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계의 두 별이 지다
한국 사진계의 두 거장이 소천했다. 10월 15일, 한국 1세대 사진가 육명심(1932년생)이 별세했다. 향년 93세. 고인은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사진은 신혼 여행에 아내가 가져온 카메라로 조작법을 배워 시작했다. 1968년 동아일보사와 사진동우회가 공동 주최한 제3회 동아국제사진살롱전 은상, 1974년 제12회 동아사진콘테스트 특선을 차지하면서 사진계에 이름을 알렸다. 초기 <인상> 연작은 한가운데를 비우거나 주변을 자르는 과감한 화면 구성이 특징이다. 리얼리즘 사진과 살롱 사진으로 나뉜 사진계 상황을 타개하려 일상 풍경을 낯설게 만들었다. 1970년대는 <예술가의 초상> 연작에 몰두했다. 대학 스승이던 시인 박두진의 초상 사진 촬영을 계기로 문인, 미술인, 국악인, 영화인, 연극인 등 77인의 포트레이트를 남겼다. 완성까지 10여 년이 걸렸다.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과 사유를 사진에 녹였다.
1980~2000년대에는 <백민(白民)> 연작, <장승> 연작, <검은 모살뜸> 연작 등을 발표했다. 시골과 거리에서 만난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 그들이 지키는 전통과 민속 등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후 1999년까지 서울예술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고인은 기록 사진계에 남긴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3년 전 리움미술관과의 인터뷰에서 육명심은 자신의 예술세계를 ‘받아들임’으로 요약했다. “‘받아들임’에는 사랑이 있다. 우리는 받아들이기보다 거부와 선택에 묶여있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서로 가슴을 열고 소통해야 한다. 인간뿐 아니라 소와 강아지, 식물과도 나는 소통한다.” 육명심 사진에는 생명의 체취가 묻어있다.
한 주 이른 10월 6일에는 한국 페미니즘 사진의 대모 박영숙(1941년생)이 작고했다. 향년 85세. 숙명여자대 사학과 재학 시절 ‘현대사진연구회’ 멤버로 활동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1962년 교내 사진 동아리 ‘숙미회’ 창립을 주도했다. 1988년에는 여성주의 문화 단체 ‘또하나의문화’에서 윤석남, 정정엽, 김진숙 등 페미니스트 미술인과 <우리 봇물을 트자: 여성 해방시와 그림의 만남>전을 개최했다. 여성주의 의식을 매개로 문단과 화단의 소통을 이뤄냈다. 여성 억압적 현실 고발, 여성 의식과 자아의 발견, 체험적 모성과 자매애 회복 등을 주제로 내세웠다. 이후 박영숙은 일평생 여성주의 사진에 투신했다. 1999~2005년 10편의 <미친년 프로젝트>는 한국 페미니즘 미술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미칠 수밖에 없는 여성, 미쳐야만 자유로울 수 있는 여성 등을 연출, 촬영했다. 순종적 아내, 현명한 어머니 등으로 고착화된 한국의 젠더 이미지를 타파했다. 그 독보적 활동은 고정희상, 이중섭미술상, 양성평등문화상 등으로 인정받았다.
2006년에는 삼청동에 사진 전문 화랑인 ‘트렁크갤러리’를 직접 열었다. 당시 작가는 “사진이 회화에 비해 예술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 후배들에게 전시 공간을 제공한다는 생각으로 갤러리를 열었다”라고 밝혔다. 10년간 신진 작가를 발굴, 지원하기 위한 물적 토대 마련에 힘을 보탰다. 갤러리 일로 작업을 일시 중단했던 그가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한번 카메라를 집었다. 작가는 초기부터 탐구해 오던 ‘마녀성’을 제주도 곶자왈 풍경에서 찾았다. 2020년 <그림자의 눈물> 연작을 발표하는 등 작품 활동에 열성을 보였다. 신비롭지만 버림받은 땅, 기괴하게 엉킨 야생에서 여성적 에너지를 포착했다. 뮤지엄헤드에서 열린 <미드나잇 미드나잇>(9. 25~11. 15)전은 생전 마지막으로 참여한 기획전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