024/07/04

파리 부르스드커머스 피노컬렉션에서 9월 2일까지 진행되는 <흐르는 대로의 세상(Le Monde Comme Il Va)>은 굵직한 소장품들을 활용하여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개괄한다. 작가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전시 카르트 블랑쉬(Carte Blanche)에 초대된 김수자는 <바늘 여인>, <보따리>, <연역적 오브제>, <실의 궤적> 시리즈까지 자신의 주요 작업을 아우른 후, 피노컬렉션 중앙에 위치한 로툰다(Rotunda)에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퐁피두센터 메츠, 리움미술관 등에서 선보여 온 <호흡> 시리즈의 신작을 제작했다.
<호흡—별자리(To Breathe—Constellation)>(2024)는 로툰다 바닥에 400여 개의 거울을 설치해 돔 천장을 비추고, 그 위에서 관객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시간을 보내도록 한 장소특정적 설치작업이자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원형 건물의 특성상 관객은 전시의 초입과 끝에서 작품을 바로 마주하게 되는데, 바닥을 뒤덮은 거울에 반사된 19세기 프레스코 벽화와 하늘을 담은 유리 천장, 그 위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장면은 시각적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작품 속에 들어선 관객은 거울 위에 비친 자신을 마주한 후, 벽에 기대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서 사진을 찍고, 팔다리를 뻗고 누워있는 사람들의 일부가 되어 자신이 자리할 곳을 찾게 된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힐끔거리며 어떤 자세를 취할지 결정하기도 한다. 그렇게 관객은 자신을 보고, 타인을 듣고, 공간을 느끼며 바닥과 천장 사이에 머무는데, 이러한 일련의 경험은 자신이 위치한 환경을 인식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자아와 타자, 내부와 외부를 감각하는 일이다.
<호흡—별자리>가 선사하는 이 존재적 경험은 <흐르는 대로의 세상>의 중심을 잡는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피터 도이그, 데미안 허스트 등 연속되는 유명 작가들과 10개의 섹션까지, 세상의 혼란과 미덕을 아우르는 이 전시는 분명 볼만하지만 조금은 갑작스럽고 광범위하다는 인상이다. 벌어지는 사건들에 휩쓸리는 실제 세상 속 우리처럼, 전시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 지치게 된다. 이때 <호흡—별자리>는 전시장 중앙에서 거울에 우리와 세상을 비춰주며 이 전시의 질문이 세상의 사건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있음을 일깨운다.

파리에서 만난 김수자

한편 전시의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김수자의 다른 작업들과 다르게 <호흡> 시리즈는 빛과 소리 같은 비물질적 요소가 주를 이루는데, 이러한 형식의 변화는 언뜻 갑작스러운 보편적, 추상적 전개로 보여 이질감을 준다. 그러나 주제적인 측면에서 이방인의 정체성을 인식한 <바늘 여인> 시리즈, 다른 것들을 감싸 안는 행위로 나아간 <보따리> 시리즈, 안팎을 연결하는 호흡의 경험을 타자에게 확대하는 <호흡> 시리즈의 연결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나와 타자, 모국과 타국, 보따리의 안팎, 들숨과 날숨, 빛과 어둠. 김수자는 스스로 바늘이 되어 수많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꿰매고자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경계의 연결은 다름의 인식, 경계의 구분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 김수자는 이러한 경계의 속성을 직시하고 있기에 경계를 허물거나 그 너머로 한없이 뻗어나가려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성찰적이고 수행적인 태도로 안팎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이 세상을 사는 하나의 개인으로서 바느질, 감싸기, 숨쉬기와 같은 행위를 통해 경계 사이를 끝없이 오갈 뿐이다.
작가는 빛을 활용해 장소의 특성을 살렸던 초기 <호흡> 작업들과 다르게 <호흡—별자리>에서는 관객의 참여를 더 중심에 두는데, 이를 통해 관객은 세상 속 개인이라는 작가와 동등한 입장에서 경계를 오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업 활동이 일련의 종교적 수행처럼 보이기도 하는 김수자의 구도자적 삶의 태도가 관객에게 확장된 것이다. 관객은 김수자의 인도 아래 천장과 바닥이 뒤섞인 공간에서 호흡하며 나와 타인,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계속해서 넘나든다. 작가와 같지는 않지만, 더 낫지도 못하지도 않은 그저 흐르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바늘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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