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워서 오히려 좋아: W/O F.의 〈나의 힘은 쓰레기통이다〉
아트인컬처 온라인의 ‘서퍼(SURFER)’ 꼭지는 미술계 곳곳에서 출몰하는 url 링크들을 연결하며 서핑합니다. 그 첫 번째 파도는 ‘Without Frame!’ 줄여서 ‘W/O F.’(팀 ‘우프’라고 음차하여 부르더군요!)의 새로운 프로젝트 〈나의 힘은 쓰레기통이다〉의 웹사이트입니다.
링크를 누르면 경고문인지 약관인지 알 수 없는 창이 먼저 뜰 것입니다. “나는 더러운 욕망을 가진 몸입니다. 그것을 포기하지 않은 채 저항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용 약관에는 요즘은 보기 힘든 매니페스토 같은 말들이 이어지죠. 각 문단 아래에는 (동의가 아니라) ‘동참’이라는 글자 앞에 체크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은 제대로 읽어보지 않는 여타 사이트의 회원 가입 약관 같이 생겼지만, 그 내용이 뭔가 이상합니다.
특히 “동시대 예술계 안에서 강조되어 왔던 페미니즘의 연대, 임파워링, 바디 포지티브 등으로 대표되는 ‘긍정성’ 안에서 배제되고 있는 여성, 퀴어의 섹슈얼리티를 감각하여 발화를 시도한다.”라는 언명은 한국 동시대 미술계의 페미니즘 담론 안에서 분명하게 어떤 역학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가 아닌 페미니즘, 하나의 정체성으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기에 오히려 연결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존재들을 생각합니다.
순수하지 않은 더러운 것들과 연대를 말하는 선언적인 내용들은, 스크롤을 내릴수록 점점 더 사적인 목소리로 바뀌어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획에 도움을 준 논문과 책들이나 이 프로젝트를 함께 만든 사람들의 크레딧을 정성스럽게 나열해 두기도 하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동참’을 눌러 뜻에 함께해야 입장이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들어간 사이트 안쪽에는 쥐와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구석에 쓰레기통이 놓여있습니다. 표백된 세계에서 밀려나는 사회적 약자들과 ‘더러움’을 연결해 나가며 그들은 욕망과 비체와 퀴어와 불결을 긍정합니다. 왼쪽의 탭을 누르면 이번 주제로 함께 작업한 예술가들의 작업물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성급하게 몇 개를 눌러보니 성재윤의 〈The Guy Days〉에서는 퀴어의 섹슈얼리티를 성찰적으로 돌아보는 사진들을 한장 한장 넘겨 가며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고, 곽예인의 〈Welcome to Mariworld〉에는 여러 사진들이 한 번에 펼쳐집니다. 하나의 웹사이트 안에서도 하나의 편집 모듈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각 작가들의 선택에 맞게 다른 방식으로 펼쳐지는 이미지를 통해 세심히 편집한 도록을 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것부터 얼마나 공을 들여 만들어진 웹사이트인지 알 수 있죠. 아까 ‘동참’을 눌렀던 약관의 마지막 부분에서 크레딧을 보고 들어왔기에 까다로운 웹사이트 작업을 y!(와이팩토리얼)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이런 세심함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작업들은 사진 이미지뿐만 아니라, 김달의 만화 〈첫사랑 레즈비언〉이나, 오묘한 해방감이 느껴지는 성병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여름의 글과 같이 다양한 매체와 형식이 어우러집니다. 창작자들도 너무나 다양하죠. 성별, 직업, 분야 그 무엇도 특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존재들이 만들어낸 더럽지만 아름다운 것들이 쏟아지는 쓰레기통이 여기에 있습니다.
온라인 지면이라 글이 길어지면 지루할까 걱정이 되어 하나하나 모두 설명할 수 없지만, 17명의 아름답고 더럽고 속 시원한, 때로는 어딘가 뜨거워지는 작업들을 링크에 직접 들어가 모두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슬픈 구멍”에 이어 “나의 힘은 쓰레기통이다”까지.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퀴어 페미니즘의 네트워크를 이질적이면서도 확장적으로 조직하고 있는 ‘W/O F.’의 행보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섹슈얼리티나 퀴어의 문제뿐만 아니라,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록 촬영하는 〈불의에 저항하여 촬영하는 자〉라는 실천을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그 실천에서도 전문 사진가뿐만 아니라, “셀카를 즐겨 찍으시는 분”도 상관 없다고 말하는 그들의 개방성이 또 다시 눈에 띕니다. 그들이 제안하는 연대할 수 있는 조건은 “장애인도 시민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권리”에 동의할 수 있는가 정도입니다. 같은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내는 것과 전혀 다른, 다르기에 밀려난 사람들의 연결이 여기에서 또 만들어집니다.
‘W/O F.’의 인스타그램 링크에 들어가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발행한 출판물 지면에 발생한 사소한 편집 오류들을 하나하나 솔직하게 모두 내보이고, 세심히 교정하면서 필자와 독자들에게 사과를 건네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함께 탈 수 있는 또 다른 파도들’의 링크를 통해 그들이 만들어내는 연결들 위에서 파도를 타보시길 추천합니다.
‘W/O F.’의 실천을 통해 연대를 안으로 수렴시키는 폐쇄적인 페미니즘 조직, 그러니까 기존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네트워크 구축이 아니라, 힘의 구조 자체를 비틀어 버리는 운동을 떠올립니다. 다르기에 오히려 함께할 수 있는 존재들에게 계속해서 손을 뻗어가는 그들의 힘찬 발걸음에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네요. 제 서핑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여기 놓인 링크에서 시작하여 이리저리 각자만의 서핑을 즐겨보시길.
함께 탈 수 있는 또 다른 파도들
‘Without Frame!’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withoutframe_
“욕망을 가진 쓰레기들의 매거진 Without Frame!” 텀블벅 프로젝트 페이지
https://link.tumblbug.com/I3GxIVIuLwb
사이버 페미니즘 인덱스
https://cyberfeminismindex.com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후원 웹페이지
https://sadd.or.kr/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