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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는‘몸’

아트인컬처평론프로젝트‘피칭’제8회선정자최윤서

2024/09/06

타고 나기를 온전히 나의 것이자, 오로지 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몸’이라는 껍데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상품이다. 때로는 이미지로 쪼개어져 소비되고, 주체성이 지워지는 방식으로 물신화된다. 땅 위의 모든 물질뿐만 아니라, 형체가 없는 생각과 행위조차 교환가치가 매겨지는 자본주의(후기 자본주의부터 신자유주의에 이르는) 메커니즘에서 몸 역시 하나의 재화로 전락한다.

‘몸으로서의 몸’이 지워지는 흐름에서, 예술이라는 무기를 지닌 이들이 다시금 몸을 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자 결과이다. 분명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어도, 또 비록 체제를 엎을 힘은 허락되지 않더라도 예술은 그것이 발산하는 현현한 주파수로 세상과 공명하는 힘을 가진다. ‘몸’을 ‘정신’의 하위 주체로 파악한 데카르트적 사고를 전환한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문장을 빌리자면, “몸(corps)은 도구나 수단 그 이상으로, 그것은 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표현이자 우리 의지의 시각적 형태”이기 때문이다.¹⁾

이불의 마네킹, 최찬숙의 코퍼맨

한국의 미술가 이불과 최찬숙은 첨예한 시각이 담긴 예술작품으로 동시대 현실과 맞닿은 문제,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발언해 왔다. 이불은 당대 한국 사회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낙태>(1989), <사이보그>(1997~2011) 연작 등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신체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신체 이미지를 변형한 작업을 이어왔다. 최찬숙은 <양지리 아카이브>(2016), <FOR GOTTEN>(2010~17) 연작 등에서 물리적, 정신적 이주와 이동의 문제로 밀려난 몸을 다루었다. 때때로 몸을 매체이자 주제, 또는 이미지로 활용하는 이들 작업은 일견 달라 보이는 두 미술가를 묶어서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불의 <크러쉬>(2000)는 여성의 몸 형태로 구성된 크리스털 구슬과 유리구슬이 알알이 빛을 반사하면서 눈부시게 빛나는 작품이다. 백화점 쇼윈도 속 마네킹의 유려하고도 과장된 굴곡, 극치에 다다르는 장식적인 아름다움은 곧 신자유주의 사회가 내세우는 이상적인 몸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빛의 편린으로 공간을 채우며 반짝거리는 작품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신체에 팔다리가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때 찰나에 내린 미적 판단은 잠시 유보된다. 신자유주의 벨트 컨베이어 위에서 결정되는 아름다움의 정석이란 오로지 ‘정상적인 몸’이며, 이에 부합하지 못하는 재화는 곧 하자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불은 일차적으로는 장식적 측면을 내세워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를 따르는 듯하면서도, 몸의 완결성을 기준과 어긋나게 보여주며 그와 충돌하고 있다.

최찬숙의 비디오설치 <큐빗 투 아담>(2021)은 세계에서 가장 큰 노천 구리 광산에서 발견된 미라 ‘코퍼맨(Copper Man)’에서 출발한다. 6세기 중반 칠레의 사막 한복판에 한 남성 시신이 묻혔고, 이후 천 년이 넘도록 구리 광맥 위에서 서서히 구리가 스며들어 변성된 몸은 곧 소유권 분쟁의 대상이 되었다. 영상 초입에서 하나의 광물을 관찰하듯 찬찬히 돌아가는 코퍼맨의 몸은 이내 확대되고, 그 확대된 몸에는 여러 색의 광물 입자가 박혀있어 마치 몸이 아닌 땅의 표면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여기에서 최찬숙은 코퍼맨이라는 물질로서의 몸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땅과 몸의 경계를 흐리며, 생득적으로 주어진 몸과 땅마저 소유와 거래의 대상으로 치환되는 구조를 노출한다. 이어 자본주의의 허락 아래 개인이 땅을 소유하고 노동자의 육신을 착취하는 치밀한 욕망과, 디지털 공간에서 실제 몸의 감각과 기억마저 재화로 변하고 마는 물신적 현상을 ‘내러티브의 병치’라는 직접적 방식으로 발화한다.

심화하는 불균형 속에서 이불과 최찬숙은 예술의 오랜 역할을 재연한다. 이들 작품에서 발견되는 몸은 우리가 딛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견고한 틀로 생산된 그럴듯한 이치를 비껴가고, 이를 비평하기 위한 몸체(corps)로서 작동하고 있다. 필연적인 착취를 통해 실존을 박탈하는 그물망 아래, 자기-존재의 자유를 붙들기에는 여전히 취약한 몸이지만 기꺼이 이탈하려는 의지로, 무한궤도를 따라 돌지 않는 몸짓으로.

1) Maurice Merleau-Ponty, “An Unpublished Text: Prospectus of his work”, The Primacy of Perception, ed. James Edie, Arleen B. Dallery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64); 트레이시 워, (심철웅 역), 『예술가의 몸』(미메시스, 2007), p.233.

최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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