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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위한무대

아트인컬처평론프로젝트‘피칭’제9회선정자손혜림

2024/10/16

닿지 못할 풍경에 다가가기 위해 전망대에 오른다. 가까이서 가늠하기 위해 망원경에 눈을 덧댄다.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들여다본 렌즈 속에 만약 나의 뒷모습이 실시간으로 출현한다면, 그땐 어떤 감각들이 빠져나올까. 작가 최은빈은 <2024 금호 영아티스트 1부>(3. 22~4. 28 금호미술관)전에 참여해 작품 <Stand-in>과 <Stand in->을 선보였다. 두 신작은 우리가 전시장에서 기대할 법한 문법을 비틀어 공간을 과감히 비워내고, 멀게만 느껴지던 작품의 풍광에 관객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디지털 환경에 느슨히 전시되는 주체의 모호함과 분열적 현상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전시장 벽에 카메라를 내장한 <Stand-in>은 이를 내밀히 보려는 관람객의 뒷모습을 파란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작품이다. 작품명은 주지하다시피 ‘대리인’ 혹은 ‘대역’이라는 뜻을 가졌다. 이 작품은 오롯이 한 명만 관람할 수 있기에, 관람객은 작은 스크린 속 본인의 ‘출현’ 목격담을 마치 자신과 분리된 대리인처럼 세밀히 묘사해야만 타인에게 그 감상평을 전달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눈 가까이에 맞닿아 있지만, 동시에 우리를 아주 먼 차원으로 내던진다. 이 두 현상 모두 결국 ‘나’라는 주체를 향한다는 점에서 <Stand-in>은 거울과 전망대가 용접된 ‘거울+전망대’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경계를 떠도는 감각

최은빈의 작업은 디지털 환경에서 데이터 세트(data set)로 쉬이 편입될 수 있는 주체의 분열적인 파편을 현실로 호출한다. 작가는 관객이 스스로 감각의 중심인 ‘주체’임을 각성시키고, 디지털 기술로 소외된 개인의 독백을 ‘가치’로 부상시키는 동시에, 이러한 사실을 되새김질하도록 부단히 권유한다. <Stand-in>에서 마주한 ‘주체의 낯섦’은 텅 빈 공간이 인상적인 <Stand in->으로 이어진다. 텅 빈 공간은 무섭고, 무겁다. 공간의 정체성은 연산할 수 없는 최대 함수로 그득한 잠재적 무한이자, 최대의 엔트로피로 해석된다.

여백과 비움의 미학으로 여겨지는 ‘보이드(void)’는 내부의 ‘순환’, 즉 공기나 채광 조절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 두 작품을 차지하는 비움의 미학은 오히려 공간을 잔뜩 점유하고 있을 ‘관객’을 조망하는 최소한의 바탕재로 작동한다. 비워진 공간에서 <Stand in->의 초지향성 스피커가 원형을 그리고,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stand in-’은 ‘대신하다’라는 뜻으로, 작품은 그 동사적 특성에 주목한다. 소리를 따라 움직이는 이러한 사운드 워크는 관객이 ‘전시장을 걷는다’는 동사적 행위와 연계해 감각의 이음새를 확장한다. 이러한 일련의 장치는 주체가 행위의 주도성을 가진 잠재태라는 점을 각성시키며, 동시에 관객을 ‘대역(stand-in)’에서 수행의 주도권을 가진 ‘주인공’으로 단숨에 역전시킨다.

대역은 흔히 배우가 소화하기 힘든 장면을 대신 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최은빈의 두 작품은 자기-대역의 출현으로 조금은 긴장감 있게 그 수행성을 대신해 준다. 이런 장치는 자기 독백으로 휘발될 수 있는 가치가 끝내 개인의 소격감과 자기 연민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며, ‘대역’으로 간주되는 주체의 주변화를 지양한다. 우리는 매일 각자가 서있는 장내에서 무언가를 늘 ‘대신할 뿐’이라 오해받는 대역이며, 나아가 스스로 자신을 그러한 정의에 위치해 두기도 한다. 이런 흐름에서 두 신작은 관람객이라는 주체를 ‘자기-대역’ 상태로 스크린과 전시장에 위치시키고, 무대 위 ‘주인공’으로 등가 교환하는 독특한 설정을 마련해 놓았다.

오늘날 우리는 개인을 표현하기 위해 디지털 환경 안팎의 언어와 물질을 경유하지만, 오히려 그 과잉 때문에 소외 상태에 내몰리기도 한다. 언어와 비언어, 물질과 비물질 사이, 혹은 경계를 떠도는 감각들을 살피는 데 예술이 여전히 유효할까. 만약 그렇다면 최은빈의 작업으로 주체‘성’의 회복이라는 거창한 목적에 도달하진 못하더라도, 일말의 주체‘감’을 더듬는 행위를 시도해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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