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랜드스케이프를 그리는 화가 윤종숙(1965년생). 그는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기억의 정경을 불러낸다. 부드러운 산등성이, 굽이치는 강물, 보드라운 바람, 따사로운 햇살···. 작가는 충청남도 온양의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부친의 영향으로 동양화와 서예를 배웠다. 1995년 독일로 이주해 수묵의 선을 표현주의에 접목했다. 밑그림 없는 즉흥적 붓질로 내면의 감흥을 표출했다. 올해로 타국에서 지낸 지 만 30년. 그러나 윤종숙 그림의 시공은 언제나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다. 자연을 벗 삼던 아득한 추억 한 토막을 지금, 여기에 펼친다. 대형 캔버스와 벽화작업이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 거대한 색면추상을 전시장에 가득 채워 관객을 마음속 고향으로 초대한다. 윤종숙의 프랑스 첫 개인전 <Far East>(3. 15~5. 10)가 마리안굿맨갤러리 파리에서 열렸다. 대형 신작 10점과 구아슈 작업 4점을 공개했다. 그에게 ‘극동’은 시간과 공간, 몸과 정신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첫 숨을 터트린 곳, 아침 해가 떠오르는 나라. 작가에게 동쪽은 우주 만물이 태어나는 시원의 장소이다. 생명이 움트는 봄은 총천연색으로 피어오른다.
동쪽 하늘 곰틀대는 첫새벽. 보오얀 안개가 도동실 넘어온다. 따끈한 연분홍 햇살이 방긋, 봉긋. 밤이슬 머금은 들판을 아름드리 어루만지면 온 동네 볕 냄새 솔솔···.
창공을 물들이는 연노란 아침결. 한갓진 뭉게구름이 산허리를 간지럽힌다. 아스라한 살빛 대지, 약동하는 땅의 맥박이 나 어릴 적 벗이었나니. 발간 속내와 거친 순수를 품어준 내 고향, 내 산천.
겨우내 굳은 호수가 사르르 초원에 스민다. 개나리는 봄 넘을 고개를 색으로 마중하고, 진달래가 그 걸음을 향으로 부른다. 달큼한 꽃내음 지천을 홀리나니. 만춘 낙원에 그대, 어서 오소서.
만동의 언바람, 하지의 뙤약볕, 추풍의 소슬비 모두 오가는 봄의 시간. 사절기 오색을 오롯이 만나리. 바람 마차 타고 해후를 약속하는 라스트 댄스. 나는 이 노래 부르며 네게로 간다.
풀벌레 걸음마다 연둣빛 숨결이 트고, 하늘님은 물빛에 어린다. 노란빛 그리움은 마루에 기대 달래고, 불그스레 설렘은 풀잎 사이로 숨긴다. 보랏빛 앙금은 저무는 놀에 떠나보내야지.
구름은 은하수 닮아 옛이야기 소근거리고, 하루는 저 너머로…. 여남은 추억은 석양의 희나리. 봄은 내 고향. 한 철은 마음에 진분홍 그림자로 드리우니. 하염없이 그리워 그리고, 그렸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