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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디자인,장벽을없애라

아트인컬처평론프로젝트‘피칭’제2회선정자유미주

2024/03/07

비평은 감상 이후에 오고, 감상은 완성된 결과물에서 비롯된다. 전시가 안정적인 감상 환경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면 이를 완성된 전시라 부를 수 없고, 이러한 전시는 감상과 비평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본고는 이 같은 전제가 무너져 비평이 불가능해진 상황 자체를 바라본다. 근래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더 많은’ 관객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 ‘더 많은’의 대상은 관람객의 수와 유형을 포괄한다. 미술관에 오지 못한/않은 이들을 전시장으로 부르기 위해 많은 열량이 투입된다. 투입된 열량과 별개로, 유니버설 디자인과 배리어 프리를 위한 노력이 실제로 유효한지 검토하는 것은 중요하다. 제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구현되지 못한 아이디어는 구색뿐인 제스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올해의 작가상>(2023)은 관람의 장벽을 높이며 관객을 막는, 제스처만을 취한 전시로 보인다. ‘더 많은’ 관객을 위한 공간이 없다. 이때 전시 관람자와 사용자(user)를 동일시할 수 있냐고 반문 가능하겠으나, 디자인 분야 전반에 UX(user experience)라는 표현이 통용됨에 따라, 디자인 비평의 관점에서 사용자를 관람자로 대치해 문제 상황을 진단하려 한다.

<올해의 작가상> 전경 202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_갈라 포라스-김 인터뷰 영상.

<올해의작가상>전경2023국립현대미술관서울_갈라포라스-김인터뷰영상.

올해의 작가상, ‘더 많은’ 관객을 위하여

<올해의 작가상>에서 처음 지적해야 할 곳은 전시장 앞쪽 복도의 벽이다. 문제는 왼쪽 벽의 거대하고 난해한 영문 레터링에서 시작한다. 우선 레터링이 영문만으로 구성된 게 의아하다. 한국에서 한국어 간판과 메뉴를 표기하지 않는 가게들이 비판받는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독성 낮은 폰트의 영문 글자만으로 벽을 장식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공간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해 앞에 설치된 영상들로 이어진다. 이 레터링 앞에, 후보 작가들 인터뷰 영상을 반투명한 셀에 개별 설치했다. 영상 속 인터뷰이가 어떤 작가인지 명확하게 드러내는 정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거의’라는 표현은 인터뷰 전체를 보지 못했음에 기인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다른 관객도 이 영상들을 다 보진 않을 것이다. 영상에서 제시되는 정보로 인터뷰이와 작가를 매칭할 수는 있겠으나, 이는 불확실한 추정에 그친다. 이런 연출은 암묵적으로 관객이 후보 작가의 얼굴을 모두 알 거라고 판단한 결과였다. 전시가 관람에 필요한 ‘교양’의 배리어를 극단적으로 높였음을 지적하는 바이다.

<올해의 작가상> 전경 202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_전소정 전경.

<올해의작가상>전경2023국립현대미술관서울_전소정전경.

<올해의 작가상> 전경 202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_이강승 전경.

<올해의작가상>전경2023국립현대미술관서울_이강승전경.

이 ‘교양’의 지점에서, 상기한 레터링이 등장한다. 사실 이 레터링은 바로 앞에 설치된 셀에 상영 중인 인터뷰이 이름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는 공간디자인의 실패다. 정보가 영문임을 차치하고서도, 모니터가 설치된 각도 때문에 레터링의 존재 자체도 인식하기 어렵다. 레터링된 벽을 끼고 복도로 들어오면 정작 레터링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인터뷰는 관객에게 주인 모를 영상으로 남을 수 있다. 특히 갈라 포라스-김과 전소정의 인터뷰는 관람자가 레터링을 등지고 보도록 설치되어서, 글자가 아예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한 다소 두꺼운 재질의 반투명 커튼으로 영상과 복도를 나누어, 레터링을 인식한 관객도 이 글씨와 인터뷰이를 연결하기는 인지적으로 쉽지 않다.

<올해의 작가상>(2023) 후원 작가 4인. 왼쪽부터 전소정, 이강승, 갈라 포라스-김, 권병준

<올해의작가상>(2023)후원작가4인.왼쪽부터전소정,이강승,갈라포라스-김,권병준

경험의 문제는 전시 공간으로 이어진다. 갈라 포라스-김의 전시에서 작품의 일부인 이메일은 너무 작은 글씨로 인쇄되었다. 아주 바짝 다가가야 겨우 읽을 정도지만, 그마저도 관람객이 많을 땐 쉽지 않다. 메일이 작품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였다. 전소정의 전시 공간도 비슷하다. 어두운 공간에서 작품들은 강한 조명을 받고, 캡션은 유광 필름에 인쇄해 구석에 부착했다. 이때 여러 각도에서 캡션을 봐도 유광 필름이 빛을 강하게 반사해 글씨를 읽기 힘들다. 이 문제는 근접해서 봐도 해결되지 않기에, 애초에 조도 혹은 필름의 소재를 재고했어야 했다. <올해의 작가상>의 사용자 경험은 관람자에게 충분한 감상을 제공하지 않는다. 만약 상기한 문제들이 작품과 다소 무관한, 사소한 문제라 한다면 그 ‘사소한’ 것들의 존재 이유를 되물어야 할 터이다. 더 많은 관객에게 더 많은 관람을 제공하는 것이 좋은 전시라면, 2024년 <올해의 작가상>이 더 좋은 전시로 거듭나길 빈다.

[만료]오운(2024.03.04~03.18)
[만료]화랑미술제(2024.03.04~4.18)
[만료]BAMA(2024.03.04~4.18)
세화미술관(2024.01.31~)
스팟커뮤니케이션(2024.01.24~)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