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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체리장’의블랙코미디

두산갤러리×TSA뉴욕,류성실해외개인전

2024/12/04

화려하게 분장하고 화면 너머 이들에게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BJ 체리 장’은 류성실의 페르소나이다. 영상 속 북한 핵 발사 경고 문구와 원색의 시각 자료는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중간중간 삽입된 그의 이력과 후원 계좌번호는 요란한 편집으로 경박함을 극대화한다. 핵미사일 대피 시간이 5분도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영상에서 긴박함 대신 우스꽝스러움을 읽어낼 수 있는데, 이는 작업 기저에 한국 사회의 서구 이상주의와 과장된 남북 관계 풍자라는 해학성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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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실개인전<ReturntoRoots:ARetrospectiveinMemoryofCherryJang(1984-2019)>전경2024TSA뉴욕_이번전시의콘셉트는‘BJ체리장’사망5주기를추모하는회고전이다.

‘회고전’, 문화 번역으로 재탄생하다

지난 10월, TSA 뉴욕이 두산갤러리와 공동 기획한 류성실 개인전 <Return to Roots: A Retrospective in Memory of Cherry Jang(1984-2019)>(10. 5~11. 3 TSA 뉴욕)이 열렸다. 전시는 감상 경험과 문화적 맥락에 관한 관람자의 이해 사이에서 흥미로운 관계성을 제시했다. 1인 미디어 플랫폼, 사대주의, 남북 관계 등 한국의 사회 문화적 특수성을 기반으로 한 작가의 해학은, 이에 관한 배경지식이 보장되지 않은 미국 관객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까? 5년 전 요절한 체리 장을 추모하는 콘셉트의 이번 회고전은 류성실의 미국 첫 개인전이다. 전시실 중앙에 설치된 갈색 ‘모뉴먼트’에는 체리 장의 2018년 데뷔부터 장례를 보여주는 총 3점의 영상이 텍스트와 함께 배치되었다. 모뉴먼트 상단, 분홍 잎사귀를 가진 커다란 꽃의 뿌리는 여러 갈래로 퍼져 가계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조상의 모습이 자리해야 할 부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진갈색 액체가 알알이 자리했다.

체리 장의 업적을 기록한 영문 텍스트와 자막은 이번 전시의 번역에서 특히 작가가 공들인 부분이다. ‘뿌리 찾기’와 ‘가족주의’라는 개념이 더해진 세계관은 ‘흙으로 돌아가고자(return to the dirt)’하는 체리 장의 열망과 그의 무덤에서 피어난 의문의 꽃에 관한 설명으로 전달된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소박한 바람은 ‘자연의 순환’, ‘부활’, ‘연대’와 연결되며, 설치작업은 표면적이었던 생전 삶과는 대비되는 깊이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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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실개인전<ReturntoRoots:ARetrospectiveinMemoryofCherryJang(1984-2019)>전경(부분)2024TSA뉴욕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예기치 못한 해학이 등장한다. 오랜 시간 서구 사회는 일부 동양의 전통적 가치를 속세와는 유리된 불변하고 순수한 개념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백색 전통 의복을 입은 조상이 “In my next life, I want to grow up to visit America”라며 비행기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나, ‘일등 시민권자’의 면모를 자랑하는 설정은 한국의 동양적 가치가 세속적 욕망과 신자유주의적 질서와 밀접하게 얽혀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작업의 문화적 특수성을 전달하기 위해 시도된 언어적·조형적 번역이 새로운 문화적 배경을 지닌 관객을 만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새로운 블랙 코미디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 번역을 통해 관람자는 의외의 방식으로 드러나는 해학을 경험한다. 따라서 류성실의 미국 데뷔전은 문화적 맥락을 초월해 작업과 관객 간 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체리 장의 사후 세계에 무한한 확장성을 열어준 전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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